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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박 대통령, 통큰 다나카 참고했으면

중앙일보 2016.05.16 00:31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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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이원종 전 충북지사를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이에 앞서 친박들은 충남 출신 정진석 의원을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뽑았다. 충청 출신 전성시대다. 더불어 ‘반기문 대망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반면 총선 참패의 정무수석은 살아남았고, 법조비리 연루 의혹의 민정수석도 자리를 지켰다. 바꾸기는 바꾸되 최측근을 통한 국정방향은 그대로 고수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동북아의 구조조정 삼국지
국민 지지와 야당 협조 절실


경제 쪽도 마찬가지다. 안종범 정책수석-강석훈 경제수석 조합은 ‘변화’보다 ‘현상 유지’에 무게가 실려 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안종범·강석훈 수석의 동맹관계는 예상보다 끈끈하고 깊다. 이들이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에 맞서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최·안·강 3인의 인연은 훨씬 오래됐다. 이들은 미국 위스콘신대 동문들이다. 또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선캠프에 영입한 인물들이다.

2002년 대선 패배로 이들은 ‘백수’ 신세가 됐다. 다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세 사람은 “함께 머리나 식히자”며 제주 배낭여행을 떠났다. 낮에는 자전거로 제주도를 돌았고 밤에는 마을회관이나 여관에서 잤다. “긴 시간을 죽이느라 한국 경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2004년부터 이들은 박근혜 대표를 돕기 시작했고 똘똘 뭉쳐 ‘근혜노믹스’의 밑그림을 그렸다. 앞으로 남은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 운명도 이들의 팀 플레이에 달려 있다. 과연 이들이 유일호 경제부총리·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손발을 맞춰 근혜노믹스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지금 동북아는 새로운 삼국지를 쓰고 있다. 한·중·일의 구조조정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공급 측 개혁’을 내세워 무자비하게 과잉공급을 수술하고 있다. 석탄·철강산업에서만 180만 명을 줄이고, 667개 조선소 중 496개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미래 먹거리 투자는 게을리하지 않는다. 시 주석은 반도체 굴기·전기차 굴기로 대표되는 ‘차이나 인더스트리 4.0’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 역시 샤프와 미쓰비시 자동차가 넘어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샤프는 104년 역사의 일본 전자산업 자존심이고, 미쓰비시는 한때 제로센 전투기까지 만든 ‘엔진의 종가(宗家)’ 아니던가. 아베 총리는 그 대신 드론과 자율주행차가 마음껏 휘젓는 ‘규제 프리존’을 6개 국가전략특구로 확대했다.

어쩌면 박 대통령이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지 모른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로, 시 주석이 마음만 먹으면 거침없이 밀어붙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2021년까지 ‘3연임 총리설’이 나올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반면 박 대통령은 총선 참패로 위기에 빠졌다. 미래 신산업을 준비하려면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노조와 야당의 눈치를 살펴야 할 입장이다. 여기에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국민적 동정심이나 부채의식은 희미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눈앞에 닥친 조선·해운 구조조정은 누구도 하기 싫은 인기 없는 정책이다.

박 대통령에게 독일의 구조조정을 참고하라는 조언이 쏟아지고 있다. 슈뢰더 전 총리가 ‘하르츠 개혁’으로 정권은 잃었지만 독일을 구해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다나카 전 총리의 리더십도 참고했으면 한다. 그는 측근 없이 나홀로 막강한 대장상에 취임했다. 그리고 유명한 취임연설을 했다. “여러분은 천하가 다 아는 천재들이고, 초등학교만 나온 저는 대장성의 일을 모릅니다. 일은 여러분이 다하고, 나는 책임만 지겠습니다.” 이후 다나카는 역대 가장 강력한 대장상에 올랐다. 다나카는 또 항상 정적(政敵)인 후쿠다의 최측근들에게 정치자금을 듬뿍 보냈다. 그의 참모가 따지자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나를 죽이는 건 자네보다 그들이다. 지금 떡값이라도 주면 나중에 열 번 찌를 때 아홉 번만 찌르지 않겠는가.” 구조조정을 앞두고 박 대통령도 어느 때보다 국민적 지지와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지 않을까 싶다. 측근들만 편하게 돌려쓰기보다 한 번쯤 야당과 비박(非朴)에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한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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