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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단련이 스타의 매력 선수 때 마음이면 뭘해도 성공

중앙선데이 2016.05.15 00:36 479호 25면 지면보기

용인대 체육과학대학 내 연구실에서 만난 장미란 교수는 “뭘 꼭 해야 되겠다는 욕심은 내려놨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용인=박종근 기자



‘축구장에 물 채워라. 박태환 수영 하게.’


[2016 스포츠 오디세이 -8-] 장미란이 말하는 '스타의 품격'

‘겨울에는 물 얼려라. 김연아 피겨 하게.’



‘바벨도 놓아라. 장미란 역도 하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날 무렵 인터넷을 달군 유머 시리즈다. 기대를 걸었던 남자축구가 예선탈락한 반면 비인기 종목인 수영의 박태환, 역도의 장미란이 금메달을 따냈다. 팬들은 빵빵한 지원을 받는 축구팀의 무기력한 모습을 힐난하는 동시에, 음지에서 묵묵히 훈련해 값진 성과를 거둔 선수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리우 올림픽 개막이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서는 스타들이 탄생한다. 이들에겐 뼈를 깎는 노력과 감동의 드라마가 있다. 사람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들에게 환호와 응원을 보낸다. 자신의 감정을 그들에게 투사해 함께 울고 웃는다.



이렇게 탄생한 스타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금지약물 복용, 폭행, 도박, 승부조작, 성추행, 음주운전, 논문 표절, 사기 등등 종목도 다양하다. 팬들은 그들에게 보냈던 열광만큼 큰 배신감을 느낀다. 스포츠 스타를 롤 모델 삼았던 어린이에게 주는 악영향은 더 크다.



은퇴 후에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국민누나’ 장미란(33)을 만났다. 그는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용인대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 ‘장미란재단’ 이사장으로서 의미 있는 공익 사업을 조용히 펼쳐나가고 있다. 스포츠 스타의 품격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에게 물었다.



 

지난 2013년 6월, 장미란재단의 ‘찾아가는 스포츠 멘토링 교실’의 첫 대상지인 울산 삼일여고 역도부를 찾은 장미란 이사장이 역도부 선수와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 장미란재단]



요즘 친구들, 칭찬과 격려에 목말라 있어“아이 참, 사진 안 찍는다고 했는데. 방금 실기수업 끝나서 얼굴이 엉망이란 말이에요.”



용인대 체육과학대학 3층의 장미란 교수 연구실. 장 교수는 갑자기 들이닥친 사진기자를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사진을 안 찍을 수는 없는 일. 연구실에 걸려 있는 재킷과 머플러를 걸치니 제법 교수님 태가 난다. 왜 그 어렵다는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했는지부터 물었다.



“제 박사논문 제목이 ‘국가대표의 은퇴기대와 심리적 위기감 및 재사회화의 관계’입니다. 운동 선수들이 은퇴 후에 새로운 사회로 진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걸 많이 봤어요.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 보니 스포츠사회학을 선택하게 됐죠.”



-지난해 체육학과 교수가 됐는데, 어떤 걸 가르치나요.“육상·역도 등 4개 기록종목 실기를 가르칩니다. 공부를 제대로 안 했으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랍시고 ‘이렇게 해’‘저렇게 해’ 말로만 했겠죠. 실기교수법을 열심히 배운 덕분에 친구들과 땀 흘리며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그는 학생들을 ‘친구들’이라고 했다.)”



-학생들 반응은 어때요.“처음에는 ‘와 장미란이다’ 하며 신기해 했는데, 1주일이면 끝이에요. 다리를 다친 친구가 있어서 수업 때마다 ‘괜찮냐, 좀 어떠냐’고 물었더니 ‘저한테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해요’ 하더라고요. 요즘 친구들이 칭찬과 격려에 목말라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장미란재단도 벌써 4년이 됐네요.“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운동하는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게 국가대표를 만나는 거예요. 무슨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라 ‘슬럼프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물어보면 ‘목표가 있으면 참고 이겨내야지’ 대답하는 식이지요. 그렇게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큰 격려가 돼요. 그런 게 멘토링이죠. 배려계층 아이들 찾아가는 장미운동회와 장학사업도 조금씩 확대하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나요.“친구들은 대학 가고 실업팀 가는데 나는 불러주는 데가 없다며 낙담한 선수를 봤어요. 열아홉에 벌써 자기 삶을 실패라고 규정지어 버린 거죠. ‘운동만 하는 친구는 사회 나가는 준비에서 불리할 수 있어. 너는 자격증도 따고 공부도 하면서 준비하면 나중에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줬더니 표정이 밝아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스포츠 스타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를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모습이요.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지. 난 못 해’라면서 운동 선수들의 성실함과 꾸준함에 매료되는 거죠.”



 



스포츠 폭력 근절, 독립 기구로 단호하게박태환(27) 얘기를 꺼내자 장 교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둘은 ‘국민남매’로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다. 박태환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도핑에 걸려 메달을 박탈당하고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1년6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리우 올림픽에서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박태환은 열심히 훈련했지만 대한체육회는 ‘도핑으로 징계받은 선수는 3년간 국가대표에 뽑지 않는다’는 규정을 고수하고 있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와 '명예회복의 기회를 주자'로 여론이 쫙 갈라졌어요.“아무래도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데요.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수영 영웅이 불명예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느냐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태환이에게 어떤 형식이든 명예회복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 친구도 홀가분하게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잖아요.”



-본인도 선수 때 도핑의 유혹을 느끼지 않으셨나요.“전혀 없었어요. 여성의 남성화, 불임, 심장마비 등의 원인이 된다는 교육을 철저히 받았거든요. 그런데 4,5등 하는 선수들은 ‘조금만 더 하면 될 텐데’ 하면서 유혹에 빠져드는 경우가 있어요.”



-도핑이 국제적인 문제가 되고 있어요.“도핑을 안 하는 나라가 거의 없을 겁니다. 갑자기 나타나 금메달을 따고 사라져버린 선수들은 의심을 할 만해요. 우리나라 남자 77kg급 사재혁 선수가 몸이 얼마나 좋습니까. 근데 여자 75kg급에서 사재혁보다 어깨가 더 발달한 중앙아시아 선수를 봤어요.”



-그 사재혁 선수가, 후배 폭행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요.“아끼는 후배인데 안타깝죠. 그렇지만 스포츠계에서 폭력은 근절돼야 합니다. 스포츠공정위원회 같은 곳에 제보와 신고는 쌓이는데 해결되는 건 별로 없어요. 독립된 기구를 만들어 더 단호하게 해야 합니다.”



요즘은 스포츠 스타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강호동(씨름)을 필두로 서장훈(농구), 안정환(축구) 등이 안방을 접수했다. 스포츠인의 연예인화 바람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본인의 관심과 장점을 살리고 후배들에게 도움과 본이 된다면 좋은 일이죠. 어느 자리에 있든 체육인이라는 명예와 자부심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쪽으로 나가는 분들도 많아졌죠.“제 선수 시절 태릉선수촌장이셨던 이에리사(62·새누리당) 의원님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이 의원님이 발의한 ‘체육유공자법’이 통과돼 1986년 국가대표 훈련 도중 목뼈를 다쳐 1급 장애인이 된 체조 김소영 선수가 29년 만에 유공자 대우를 받게 됐습니다. 스포츠 현장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은 스포츠인들이 가장 잘 알잖아요. 다만 정치를 하려면 그만큼 준비를 잘 해야 되겠죠. 정치권에서도 스포츠 스타의 인기와 이미지만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되겠죠.”



-최근 개봉한 영화 ‘4등’의 메시지처럼 4등도 사랑받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는데요.“제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4등으로 끝내고 바벨에 손 키스를 한 장면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솔직히 몸도 마음도 지쳐 있어서 금메달 못 딸 줄 알았고, 그래서 정말 나가기 싫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날 힘들게 한 순간들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정말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때 런던을 안 갔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겁니다.”



 



은퇴 후 전문성 살릴 교육 꼭 필요-요즘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아니죠.“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중국 선수에게 우승을 뺏기고 우리 선수들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어요. 요즘 후배들은 참 여유가 있어요. 근데 중요한 건, 잘 해야 관심을 받잖아요. 금메달 따고 못 따고가 아니라 어차피 할 거면 최고로 잘 해야 하고, 그러려면 뒷받침을 해 줘야 합니다. 특성화를 평준화로 바꿔 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가 새삼 느껴지시죠.“협동심·리더십·도전·배려 등 스포츠의 가치를 말하면서도 정작 교육의 우선순위에서 체육은 항상 뒤로 밀려요.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죠.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스포츠의 가치와 스스로 할 수 있는 운동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받는 스포츠 스타로 오래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어떤 일을 하든, 선수 때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하면 못할 게 없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는 은퇴 후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이 꼭 필요합니다. 복지는 돈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끝났다. 장 교수는 “이렇게 광범위하고 힘든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연구실 한쪽에 동양란(蘭) 다섯 촉이 예쁘게 자라고 있다. 장 교수는 “내가 물을 마시고 있으면 쟤들도 ‘우리도 물 먹고 싶어요’ 말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만 손이 가게 돼요”라고 말했다. 이름에 꽃이 두 개나 들어 있는, 아름다운 사람 장미·란이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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