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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뒤로 숨지 않겠다.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겠다"

중앙일보 2016.05.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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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제 기자의 보이스택싱. 승객은 박원순 서울시장. 강정현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13일 "뒤로 숨지 않겠다.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서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전남대에서 대학생과 시민 400여 명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다.

박 시장은 '1980년 5월 광주가 2016년 5월의 광주에게 -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띄우는 시그널'이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천하가 고통과 절망 속에 잠겨 있다"며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박 시장은 20대 총선 결과에 대해 "국민의 정부·여당과 박근혜 정부의 오만과 독선으로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호의 균형수가 됐다. 야당 또한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기 보다 새로운 기회를 얻었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5ㆍ18 기념식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제창하는 것을 정부가 불허하는 데 대해선 “종달새를 새장에 가둘 수는 있어도 노랫소리를 가둘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박 시장은 "과거부터 광주정신과 늘 연결돼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강의 전문.

1. 꿈의 질주
광주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모두 아픈 세상입니다. 광주만 그러겠습니까만 이번 광주방문은 많은 분들로부터 듣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이 강연을 제외하고는 이틀간이 모두 각계 광주 인사들을 뵙고 듣는 일정으로 빼곡이 차 있습니다.
제가 최고로 좋아하는 단어가 바로 경청이라는 말입니다. 경청은 내 자신이 먼저 솔직해 지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제 진솔한 광주사랑, 광주사연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처음 하는 얘기부터 제 자랑입니다. 저는 공부가 가장 쉬웠습니다. 나 혼자 결심하고,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마다 평범한 소작농이던 부모님은 ‘땀은 정직하다.’,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 는 말로 철없는 아들을 훈육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각각 두 번의 재수에도 불구하고, 꿈을 향한 질주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두 달만에 시위에 참여하다 체포되고 제적당했습니다.
다시 공부를 했습니다. 시험이 가장 쉬웠고, 공평했습니다. 20대 초반에 정선등기소장이 되어 정선군의 동네유지가 됐습니다. 새파란 젊은이에게 영감님이라고 부르더군요. 멈추지 않은 욕망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해 검사가 됐고, 결혼도 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 어려운 것들을 내가 해 냈습니다’. 그렇게 폭주기관차처럼 나를 이기고 성취한 결과에 내가 자랑스러웠습니다.

2. 부끄러움
그러나, 정작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검사로 누군가 지은 죄의 경중을 논하기에 저의 경험은 일천했습니다.
시대는 불의하고, 엄혹한 ‘겨울공화국’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는 말이
유일한 위로가 됐습니다.
매번 부끄러운 마음만으로 세상에 눈 감고, 귀 막고 살기엔
세상의 소식들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됐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역사문제연구소’를 만들어
나를 위한 공부를 넘어 세상과 시대를 위한 공부를 했습니다.

교과서를 통해 배우지 못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상을 읽을 때는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반민특위의 좌절에 저도 좌절했습니다.
현실역사에서는 왜 사필귀정, 권선징악이 없을까?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의열단 김원봉 열사의 항일투쟁 이야기는 젊은 피를 끓게 했고,
임시정부 김구 선생님의 인간적 카리스마에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광주 오월의 이야기는
목에 가시처럼 머릿속에 걸려서
마음으로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같은 시절을 경주마처럼 나 자신의 성공만을 쫒았던
제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고,
제 자신에 대한 참회였을 것입니다.
부끄러움은 같은 시대를 다르게 산 동년배 영웅에 대한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경외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계엄군이 오고 있습니다.
시민여러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80년 5월 가두방송이 절규할 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했던가?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나의 역사는
광주 앞에만 서면 부끄러운 흑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살아 있었다면 형님처럼 따랐을 박관현 열사와
윤상원 열사의 이야기는
지금도 끝까지 읽어 내기가 어려울 만큼 힘이 듭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
윤상원 열사가 도청을 사수하면서 했다는 이 말은
제게 극한의 상황에서도 역사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
국민에 대한 신뢰를 키워줬습니다.
“제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이올시다.
(중략)
우리가 민족민주화 횃불대행진을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이 횃불과 같은 열기를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 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며,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우리 민족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입니다. ...(후략)”
스물아홉 청춘을 차디찬 감방에서 40일 동안 단식으로 마감해야 했던
박관현 열사가 스물일곱 살에 했다는 연설입니다.
민주주의, 인권, 남북평화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닌
목숨으로 지켜낸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3. 용기
광주시민들과 청년들이 목숨으로 지킨 광주정신은
제 부끄러움를 용기로 바꿔 놓았습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대동사회를 만들자’는
1980년 오월 광주가 보내는 시그널은
시간이 지날수록, 말과 글로 접할수록
더 강렬했습니다.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의 변론
1986년, 인권변호사그룹 민변 창립,
1987년, 직선제 개헌 주장,
1989년, 의문사를 당한 이철규 열사의 진상 규명,
1995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 광주항쟁의 진실을 밝힐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입법 청원

단언컨대 이모든 저의 활동은
광주가 만들어 준 용기의 결과입니다.
박관현 열사와 윤상원 열사의 큰 영향이었습니다.
이렇게 광주는 늘 제 생각의 뿌리이자,
가치관이었습니다.
‘혁신과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광주정신은 평범하게 살 뻔한
박원순의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권력을 감시, 비판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며,
더 많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민운동,
참여연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입법하고, 낙선운동을 벌이고,
‘소액주주운동’으로 경제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누구나 나눌 것이 있다’는 ‘1% 나눔운동’으로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들어간 아름다운재단,

더 많은 소비가 아니라,
더 좋은 소비를 위한 아름다운가게,

제 3세계 농부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한 첫 번째 공정무역 운동,
아름다운 커피,

시민으로부터, 지역으로부터 구체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씽크탱크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이름과 방식은 다르지만,
민주주의, 인권과 정의, 복지와 공동체,
민생경제,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뚜벅뚜벅 제가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다른 이름은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같이 ‘민주, 인권, 평화, 대동’ 이라는
광주정신 실천의 도정이기도 했습니다
4. 또 다른 부끄러움
전남대 학생여러분,
청년 여러분,
광주시민 여러분,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은
이 땅의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45초 햄버거’를 만드는 알바까지 해서 졸업한 대학인데 일자리가 없습니다.’
“나라가 하라는 것을 하고, 윗사람이 결정한 것을 잘 따라했는데, 회사는 망했고 사장님은 여전히 다른 회사의 대표님이십니다.”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씩 꼬박꼬박 일하는데 빚은 줄지 않고 늘고 있습니다.”
“단군이래 최대의 스펙을 갖췄다지만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다 포기하려고요.”
“월급은 제자린데 임대료, 사교육비, 통신비, 의료비는 왜 이리 오르는지”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처절하고,
절박한 근심에 한없이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뒤늦게 즐긴다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이야기는 결코 송(宋)나라 범중엄(范仲淹)의 것일 수만은 없습니다.
천하가 고통과 절망 속에 잠겨있는데 아직도 저는 편히 잠들 수 없습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습니다.
2시간동안 수장되어가는 아이들의 절규를
생방송으로 보고만 있어야 했던 세월호 사건,
국민 안전에는 ‘1% 가능성이 100%다’는 것을 알게 해준 메르스 사태,
통치자의 하나의 역사만을 강요하는 폭력적 국정역사교과서제작,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조차 몰랐던 한일 위안부 불가역 협약,
헌법정신을 유린한 정부에 의한 희대의 여론조작 사건인 어버이연합,
남북관계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고, 남북평화를 위협하는 개성공단 폐쇄,
5년 넘게 수백 명의 산모와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던 살인마 가습기 사건
도대체 다 열거하기가 어렵습니다.
역사의 후퇴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미래로 나아가야 할 때,
우리는 과거로 뒤로 후퇴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런 와중에 4.13 총선은 ‘반란’이 아니라
차라리 ‘혁명’입니다.
국민은 정부여당과 박근혜 정부의 오만과 독선으로 인해 침몰해가는
대한민국호의 균형수가 되어 주셨습니다.
야당 또한 국민들의 선택을 받았다기 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水可載舟 亦可覆舟’
‘국민은 물과 같아서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말처럼
지금 내려진 국민의 서슬 퍼런 심판의 칼끝이
다음엔 어디로 향할지 모릅니다.
민의를 다시 되새기고, 구체적으로 행동해야합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닫고,
눈감았던 ‘민맹의 정치’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국민들의 소소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함께 성장해 가는 ‘민생의 정치’가 필요합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
그리고 여기 광주에서 다시 시작입니다.
우리나라는 늘 이 곳 광주에서
정치적 대전환의 중대한 기회를 맞이하였습니다.
5. 정치 : ‘플랫폼 정부’를 통한 ‘일상의 민주주의’

‘불’평등, ‘불’공정, ‘불’균형, ‘불통’ 으로 국민의 삶의 현장은 피폐하고,
민주적 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수단과 도구가 된지 오래됐습니다.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민생을 되살리고,
정의를 바로 세워
공동체 회복을 위해
다시 싸워야 합니다.

36년 전 광주 시민과 청년들의 목숨과 바꿔 지켜낸
민주주의의 가치들이
우리의 대의명분이 되어 줄 것입니다.

경청과 소통,
상식과 원칙,
혁신과 협치,
합리와 토론,
투명과 책임.

서울은 그간 소수의 권력에 집중된 정보와 의사 결정 방식을
과감하게 시민들과 공개, 공유했습니다.

오늘 하루 서울시가 어디에 예산을 얼마를 썼는지 매일 매일 공개됩니다
과장이상이 결재한 문서는 공개가 원칙입니다.
시장이 받는 보고도 실시간으로 공개됩니다.
시장의 주요 회의도 인터넷 방송으로 생방송됩니다.
지금 이 강연도 제 페이스북 라이브로 중계가 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갈등이 줄어들고
결정된 내용에 대한 책임이 높아집니다.

공개함으로써 나오는 비난이나 문제는
은폐함으로 발생할 문제 비하면 아주 작습니다.

죽음의 살균제 가습기 문제도
공개되고 함께 논의가 됐다면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핀란드의 ‘오픈 미니스트리’ 는 헌법을 개정해 국회의 고유 권한처럼 여겨진 입법권을 시민들에도 허용했습니다. 온·오프라인으로 시민 5만 명이 동의한 법안이 국회로 상정됩니다.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 당시 650만 명이 서명해도 청원운동에 그친 우리나라와는 딴판입니다. 왜 우리는 안 될까요?

‘디지털 사회혁신 플랫폼’을 기반으로 시작해
최근 스페인의 제 3당이 된 ‘포데모스(Podemos) 는
정당의 주요 정강과 정책들을 클라우드펀드를 이용해
당원과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민주주의가 디지털 기술을 만나
진화하고 혁신하고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이브리드 민주주의의 탄생입니다.
소수의 특권층에게 권력을 독점하는 방식이 아닌
시민들이 권력을 분산해서 갖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가야 합니다.

어떤 정치학자는 투표소에서 나오는 순간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일상에서 시민이 권력을 누리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이제 ‘플랫폼 민주주의’ 시대, ‘플랫폼 정부’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시민과 시민이
서울시민과 광주시민이
중앙과 지방이 연결되어 바꿀 수 있습니다.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은 하나입니다

벌써 10년 전 일입니다.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당신(YOU)”이여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6년, “다시 당신(YOU)”입니다.
2016년 당신은 한층 강력한 디지털로 연결된 당신입니다.

더 이상 전지전능한 어떤 한 사람의 리더가
현실의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공개하고 공유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는 ‘열린 혁신의 시대’입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듣도 보도 못한 시민정치의 시대입니다.

6. 경제 : 모두를 위한 대동경제, WEconomics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며,
새로운 경제의 판이 짜여지고 있습니다.

IoT,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량,
3D프린터,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기존 제조업과 융합해
생산능력과 효율을 극대화 해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입니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AI)처럼
이미 미래는 우리 앞에 와 있습니다.

광주의 핵심 먹거리인 자동차 산업도
무인자동차, 전기차 등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속도와 방향을 가진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거 박정희 정부에서 했던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따라하는 수동적 흉내내기로는 안 됩니다.
현 정부가 하는 창조경제의 핵심 정책인
1사 1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안타깝게도 창조도 없고, 혁신도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국민소득 3만불 넘어서기는 불가능합니다.

국가의 주도가 아닌 개인이 갖고 있는 창발성을
어떻게 잘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전통시장이 청년들과 만나서 전혀 다른 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저녁에 방문하게 될 ‘1913 송정역 시장’도 청년들 가게가 늘어나면서
다시 활성화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민간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민간이 잘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원칙하에 ‘창업국가’를 만들어 가야합니다.

서울은 이런 디지털 기술의 변화를 적극적 기회로 삼는
디지노믹스(Digital + Economocs) 마스터 플랜을 통해서
시민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디지털 수도’의 꿈을 이뤄갑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실업률과
가계부채 1,200조
수저에 따라서 신분이 정해진다는 극심한 부의 대물림 시대
이 절망의 시대에
1980년 5월 광주가 꿈꿨던 ‘대동사회, 대동경제’에 대한 꿈을 꿉니다.

모두를 위한 경제,
우리를 위한 경제
WEconomics(We + economics)를
실현해 가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빚더미 서울시의 채무 7조 8천억원을 줄였습니다
그 대신 4조원의 추가 복지예산을 늘렸습니다.

아끼고 절약한 재정은 반값등록금,
생활임금제 도입,
청년활동 지원 등
사람과 미래에 대한 투자에 아낌없이 배정했습니다.
이렇게 쓴 8조원의 복지비는 20여만 개의 일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를 위한 경제’는 이런 선순환을 극대화 해가는 것입니다.

심야버스,
국공립어린이집,
환자안심병원,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인 지원,
임대주택 8만호 건설은 실제 시민의 삶에 큰 변화를 드렸습니다.

며칠 전 서울은 1천번째 국공립어린집 개원을 했고,
2천번째를 향해 또다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노숙인에게 온돌방을 제공해 동사를 막고
이들에게 다양한 직업훈련을 제공했습니다.
화장실에 숨어서, 서서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던 청소노동자들에게는
탈의실, 휴게실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시립병원을 통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도 치료받고
건강할 권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공공성의 확대에 맞춰져 있습니다.
인간적 자본주의를 향한 적극적 행정의 소산입니다.
광주항쟁의 대동정신이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서울의 꿈은 저 높이, 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시민의 발 밑, 그리고 시민의 마음속 깊이 있습니다.
시장직이란 시장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꿈을 실현하는 자리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러나 단호하고 과감하게 혁신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의 삶은 매일같이 혁신입니다.
시민에 대한 공무원의 갑질을 금지하고,
어떤 부패와 부조리도 용납하지 않고,
단돈 천원도 받으면 안 된다는 박원순법은 절대 양보할 뜻이 없습니다.


7. 사회 : 평화와 통합을 만들어가는 ‘협치’

‘날선 사회’라고들 말합니다.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가 일상적 용어가 됐습니다.
갈등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세대, 지역, 계층, 남북 간 격차와 갈등은 난마처럼 꼬여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갈등지수는 OECD 27개국 중 2번째로 높습니다.

이런 갈등으로 인한 비용손실은 한해 최대 246조원.
서울시의 10년 예산입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10만개를 지을 수 있고
임대주택은 90만호를 짓고,
대학생 기숙사로 치면 6백만명 입주 시킬 수 있습니다.

세대, 노사, 지역, 남북 간 소통과 경청, 거버넌스와 협치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서울시가 산하 공공기관에 도입하기로 한 ‘근로자이사제’는 노동자의 책임성을 키워서 노사안정을 도모하고자는 대한민국 최초의 시도입니다.

협치, 협력, 상생, 합의, 공동체정신은 대동사회를 지향했던
5.18 광주정신의 핵심입니다.

평화와 통일 역시 1980년 광주가 꿈꾸었던 민족의 미래였습니다.
북한 주민의 삶의 문제를 도외시한
지난 10일 7차 북한 당대회의 ‘핵-경제 병진노선’은
한반도 평화를 해치며, 개성공단폐쇄로 가뜩이나 냉각기인 남북관계를
더 경색시키는 잘못된 결정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의 핵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평화는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그동안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아래에서 이루어진
금강산관광, 개성공단마저 도 원점으로 되돌려버린
정부의 남북정책 역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인식을 가지고 남북문제에 접근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혜가 아쉽습니다.

이런 꿈은 어떻습니까?
서울의 고등학생이 수학여행을 갑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원산, 블라디보스톡을 통해 모스크바와 헬싱키까지.
아니면 광주의 청년들, 여러분이 유라시아 배낭여행을 갑니다.
송정역에서 서울, 평양, 산의주, 베이징, 시안을 거쳐 파리까지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생각만 해도 피가 끓는 꿈인데
왜 더 멀어져가는 걸까요?

평화와 통일은 우리의 꿈이면서
박관현, 윤상원열사가 목 놓아 외쳤던
비원이었습니다.

8. 청년이 희망이다

청년여러분 많이 힘들지요?
여전히 막막하지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대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불평등, 불공정 사회
꿈도 희망도 사라진 시대,
절망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서울시는 청년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청년들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보았습니다.
그들의 손은 뜨거웠습니다.
혁신에 대한 열정, 변화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청년정책과를 만들고, 서울청년보장플랜을 만들었습니다.

청년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열정과 아이디어가 모이고 있습니다.
서울 은평의 혁신파크에는 청년들이 모여들어
혁신의 씨앗을 뿌리고, 변화의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서울 곳곳에 있는 무중력지대에서는 청년들이 만나고 아이디어를 나누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마음껏 꿈꾸고, 창업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서울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방문한 광주의 청춘공작소 헤르츠, 동네줌인 컬쳐스페이스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오후에 방문하게 될 1913송정역시장도 청년이 일군 새로운 변화이며
미래입니다.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청년들이 절망과 분노를 넘어 변화와 창조의 모멘텀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는 청년들의 뒤에서 싸우고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전남대 학생여러분, 청년여러분
세상은 말이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바꿉니다.
청년의 올바른 생각이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꿉니다.
여러분이 꿈이고 미래입니다.
36년전 20대의 청년 박관현 열사, 윤상원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함께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 나갑시다.
그렇게 역사를 바꾸어 나갑시다

9. 1980년 5월의 광주가 2016년 5월의 광주에게

“종달새를 새장에 가둘 수는 있어도 노랫소리를 가둘 수는 없지요”

이명박, 박근혜정권은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5.18정신은 누가 금지하고 누가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5.18정신은 늘 시대와 더불어 변화해가는
새로운 도전이며 새로운 사명입니다.
그래서 5.18정신, 광주정신은 현재이며 미래입니다.

‘민주, 인권, 평화, 대동’

5.18정신은 새로운 시대와 만나 함께 호흡하고
새로운 가치로 진화하고,
국민의 삶을 바꿔내고,
결국 대한민국을 바꿔낼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끈덕진 마음으로
1980년 5월의 꿈을 함께 이루어갑시다.
저도 뒤로 숨지 않겠습니다.
박관현 열사처럼, 윤상현 열사처럼 이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겠습니다.
역사의 부름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습니다.

1980년 5월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켰던 광주항쟁의 영웅들이
2016년 5월 여러분께 시그널을 보냅니다.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잘못된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그래도 36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이런 물음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실 겁니까?
드라마처럼 "우리가 달라지게 만들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총칼 앞에서도 당당하게 새로운 세상을 외쳤던
오월의 영웅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우리가 달라지게 만들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공부할 수 있고,
취업하고 창업할 수 있는 나라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도전할 수 있고,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나라
누구나 도전하고, 성장하고, 실패하고, 그러고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를 향해 우리 함께 갑시다.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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