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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백자만 보물인가…먹고 입고 마시는 게 다 문화”

중앙일보 2016.05.13 01:15 종합 24면 지면보기

통도사 성파 스님의 장독대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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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암 장독대. [양산=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둘이 아니었다. 줄지어선 장독이 1500개는 족히 넘었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서운암 경내. 운치가 넘쳤다. 장독 뚜껑을 열었더니 더 장관이다. 된장·고추장·간장 등이 가득했다. 단순한 장이 아니었다. 신라 때 창건한 통도사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방식으로 담근 장이다. 장을 담근 이는 통도사의 여성 신도들이 아니다. 영축총림 통도사의 수좌이자 조계종 원로의원인 성파(性坡·77) 스님이다. 장독도 그냥 장독이 아니다. 100년, 200년, 300년이 훌쩍 넘는 ‘문화재급’ 장독들이 수두룩했다. 산사의 수도승이 왜 장독에다 된장을 담그는 걸까. 성파 스님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물었다.

천한 사람도 고관대작도 썼던 장독
그 자체가 우리민족 생활 문화유산
서운암에 300년 넘는 장독 수두룩
1500개 독 속엔 손수 담근 장류
일상용품의 예술적 수준 올라가야
진정한 1등 문화, 1등 국가 될 것

 
“밥이 문화다.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고, 자는 생활이 다 문화다. 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장독만 해도 그렇다. 고려청자, 이조백자만 보물인가. 장독에는 고하귀천(高下貴賤)이 없었다. 천한 상놈 집에도 있고, 고관대작의 집에도 있었다. 심지어 왕이 사는 궁궐에도 있었다. 장독은 서민적이면서도 귀족적이다.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사용해 온 용기 아닌가. 독 자체가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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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은 다음달 8일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서예전을 연다. 전시회를 위해 직접 그린 연봉우리 서화다. [양산=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80년대에 아파트가 마구 생기면서 장독이 천대를 받기 시작했다. 아파트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장독을 길에다 내다버렸다. 성파 스님은 만든 지 50년 넘은 장독들 위주로 가져왔다. ‘조금만 더 지나면 저런 장독들이 없어지겠지.’ 당시 50년짜리가 지금은 80년짜리가 됐다.
왜 50년 넘은 장독만 모았나.
“그런 장독은 순수 자연 유약을 썼다. 그래서 독이 숨을 쉰다. 옛날 독은 숨구멍이 있다. 코팅된 요즘 장독과 다르다. 장을 담가보면 맛도 다르다. 서운암에서는 옛날 장독에다 직접 장을 담근다.” 서운암의 된장과 고추장은 일반에도 판매한다. 성파 스님은 “불교도 이제는 ‘생산 불교’가 돼야 한다. 자체적으로 뭘 생산해서, 자신의 힘으로 사찰을 꾸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나는 한국불교가 자발적으로 살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성파 스님이 방점을 찍는 것은 ‘전통문화의 복원과 진화’다. 그걸 위해 10년 넘게 산에서 약초를 뜯어 효소를 담갔다. “10년 묵은 산야초 효소 20t을 생산해서 모아두었다. 그런 효소가 모두 우리 음식문화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식재료다.” 서운암에는 땅속에서 12년째 묵히고 있는 김치독도 있다. 6월에는 잠시 뚜껑을 열어 맛을 볼 참이다. 성파 스님은 “담근 지 15년 된 된장도 500독이 있다”고 말했다. 서운암이 한국 전통음식문화의 ‘살아 숨 쉬는 박물관’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성파 스님은 “나는 다른 데서 태어났지만, 승려로서는 통도사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590~658)가 1400년 전에 세운 절이 통도사다. “여기 와서 공양간 밥 짓는 것부터 온갖 심부름을 하면서 배웠다. 지금까지 통도사에서 80년 가까이 살고 있다. 나는 자장 스님의 종손이다. 그러니까 1400년 전통을 가진 절집의 종손이 담은 된장인 셈이다. 국제화 시대다. 이런 걸 국가에서 브랜드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고작 100년 조금 넘은 것 가지고 그러지 않나.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를 향해 ‘명품’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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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염료로 그린 민화. [양산=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파 스님의 방바닥은 새까맣다. 옻으로 검게 칠을 했다. 자세히 보면 검정 바탕 위에 반짝이는 점들이 박혀 있다. 스님은 “우주를 그린 것”이라고 했다. 스님이 앉은 뒤편에는 직접 그린 병풍이 세워져 있었다. ‘금강산 만물상’ 그림인데, 가까이 보니 산봉우리 하나하나가 실제 사람의 형상이었다. 모자를 쓴 이도 있고, 고개를 숙인 이도 있다. “금강산의 속성이 뭔가. ‘금(金)’이다. 그게 우리의 자성(自性)이다. 금은 안 변한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이 만 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게 금강산이다. 봉우리, 봉우리 생긴 건 다 달라도 ‘금’이라는 바탕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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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염료로 그린 불화. [양산=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스님께서는 서예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그 역시 금강산의 봉우리인가.
“그렇다. 우리의 생활,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전통, 우리의 예술이 다 금강산이다. ‘서화일원(書畵一源)’이라 했다. 아무리 복잡한 그림이라도 점 하나로 시작한다. 점이 모여 획이 되고, 획이 모여 글자가 된다. 그림도 그렇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그림이 된다. 붓으로 글씨를 쓰면 서예, 그림을 그리면 서화다. 처음 근본은 점 하나다.”
우리의 삶에서는 그 점이 뭔가.
“‘응애’하고 태어나는 거다. 그렇게 태어나는 게 우주에 점 하나 찍는 거다. 그 점으로 선을 긋고, 그 선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게 우리의 삶이다. 각자 ‘나의 삶’이란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나. 그러니 삶이 문화이고, 삶이 예술이다. 먹고, 자고, 마시고, 입는 우리의 생활. 그 모두가 문화이자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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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은 “예술가들은 너무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급 예술은 땅으로 내려오고, 생활문화의 예술은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예술가들은 예술적 지혜를 생활문화에 내놓아야 한다. 날마다 먹는 식탁에 필요한 것, 우리가 먹고사는 데 필요한 것들 말이다 그럼 일상용품의 예술적 수준이 올라가고, 생활문화 수준도 함께 올라간다. 그럴 때 1등 문화수준, 1등 민족, 1등 국가가 되지 않겠나.”

양산=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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