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격은 문화에서 나오고, 문화는 음식으로 표현된다

중앙일보 2016.05.13 00:50 종합 30면 지면보기
조태권(68) 광주요 회장은 한식 문화 전도사다. 그냥 한식이 아니라 고급 한식을 강조한다. 한 끼에 수십만원을 받는 고급 음식점을 내고 위스키 값에 버금가는 명품 전통주를 만들어 팔았다. 그리 남는 장사는 아니다. 본업인 도자기 사업은 20년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음식점도 수익성 있는 장사는 아니다. 10년간 100억원의 적자였던 고급 전통주 사업이 지난해 흑자로 돌아선 게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성과다. 그럼에도 그에겐 지친 기색이 전혀 없다. 예쁜 도자기에 좋은 음식과 술이 조화를 이룬 ‘한식 한류’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한식이 초밥이나 피자처럼 세계화되면 내가 만든 도자기가 잘 팔리고 대한민국이 먹고살 거리도 생길 것”이라며 “종량세로 묶여 있는 주류세처럼 불합리한 규제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기사 이미지

조태권 광주요 회장은 “음식과 도자기, 전통주가 조화를 이룰 때 한식 문화의 정체성이 생기고 ‘한식 한류’도 가능하다”며 “정부는 ‘한식 세계화’한다며 직접 나서지 말고 좋은 음식과 술이 인정받을 수 있는 시장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사진 김경빈 기자]

 
도자기를 만들며 식당을 하고 술도 빚으니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20여 년 전 선친이 돌아가시면서 광주요를 맡게 됐다. 주로 일본에 다기를 수출했는데 생활도자기로 영역을 넓히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음식과 술에 관심이 생겼다. 도자기에 담아 내놓을 고급스러운 한식이 없다는 것, 위스키와 사케처럼 한국을 대표할 술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해보자고 한 게 오늘까지 오게 됐다.”
도자기와 음식, 술이 세트라는 얘기인가.
“음식이야말로 대표적인 문화 상품이다. 한 나라의 역사와 전통이 식탁 위에 고스란히 표현된다. 그릇과 음식, 술을 떼놓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봐도 도자기가 유명한 나라는 음식과 술도 유명하다. 영국과 일본, 중국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 가지 모두 일제시대라는 단절을 겪었다. 궁중요리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의 명맥이 끊겼고 전통주와 도자기가 식탁에서 사라졌다. 산업화 시대에도 질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식의 정체성이 불분명해졌다.”
식당을 낸 건 그래서인가.
“도자기가 많이 팔리려면 좋은 음식이 많이 나와야 하니까….(웃음) 사실 나도 처음엔 몰랐다. 예전 대우실업에서 옷을 수출하다 독립해 자동차·군수물자로 돈을 많이 벌고 있었다. 선친이 돌아가시고 갑자기 광주요를 맡은 뒤 공장부터 크게 지었다. 상품 수출하듯 질 좋게 만들면 잘 팔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담아 먹을 고급 한식이 없으니 도자기 수요가 없었다. 그 덕에 지금까지 26년간 줄곧 적자를 보고 있다. 15년쯤 전에야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집을 개조해 1층을 식당처럼 만들었다. 셰프들을 고용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게 하고 수백 명의 손님에게 평가를 받았다. 식당은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다.”
10여 년 전 ‘화요’라는 술까지 만들었다.
“식당을 낸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 품격 있는 한식을 만들자는 거였고, 고급 퓨전 한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금은 그런 식당이 많아졌고 트렌드로 정착됐다. 다음 차례는 당연히 술인데, 그냥 술이 아니라 전통주를 하고 싶었다. 고급 양식엔 포도주, 일식엔 사케가 따라오지 않나. 한국 하면 떠오를 술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전통주는 안 그래도 많이 있지 않나.
“막걸리도 있고 소주도 있다. 종류가 많지만 정작 세계에 내놓아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술은 아직 없더라. 고민하다 증류주인 소주를 만들기로 했다. 막걸리 같은 발효주는 보관과 운송 때문에 세계로 내보내는 데 한계가 있다. 국내 최고로 꼽히는 블렌더 두 분을 모셔다 41도와 25도짜리를 만들었다. 각각 보드카, 일본 소주와의 경쟁을 염두에 뒀다. 도중에 돈이 다 떨어져 회사 빌딩까지 팔았지만 지난해에 흑자로 돌아서 보람을 느낀다.”
음식과 술 모두 세계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음식이야말로 가장 필수적이고 큰 시장이다. 하지만 부가가치는 천차만별이다. 선진국에 가보면 5달러짜리부터 1000달러짜리까지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다. 각각 그에 맞는 도자기와 술이 있다. 그런데 우리 한식은 그 부가가치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왔다. 외국에 가서 한식당을 가보면 그리 고부가가치 사업이 아니다. 재료비에 인건비를 얹어 파는 수준이다. 거기에 문화가 담기면 부가가치를 급속히 올릴 수 있다. 상품 수출하는 것 못지않은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 한식 세계화를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건을 수출하듯 바라봤기 때문이다. ‘음식은 문화’라는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정체성 없이 나갔다. 한식 세계화는 김치나 불고기 같은 상품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음식을 담는 그릇과 곁들이는 술, 이걸 제공하는 식당의 분위기가 모두 조화를 이뤄야 한다. 식당이 한국의 문화 정체성을 파는 전시장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가기만 하면 방법이 생긴다는 식이었다.”
준비가 부족했다는 말로 들린다.
“문화는 억지로 내보낸다고 퍼지지 않는다. 안에서 가득 차 흘러넘쳐야 한다. 가요나 드라마도 외국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한류가 되지 않았나. 그러려면 국내에서부터 품질을 쌓고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준비가 덜 됐다. 음식 문화를 구성하는 도자기와 음식, 술만 해도 일제시대 때 단절된 데다 융합되지도 못한 상태다. 외국에선 여기에 옷과 건축까지 가세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안 되고 있는 걸로 나가려고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상품 수출은 수요에 맞추면 되지만 문화는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지지 않았나.
“물론이다. 전엔 한식은 집에서 먹는 음식이었다. 밖에서 사먹을 때도 끼니를 때우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제대로 된 식당들이 생기고 셰프가 더 이상 식모나 주방장이 아니게 됐다. 생활도자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방송국에서 소품으로 빌려달라는 일도 많아졌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절반은 왔다고 본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시작했지만 그 길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발전 속도를 높일 계기가 있을지 궁금하다.
“음식점 평가의 대명사인 미쉐린(미슐랭) 가이드가 올해 한국에 들어온다. 내년부터 이들의 주목을 받는 음식점들이 가려질 것이다. 이러면 돈 있는 사람들이 이런 식당과 셰프에게 투자하고 좋은 도자기와 술을 찾는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면서 한식의 질이 자연히 높아지고 세계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사람들은 미각이 발달돼 있고 재능도 있다. 제대로 평가되는 시장이 되면 전 세계 스타 셰프 중 반은 한국 사람이 될 것이다.”
정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직접 나서지 말고 토양을 만들어주면 된다. 한식 세계화 한다고 정부가 직접 도자기 굽고 김치를 담글 수는 없다. 좋은 도자기와 요리가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 되게끔 공정한 관리자 역할만 하면 된다.”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얘긴가.
“전통주 만들어 팔기가 참 힘들었다. 기존 업체들은 ‘화요’가 전통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옛날 방식으로 만들어야 전통주라는 것이다. 전통의 의미마저도 왜곡돼 있다. 문화는 과거를 현재화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잘 활용하는 것 아닌가. 기존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유통망에서도 술을 잘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 군에 납품하려 했더니 3년 이상 흑자를 본 회사의 제품만 가능하다고 하더라. 진입장벽이 겹겹이 쌓여 경쟁을 막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요즘 활력을 잃고 있는 이유 아닌가 싶다.”
요즘 술에 붙는 세금을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알코올 도수에 상관없이 출고가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게 종가세다. 1971년부터 44년 됐는데, 원가가 높을수록 세금이 많이 붙는다. 주류업체로선 애써 고급 술을 개발하기보다 값싼 술을 많이 팔거나 외국 술을 들여다 파는 게 낫다. 또 국산 술은 이윤과 광고비 등을 합한 출고가에 세금을 매기는 데 반해 수입 술은 수입 신고가에 세금을 매기니 국산 술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양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면 술의 질이 높아지고 폭음 문화도 사라질 것이다.”
한식 문화 전도사가 아닌 경영자로서의 꿈은 뭔가.
“나를 믿고 들어온 우리 직원들이 잘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150여 명인데 다들 오래 일했다. 나는 외길로 왔지만 어려울 때마다 길이 열렸다.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니 행복하다. 직원들도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한식이 제대로 세계로 나가 많은 사람의 먹고살 거리, 후세들이 살아갈 바탕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전통에 바탕을 두고 우리 문화가 발전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조태권 회장은…

[나현철의 직격 인터뷰] 명품 전통주 ‘화요’ 만드는 조태권 광주요 회장

조소수 ㈜광주요 창업주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미국 미주리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옛 대우그룹에서 섬유·철강 등을 수출하다 독립해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1988년 광주요를 이어받고 음식 문화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눈을 떴다. 2003년 고급 한식집 ‘가온’을 내고 2005년 증류식 소주 ‘화요’를 출시했다. 2007년 사재를 털어 미국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 관계자들에게 1인당 320만원 상당의 한식 만찬을 선보여 한식 세계화의 상징이 됐다.

글=나현철 논설위원
사진=김경빈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