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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편찬 기준 공개 않고 초고 마친 국정교과서

중앙일보 2016.05.13 00:39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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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사회부문 기자

지난 1월 중순 확정된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 기준에 따라 집필진 46명이 쓴 교과서 초안이 이달 11일 완성됐다. 지금까지 교과서의 뼈대가 되는 편찬 기준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거셌지만 교육부는 공개 시점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기자도 교육부 인사들을 설득해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지난 3월 정보공개법이 보장한 절차에 따라 교육부에 편찬 기준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교육부가 정보를 비공개한다면 그 공식적인 이유를 듣고 싶어서였다. 보름이 지난 뒤 받은 교육부 답변은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5호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는 단 한 줄이었다.

1998년부터 시행된 정보공개제도는 공공기관의 정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일부 민감한 정보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교육부가 내세운 조항은 ‘의사결정 과정이나 내부 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편찬 기준이 과연 이러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의문이었다. 이미 완성된 편찬 기준은 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도 아닐뿐더러 공개가 업무에 지장을 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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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기자는 교육부에 ‘이의신청’을 하면서 편찬 기준 공개가 교과서 집필에 어떤 지장을 초래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3주가 지나서야 교육부는 “이의신청을 기각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리고 “편찬 기준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면 집필진은 심대한 정신적 압박을 느끼게 될 것이며 교과서의 개발·보급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집필진의 심적 안정을 위해 논란을 막겠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교육부는 집필진 명단도 ‘안정적 집필’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아예 “우리도 집필진 명단을 모른다. 국사편찬위에 일임했다”는 식으로 일관했다. 명단도 아닌 편찬 기준 공개가 어떻게 집필진에게 정신적 압박을 초래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2007년 교육부는 수능시험 원점수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했다. 그때도 학교 서열화 등 부작용을 우려하며 ‘업무 수행에 지장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0년 “부작용도 인정하지만 정보를 공개해 교육 현실에 대한 생산적 토론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결했다.

역사 교과서에 관한 교육부의 비밀주의는 교과서 집필을 수월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논란이 사그라들까. 공개 이후로 미뤄질 뿐이며, 그동안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집필진의 심적 안정이 국민의 신뢰보다 중요한지 정부에 재차 묻고 싶다.

남윤서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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