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길 속 그 이야기] <73> 서울 동작충효길

중앙일보 2016.05.13 00:06 Week& 4면 지면보기
| 충절·효심·애국심 깃든 곳 … 숙연해져 가슴이 찡하네요

 
기사 이미지

동작충효길 2코스는 국립서울현충원을 관통한다. 관악산에서 뻗어나온 화장산을 병풍처럼 두른 현충원은 추모공간이자 잘 가꿔진 정원이다. 현충원 곳곳에 평탄한 산책로가 있어 어린이도 산책하기 좋다. 기자(왼쪽)가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주민과 잠시 걸었다.



2012년 서울 동작구가 조성한 동작충효길은 동작구 안에 있는 근린공원 산책로와 등산로, 지역 명소를 연결해 조성한 아기자기한 트레일이다.
걷기에 힘든 구간이 없어 온 가족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전체 길이 25㎞의 동작충효길은 모두 7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보라매공원(5코스), 노량진 수산시장(3코스), 국립서울현충원(2코스) 등 명소도 품고 있다. 7개 코스 모두 각 코스가 5㎞를 넘지 않는다. 가족과 가벼운 산책을 나선다면 적당할 수 있지만, 걷기여행길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감이 있다.
그래서 week&은 1코스 고구동산길(3.2㎞)과 2코스 현충원길(2.6㎞)를 연결해 걸었다. 그래도 6㎞ 길이가 안 되지만, 둘러볼 곳이 많아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충심(忠心)과 효심(孝心)을 담은 길

1코스는 지하철 9호선 노들역 2번 출구와 곧장 연결되는 노들나루공원에서 시작됐다. 노들나루공원은 조선시대 한강 5대 나루 중 하나인 노들나루가 있던 곳이다. 옛날에는 한강변 곳곳에 전국에서 물자를 싣고 온 배가 모이는 나루가 있었다. 그 중에서 광나루(광진구 광장동)·삼밭나루(송파구 삼전동)·동작나루(동작구 동작동)·노들나루(동작구 본동)·양화나루(마포구 합정동) 등 5곳이 가장 성했다고 한다.

노들나루에는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온 배가 주로 정박했다. 군사가 주둔해 치안을 관리했을 정도로 왕래가 많았던 노들나루는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고 이듬해 한강철교가 생기면서 나루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 옛날 시끌벅적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한적한 공원으로 변해 있다.

 
기사 이미지

한강대교가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용양봉저정. 조선 정조 때 세워진 정자다.



노들나루공원을 가운데 두고 왼쪽으로 사육신 역사공원이, 오른쪽으로 ‘용양봉저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보였다. 먼저 사육신 역사공원으로 향했다. 조선 단종(1441∼57)의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당한 사육신(死六臣), 그러니까 성삼문(1418~56)·박팽년(1417~56)·이개(1417∼56)·유응부(?∼1456)·하위지(1412∼56)·유성원(?∼1456) 등의 묘가 있다.

사육신 역사공원이 충절을 품은 곳이라면, 용양봉저정은 정조(1752∼1800)의 효심이 깃든 곳이었다. 정조는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1735∼62)의 무덤을 경기도 양주에서 수원 화성으로 옮기고 매년 참배를 갔다. 그때마다 정조는 지금의 서부이촌동 부근 한강변에서 노들나루까지 배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넜다. 정조의 현륭원(사도세자 묘) 참배는 어마어마한 행사였다. 참배를 갈 때마다 2000∼3000명이 한꺼번에 움직였는데 행렬 길이가 자그마치 4㎞에 달했단다. 당시 한강의 강폭은 300∼400m로 지금의 3분의 1 정도로 좁았지만 배를 모으고 다리를 설치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모든 일행이 다리를 건너고 행렬을 정비하는 동안 정조는 용양봉저정에서 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용양봉저정 대청에 걸터앉아 정조가 그랬던 것처럼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심정을 감히 헤아려보았다.

 
기사 이미지
고구동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기사 이미지
고구동산 게이트볼장.


노들역 4번 출구를 지나자 정면에 동작구 상도동과 본동을 잇는 상도터널이 보였다. 길은 터널 위 고구동산으로 이어졌다. 해발고도가 약 100m 되는 고구동산은 전체가 노량진 근린공원으로 지정됐다. 고구동산 산책로는 어른 네댓 명이 한꺼번에 지나다녀도 괜찮을 만큼 널찍하고 경사도도 거의 없었다. 상도동 주민이었던 김영삼(1927∼2015) 전 대통령도 생전에 매일 새벽 고구동산 산책로에서 조깅을 했단다. 산책로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의자와 정자가 많았다. 게이트볼장 옆에 마련된 전망대에서는 한강과 강 건너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기사 이미지

서달산 잣나무숲길. 우거진 숲 사이로 평탄한 산책로를 조성했다.



고구동산에서 내려와 중앙대 후문에 다다랐다. 중앙대 후문부터 서달산 입구까지 약 200m 구간은 찻길 옆 인도를 따라갔다. 서달산(179m)은 아이와 함께 걷기에 좋은 곳이었다. 우거진 잣나무 사이로 난 평탄한 길이 정상까지 이어졌다. 길 중간에는 통나무 징검다리, 나무로 만든 시소 등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 시설도 있었다. 1코스는 서달산 정상을 지나 현충원 상도출입문 앞에서 끝났다.



희생정신이 깃든 길

 
기사 이미지

현충원 군인 묘소.



현충원은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명당이다. 관악산에서 뻗어 나온 화장산(174m)을 병풍처럼 두른 채 한강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다. 면적은 143만㎡(약 43만 평)로, 묘소 약 5만4000기(基)와 위패 10만위(位)가 모셔져 있다.

현충원에는 모두 6개 문이 있는데, 지하철 4·9호선 동작역을 바라보고 있는 정문을 제외한 나머지 5개는 화장산 능선에 위치한다. 정문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흑석2통문·흑석1통문·상도출입문·사당출입문·동작출입문이 차례로 있다. 각각 흑석동·상도동·사당동·동작동으로 연결된다.

동작충효길 2코스(2.6㎞)가 이 현충원을 관통한다. 상도출입문으로 들어가 사당출입문으로 나온 뒤 이수갈림길을 지나 동작역에서 끝난다. 현충원 안에서 길은 화장산 동쪽 능선을 따라서 이어지는데, 굳이 정직하게 코스대로 걸을 필요는 없다. 현충원 안에 능선 길 말고도 가을 단풍이 멋진 ‘솔냇길(2.4㎞)’, 현충천변 산책로 ‘겨레길(2.4㎞)’ 등 걷기 좋은 산책로가 많기 때문이다. 현충원 안에서 머무는 시간에 따라 걷는 시간이 한없이 늘어난다. 걷다가 힘들면 아무 나무 아래 잔디밭을 찾아가서 돗자리 깔고 쉬었다 가도 된다. 산책로 대부분이 경사가 완만해 유모차도 충분히 다닐 수 있다.

 
기사 이미지

현충원 초입 현충문 앞에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쉬어가기 좋다.



수령 50년이 넘은 나무가 울창한 현충원은 추모공간이자 커다란 정원이다. 봄에는 능수벚나무 꽃잎이 흩날리고 가을에는 누런 은행잎이 비처럼 떨어진다. 지난 1일 현충원을 찾아갔을 때 이미 벚꽃은 지고 없었다. 대신 나무마다 신록이 올라와 영롱한 빛을 뿜어냈다. 노정석(56)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현충원 곳곳을 누볐다.

“1955년 개원 당시 현충원은 한국전쟁 때 희생된 군인을 안장하는 국군묘지였어요. 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군인뿐 아니라 애국지사나 대통령도 현충원에 묻힐 수 있게 되었죠.”

 
기사 이미지

현충원 안 호국지장사에는 지장보살상 2500여 기를 모아놓은 지장전이 있다.



현충원 안에는 사찰도 있다. 상도출입문 근처 산자락에 들어앉은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827∼898)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이 절에는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지장보살상 2500여 기를 모신 지장전(地藏殿)이다. 이 지장보살상 하나하나에 현충원에 묻힌 애국지사 2500여 명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기사 이미지
고 박정희 대통령 묘소 근처에 있는 공작지.
기사 이미지
고 김영삼 대통령 묘소.


박정희(1917∼79) 전 대통령과 육영수(1925∼74) 여사의 묘소는 현충원 가장 안쪽에 있다. 국립묘지설치운영법에 따르면 대통령 배우자의 경우 합장만 가능하며 쌍분(雙墳)은 만들 수 없다. 하나 육영수 여사의 경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합장하지 않고 따로 묘를 만들었단다. 현충원에서 유일한 쌍분이다.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 묘소와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 묘소를 거쳐 김영삼 전 대통령 묘소도 들렀다.

“현충원 방문객 대부분이 역대 대통령 묘소만 들르는데, 제가 추천하는 곳은 따로 있어요. 바로 충열대 무후선열제단입니다.”

 
기사 이미지

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모신 독립운동가의 위패.



노 해설사를 따라 무후선열제단에 들었다. 무후선열제단에는 유관순(1902∼20) 열사,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1868∼1943) 장군 등 독립운동가 133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유해를 찾지 못해 묘소를 만들지 못하고 작은 위패로 대신한 것이다. 아무 설명도 없이 이름 석 자만 적은 위패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현충탑·현충문을 지나 여정을 마치고도 한참 동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동작충효길은 이래저래 여운이 많이 남는 길이었다.



 
기사 이미지


 
기사 이미지
길 정보=동작충효길은 코스마다 지하철역과 연결돼 접근성이 좋다. 동작충효길을 관리하는 동작구가 따로 길 해설프로그램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대신 갈림길마다 이정표를 꼼꼼하게 배치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다. 동작구청 홈페이지(dongjak.go.kr)에서 지도와 안내책자를 내려받을 수 있다. 동작구 공원녹지과 자연생태팀 02-820-9848. 국립서울현충원(snmb.mil.kr)이 매주 토요일 하루 두 차례(오전 10시, 오후 2시) ‘해설과 함께하는 현충원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1577-9090.




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