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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가와쿠보 구멍 낸 스웨터 등 패션 규칙 파괴

중앙일보 2016.05.13 00:03 Week& 6면 지면보기
| 일본 디자이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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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컬렉션 무대에서 패션쇼를 여는 일본 디자이너들. 레이 가와쿠보, 준야 와타나베,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왼쪽부터).



세계 최고의 패션 무대로 꼽히는 파리에서 컬렉션을 발표하는 일본 패션 디자이너는 10여 명쯤 된다. 레이 가와쿠보가 이끄는 ‘꼼 데 가르송’, 디자이너 이름을 쓰는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준야 와타나베 등이 대표적이다. 파리 컬렉션 5년차인 사카이의 치토세 아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그 중에서 ‘신세대’에 속한다.

일본 디자이너들은 1950년대부터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70년대에 겐조 다카다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겐조’로 성공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일본 디자이너들은 80년대 들어서 큰 흐름을 이루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전통적인 서양 복식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으면서 주목받았다.

레이 가와쿠보는 몸 자체보다는 몸을 둘러싼 공간을 강조했다. 체형보다 큰 사각형의 직물로 만든 실험적인 실루엣, 의도적으로 찢고 구멍을 낸 스웨터, 낡고 너덜너덜한 소재의 이브닝 드레스 등 패션의 일반적인 규칙들을 파괴한 ‘해체주의’를 소개했다. 여성의 몸, 완벽한 스타일에 가치를 두던 서구 패션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꼼 데 가르송은 일본 디자이너들을 배출하는 인큐베이터 역할도 했다. 브랜드가 한창 뻗어나갈 때 가와쿠보 밑에서 일하며 배웠던 ‘꼼 데 키즈’가 준야 와타나베, 치토세 아베 등이다. 한 패션평론가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레이 밑에서 훈련받는 것은 선물이다. 미켈란젤로에게서 직접 배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아베 디자이너는 꼼 데 가르송이 글로벌 패션계에서 혁신을 불러일으키던 80년대부터 97년 퇴사할 때까지 이곳에서 실력을 쌓았다. 그는 “레이 가와쿠보와 함께 일하면서 ‘독립적이고 자주적일 것’, 그리고 ‘남들과 다를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독창적인 옷을 만들어내는 법,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패션을 비즈니스로 대하는 방법도 가와쿠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얻은 자산이다.

꼼 데 가르송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는 92년 꼼 데 가르송의 한 라인으로 브랜드 ‘준야 와타나베’를 론칭했다. 와타나베 디자이너로부터는 “뭐든 시도해 보는 것,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 찾고 꾸준히 노력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꼼 데 가르송에서 익힌 실험적인 실루엣과 중성적인 스타일, 준야 와타나베에서 배운 패브릭 소재 감각에다 아베 디자이너 특유의 재미있는 발상과 낭만적인 감성이 사카이를 만들어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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