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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그땐 잘나갔지’ 추억하는 남자들 이해해 주세요

중앙일보 2016.05.11 00:04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옛날 내 모습 그립다는 남편에게 화난 40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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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결혼기념일인데 참 눈치 없네요) 40대 초반 주부입니다. 며칠 전 결혼기념일이었어요. 아기를 재우고 남편이랑 둘이서 오붓하게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데 이 남자, 문득 거실에 걸려있는 결혼사진을 보더니 “아 저 여자는 어디 갔을까? 저 여자 보고 싶다”라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혈압이 확 올랐습니다. 저도 ‘옛날 그 남자’ 다시 보고 싶은 건 마찬가지라고요. 왜 남편은 대놓고 옛날의 제 모습을 그리워하는 걸까요. 지금도 예쁘다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요.

A (남자가 여자보다 과거 미화해요) 결혼기념일에 아기 재우고 고기를 함께 구워 먹고 있는 건 기분 좋은 편안한 상황이고, 자연스럽게 애틋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기회인데 남편이 주책 맞게 ‘저 여자는 어디 갔을까’라며 과거로 타임머신 타고 가버리니 아내 입장에서 좋던 기분이 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남자들이 여자보다 과거로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더 있지 않나 싶은데요. 오래된 단골 냉면 집에 가보면 남자 어르신들이 소주 한잔하시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끔 가까운 테이블에서 그분들이 하는 말씀도 본의 아니게 듣게 되는데 대화 중 많이 나오는 말이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입니다. 대통령을 키우신 분도 계시고, 강원도에서 제일 힘이 세셨던 분도 계십니다. 왕년에 말이죠.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비슷한 현상입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저 역시 제 마음속에 옛날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욕구가 자라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과거 이야기를 할 때 대체로 실제 기억보다 과장되고 미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과거의 멋졌던 나를 돌아보며 자기 만족감을 느끼기에 과거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체로 남자는 내가 강하고 멋지다고 생각할 때 기분이 좋아집니다. 다소 과장되게 재구성된 과거 기억 속에서 강한 나를 느끼는 것입니다. ‘아 저 여자 어디 갔을까, 저 여자 보고 싶다’란 남편의 말이 아내 입장에선 ‘지금 여자는 이제 매력이 없다’고 들릴 수 있겠지만 그보다 ‘저런 멋진 여자와 사랑을 나누던 멋진 나는 어디에 있을까’라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 냄새가 과거로의 여행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여성들은 ‘왕년에는 말이야’란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결혼기념일에 아내를 기쁘게 하고 싶다면 남자들이 과거 여행에 빠지면 안 됩니다. 지금 예쁘다고 말해야 합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남자의 거짓말

Q (왜 술 마시면서 일한다 속이죠) 남편에 대해 ‘왜 그럴까’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일한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차라리 걸리지를 말든가요! 그런데 저한테 늘 걸리는 게 문제예요.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제가 싫어하니까, 그리고 저랑 싸우기 싫어서 그런대요. 거짓말하다가 걸리면 더 싸우는데 말이죠. 제 남편 왜 이러죠? 남자들 다 이런가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A (아내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저까지 뜨끔하게 만드는 사연입니다. 거짓말에 대한 연구를 보면 남자들이 대체로 여자보다 거짓말을 더 자주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평생을 간직하는 깊숙한 거짓말은 여성이 더 많이 한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남자들이 거짓말을 좀 쉽게 하는 편이고 걸리기도 잘한다는 것인데요. 해외의 한 연구에서 남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이 ‘지금 집에 들어가는 길이야’였다고 하니, 동서양 남자들이 아내한테 혼날까 봐 거짓말로 대충 둘러대는 것은 비슷한 듯합니다.

내가 화내고 걱정하는 것이 싫어서 ‘하얀 거짓말’을 한 거라고 남편들은 항변하지만, 거짓말임을 알게 된 아내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을 알았을 때 공감의 느낌이 사라지기에 속상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여성은 공감의 느낌이 사라지면 남성이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결혼 생활 자체가 후회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아내는 ‘거짓말하는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성을 무시하는 거냐’고 속상해합니다.

그러나 남자의 마음을 제가 좀 변호한다면 아내를 꼭 무시해서 남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들이 센 척하지만 의외로 마음이 굉장히 여립니다. 아내들이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느냐’ 또는 ‘매일 이렇게 술을 먹을 거냐’고 잔소리를 하면 사랑으로 느끼기보다 좌절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나는 내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못난 남자라고 자책하는 거죠. 남자는 자신이 강하고 멋있다고 느낄 때 자존감이 올라가는데 그렇지 못하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의 잔소리가 싫어 거짓말을 하든지, 화를 내든지, 아니면 상대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행동을 합니다.

남자의 거짓말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고, 부부 갈등이 남녀의 심리적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려고 한 것인데요. 남녀가 잘 지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떡볶이 때문에 헤어질 뻔한 부부

다시 태어나도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시겠어요? 잉꼬부부라면 다시 태어나도 또 이 배우자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할 듯합니다. 잉꼬부부는 어느 정도 될까요. 한 정부 기관에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 남성은 45%가 꼭 다시 결혼하겠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19.4%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양쪽이 다 만족스러워야 잉꼬부부라 할 수 있으니 잉꼬부부는 열 커플에 두 커플이 안 되는 셈이네요. 실제로 60세 이후 황혼 이혼이 초혼 이혼을 앞선 상황입니다. 잉꼬부부로 쭉 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내가 배우자를 잘못 선택해서 내 결혼이 불행한 것일까요. 사람은 다 다르기에 나와 잘 맞는 배우자를 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골라도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심리적으로 달라 갈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남자는 당신이 ‘최고야’라고 느낄 때 위로를 받는 반면 여성은 ‘당신을 진심으로 이해해’라는 공감 어린 말에 힐링을 얻습니다.

남녀 심리 차이로 인한 갈등의 예로 떡볶이 때문에 갈라설 뻔한 웃지 못할 사연을 소개해 드립니다. 아내가 비가 내리는 날,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어 남편에게 전화했습니다. ‘여보 나 떡볶이 먹고 싶어 퇴근할 때 사다 줘’라고요. 그런데 그날, 남편 심기가 좋지 않습니다. 상사에게 무능력하다고 심하게 질책을 받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떡볶이 사다 달라는 아내의 이야기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섭섭하다 못해 화까지 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화를 내버렸습니다. ‘내가 당신 떡볶이나 사다 주는 사람이냐고요’고요. 부부는 그리고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친정과 시댁에 대한 불만까지 이야기하면서요. 떡볶이 때문에 갈라서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떡볶이 사줄게.’ 이 말이 정답인데 직장에서 상처받은 남편에게는 이런 말을 할 여유가 없었던 거죠. 아마도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아내는 ‘남편이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구나’하고 생각해 떡볶이 심부름을 평생 면제해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남녀가 참 다릅니다.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 때 아내분들이 남편에 대해 섭섭한 이야기를 하는데 다 제 이야기여서 속으로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남녀가 함께 살아가며 맞춰 간다는 것은 서로의 감성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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