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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준이 떠난 5월의 그날, 사진 들고 ‘런던아이’ 탄 아빠

중앙일보 2016.05.10 01:54 종합 12면 지면보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가정의 달’ 5월은 고통의 시간이다. 가습기는 통상 겨울과 초봄에 많이 쓰인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폐섬유화(폐가 딱딱하게 굳음) 증상으로 투병 생활을 시작하거나 목숨을 잃은 시기는 4~6월에 몰려 있다.

영국 옥시 항의 방문한 김덕종씨
런던 관람차 올라 SNS에 글 남겨
겨울철·초봄에 가습기 주로 사용
투병하다 4~6월 숨진 경우 많아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등 3명 소환
검찰 “영장청구 여부 이번 주 결정”

2006년 6월 아들 양준호(사망 당시 23개월)군을 잃은 부은정(44·여)씨는 어린이날·어버이날이 이어지는 ‘황금연휴’ 내내 괴로웠다. 어린이날엔 10년 전 자신이 쓴 ‘병상일기’를 꺼내봤다. 준호가 입원해 있을 때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한 줄씩 써내려 간 일기다. <본지 3월 17일자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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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웃으며 보내야 하는 어린이날,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지 못한 엄마를 용서해줘. 엄마가 좀 더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공부했더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2006년 5월 5일 일기)

준호에게 닿지 못했던 말들을 되새기며 부씨는 눈물을 흘렸다. “준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어린이날 선물로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졸랐을지도 모르겠네요. 지나가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 우리 준호도 저만큼 컸을 텐데라는 생각에….”

부씨는 어버이날 두 딸을 데리고 친정과 시댁에 다녀왔다. 2등급 피해 판정을 받은 부씨와 첫째 딸(11세)을 걱정하는 집안 어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준호를 위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알리는 데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인들과 언론이 뒤늦게나마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면서도 “세월호 사건처럼 정쟁(政爭)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언론의 관심도 금방 사그라들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고 했다.

다른 피해자인 김덕종(40)씨는 2009년에 잃은 아들 승준(당시 5세)군의 기일(7일)을 영국 런던에서 맞았다. 그는 지난 6일(현지시간)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의 영국 본사인 레킷벤키저로 갔다. 사과와 책임 인정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7일 런던의 명물인 ‘런던아이’ 관람차 안에서 승준군의 사진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허망하게 떠난 승준이는 7년 만에 런던에서 아빠 손 잡고 런던아이를 탑니다’라는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살아남은 아이들도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 부산에 사는 박나원(5)양은 큰 수술을 앞두고 있다. 애경의 ‘가습기메이트’에 의한 피해자로 분류돼 있는 나원이는 19일 서울대병원에서 갈비뼈 쪽에 있는 연골을 목에 이식해 협착된 기도를 넓히는 수술을 받는다. 나원이는 폐 기능이 약해 목에 꽂혀 있는 튜브를 통해 숨을 쉬고 있다.

어머니 김미향(35)씨는 “멀리 가기 어려워 집 앞 놀이터에서 어린이날을 보냈다”고 말했다. 어버이날엔 나원이가 열이 나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김씨는 “나원이가 가족을 그린 그림과 함께 ‘엄마, 사랑해요’라고 쓴 엽서를 줬다. 건강하게 자식을 키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옥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고 애경으로는 확대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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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우 “평생 참회하며 살겠다”=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은 9일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와 오모(40) 전 버터플라이이펙트 대표 등 3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이 신 전 대표를 부른 것은 지난달 26일에 이어 두 번째다.

신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검찰 출석에 앞서 기자들에게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에게 고통과 피해를 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남은 인생 동안 참회하고 유가족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을 찾아 평생 봉사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주 내로 신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10일 살균제 원료(PHMG)를 만든 SK케미칼의 직원 2명을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가습기 원료 제조와 관련한 첫 소환이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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