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이스택싱] 4·13총선에서 험지생환한 정운천·전현희 당선자 20대 국회 입성기

중앙일보 2016.05.09 00:02
기사 이미지

주변에 택시가 없는 지역은 피하라.”

초보 택시기사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선 반드시 따라야 하는 철칙이다. ‘빈차’로 돌아다니는 택시가 주변에 없다는 건 그만큼 손님을 찾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의미에서다. 경쟁 택시가 있어도 택시가 많은 곳에 함께 있어야 내 택시에도 손님을 태울 수 있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상대 정당의 텃밭 지역에는 후보로 나서는 사람이 드물다. 같은 당 내에 경쟁자가 없는 건 그만큼 당선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는 호남이 더불어민주당에는 영남ㆍ서울 강남권이 험지(險地)로 불리는 이유다.
기사 이미지

보이스택싱에 오른 전현희 당선자(왼쪽)와 정운천 당선자. 사진 디지털 촬영 영상 캡처

기자가 직접 택시를 몰며 민심을 청취하는 중앙일보 보이스택싱(voice taxing)이 새누리당 정운천(62) 당선자와 더불어민주당 전현희(52) 당선자를 만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정 당선자는 전북 전주을,전 당선자는 서울 강남을이라는 험지에 출마해 승리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정치인들도 힘들다는 험지에서 정치신인 격인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 상암동 → 서대문

지난 달 20일 서울 상암동에서 보이스택싱에 승차한 정운천 당선자의 표정은 밝았다. 방송사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 했다.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19대 총선에서 패한 뒤 세번째 도전 끝에 당선된 그에게 왜 야당텃밭인 전북을 고집했는지 물었다.
 
“시작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자리에서 퇴임한 제게 이명박 전 대통령이‘네가 에너지가 있으니까 전북을 한번 살려내봐라’고 간곡하게 권유를 하셨거든요. 2010년에 가보니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전북에 지방자치단체 선출직이 222명 정도였는데 단 한 명도 새누리당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결심했죠. 이걸 깨지 않으면 제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겠구나 했습니다.”
 
기사 이미지

지난달 20일 서울 상암동에서 보이스택싱에 오른 새누리당 정운천 당선자. 사진 디지털 촬영 영상 캡처

 
바닥 민심의 방향을 어떻게 바꿨나요.
기존 체제에 익숙한 오피니언 리더들은 아예 만나지 않았습니다. 서민들 틈에 섞여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죠. 전주에서 유명한 가맥(가게맥주)집에 자주 갔어요. 새누리당 옷을 입고 악수를 청하면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냐. 술맛 떨어진다’고 면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가다 보니 형님ㆍ동생이 되고 친구가 되더라구요.
전북 지역의 유일한 새누리당 의원이 된 그에게 어려움은 없을까. 그는 같은 지역 당선자들끼리 협력할 건 협력하고 경쟁할 건 경쟁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지역발전을 위해선 당연히 힘을 모아야죠. 전북 지역의원들과는 ‘전북발전당’이라는 모임을 같이 하고 싶어요. 중앙문제는 확실히 경쟁하겠지만 지역문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3개당이 힘을 모아야죠. 과거 30년간 없었던 새로운 정치실험이 전북에서 시작된 겁니다.”
기사 이미지

지난달 20일 서울 상암동에서 새누리당 정운천 당선자가 보이스택싱에 승차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 수서역→세곡동
 

그 방향이 아닌데….”

지난달 21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수서역 인근에서 보이스택싱에 오른 전현희 당선자는 지역구 지리를 손바닥 보듯이 잘 알고 있었다. 세곡동에서 열리는 한 행사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는 이 지역 지리를 잘 모르는 ‘초짜 택시기사’인 기자에게 인터뷰 틈틈이 길을 가르쳐 줬다.
 
 

왜 강남을에 출마하셨나요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최초의 치과의사예요. 예전부터 남이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싶어했습니다. 강남출마는 야당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길이잖아요. 누군가 자꾸 걸어야 철옹성이 허물어지고 변화가 생기죠. 지역주의를 허무는데 조금이라도 쓰임새가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냉랭했던 표심을 어떻게 끌어왔나요.
지성이면 감천이라잖아요. 노력하면 하늘도 감동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보다는 해볼만한 일이었던 거죠. 지역 행사장에서 명함이라도 돌리려고 하면 동장이 와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며 쫓아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행사장 가면 꿋꿋하게 행사 끝날 때까지 참석자 전원과 악수한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김장철에는 부녀회원들과 어울려 끝까지 김장을 담궜구요. 사진만 찍고 사라지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전 당선자는 인터뷰 내내 밝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당선 후 가장 먼저 생각 난 사람이 누구였냐”는 질문에서만큼은 낯빛이 흐려졌다. 눈물 섞인 목소리로 그는 2014년 작고한 남편 김헌범 판사가 떠올랐다고 했다.
기사 이미지

지난달 21일 서울 수서동에서 보이스택싱에 오른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당선자. 사진 디지털 촬영 영상 캡처

“재작년에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간 우리 남편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립고 마음도 아프고 그랬습니다. 선거 기간 내내 저한테 힘이 많이 되어줬던거 같아요. 그래서 이겼을 때 하늘에서 박수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그리고 저를 위해 선거기간 뛰어주신 어머니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치과의사와 변호사를 모두 경험한 정치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전 당선자는 어떤 국회의원이 되길 꿈꿀까. 그는 국민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할 때는 부족한 게 많았어요. 특히 정치력이라는 측면에서 경험도 부족했고 실력을 발휘할 기회도 적었죠. 이번에 당선된 것은 그때 경험을 발판으로 정치력을 발휘해 보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국민 실생활에 보탬이 되는 정책을 발의할 뿐만 아니라 실제 통과시킬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또 강남에서 24년 만에 당선된 야권계열 의원이라는 중책이 제게 주어진 만큼 다른 지역에서도 지역주의를 깰 수 있는 교두보가 되고 싶습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