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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이란 대박, 정부가 말하지 않는 것들

중앙일보 2016.05.06 18:58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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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잭팟 수주’ ‘대박 세일즈 외교’ ‘제2의 중동 붐 초석 마련’.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세일즈 정상외교에 관해 쏟아진 찬사들이다. 중소·중견기업 146곳과 대기업 38곳, 경제단체·공공기관·병원 52곳 등 역대 최대 규모 경제사절단 236명을 이끌고 간 박 대통령이 현지에서 일궈낸 경제적 성과를 보면 과연 찬사를 받을 만하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이란 측과 맺은 양해각서(MOU)가 66건으로 총 456억 달러 규모를 수주했다니 말이다.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등 참담한 국내 경제 현실에 절망하던 국민에게 낭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체결한 MOU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은 일단 차치하기로 하자. 더욱 신경 써야 하는 문제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정치적 위험이다. 가장 큰 리스크는 과연 이란이 ‘P5+1(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합의한 ‘비핵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을 2025년까지 제대로 이행할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급격한 정세 변화에 따라 이란이 합의를 파기하거나 추가로 핵 개발 관련 의혹이 불거지면 ‘제재 재개(snap-back)’ 조항이 자동으로 발동된다. 이 경우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타격을 입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지고 보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박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미국의 악감정(ill-will)에 양국 관계가 휘둘리면 안 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재 재개 조항이 발동되는 경우에도 미국을 의식하지 말고 이란과의 경협을 지속해 달라는 게 누구도 설명하지 않은 진짜 의미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다분히 회의적이다.

지정학적 위험 또한 우려할 만하다. 수니파 맹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은 잘 알려진 견원지간이다. 걸프 지역에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내 시아파 탄압 문제, 이라크·시리아·레바논·예멘 등에서의 내정간섭 문제 등 날카로운 대립점이 즐비하다. 한국과 이란의 경제협력이 심화될수록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지역 아랍 국가들의 견제 또한 거세질 수밖에 없다. 등거리 외교를 통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발상은 커다란 오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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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수는 또 있다. 바로 이란 국내 정치다. 2월 26일 실시된 마즐리스(하원) 선거에서 핵 협상과 개방·개혁을 지지하는 범개혁파 성향 후보들이 과반수(전체 290개 의석 중 158석)를 차지해 보수파가 주도해 온 의회를 12년 만에 탈환했다.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상원 격의 국가지도자 운영회의 선거에서도 범개혁파가 다수를 차지했다. 개혁·개방을 표방해온 중도 노선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으로서는 더없이 기쁜 일이겠지만 여전히 이란 혁명수비대와 강경파 성직자들을 주축으로 한 보수세력의 복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저유가가 장기화되면서 이란 정부가 재정위기에 봉착하면 개연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때 한국 기업들이 받게 될 타격은 치명적일 수도 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도 지적했듯 “모든 거래에는 항상 위험부담이 존재한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이러한 정치적 리스크를 사전에 철저히 파악해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정부의 독려에 힘입어 이란 진출을 결심하게 된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이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타격을 입는다면 과연 정부가 책임질 수 있나. 정부가 보다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그뿐이 아니다. 이번에 수주했다는 456억 달러 중 250억 달러는 수출입은행(150억 달러)과 무역보험공사(100억 달러)가 프로젝트 파이낸스 형태로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지난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란을 방문했을 때 중국 측이 약조한 프로젝트 파이낸스 금액 200억 달러를 상회하는 규모다. 앞서 열거한 정치적 원인으로 프로젝트 진행에 차질이 발생해 재정적 손실이 생기면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일즈 외교는 이렇듯 언제든지 복마전이나 족쇄로 변신할 공산이 있다. 성과를 과시함으로써 얻을 게 무엇이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진출 업체를 신중히 선정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할 대안을 마련한 뒤 세일즈 외교를 전개해도 늦지 않았을 터였다.

1970년대 후반 앞다투어 중동에 뛰어들었던 한국 기업 중 상당수는 80년대 들어 중동 국가들의 현지화 정책, 저유가에 따른 재정 악화, 한국 업체들 사이의 과당 경쟁, 심화하는 국제 경쟁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란 진출을 두고 ‘제2의 중동 붐’을 거론하며 블루 오션으로 치장하기에 앞서 돌아봐야 할 냉정한 교훈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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