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실의 창문에 갇힌 사람들…내 소설에서 탈출구 찾은 듯”

중앙일보 2016.05.06 08:00 22면
| 100세 노인의 좌충우돌 모험담
47세 처음 쓴 책이 1000만부 팔려

세계의 이야기꾼을 찾아서 ②
『창문 넘어 도망친 …』요나스 요나손

 
기사 이미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 첫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41개 언어로 번역됐다. 그의 작업실 선반은 각 언어로 번역된 그의 소설 수십 종이 진열돼 있다.

 
기사 이미지
허황되게만 들리지 않는 인생 100세 시대.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55)은 그런 인구학의 미래를 발 빠르게 소설에 활용한 경우일 것이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겨우 걸을 수 있을 만큼 늙은 100세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 이하 『100세 노인』)으로 전지구적 성공을 거둬서다.

스웨덴 200만, 한국 60만, 세계적으로 1000만. 2009년 출간된 『100세 노인』의 판매 권수는 영화 관객 숫자 같다. 더 만화 같은 건 기자 출신인 그가 40대 후반에 이르러 소설을 쓸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느껴 처음 쓴 소설이 바로 『100세 노인』이라는 점이다.

21세기 신데렐라가 따로 없는 요나손을 찾아 스웨덴 동남쪽 휴양지 고틀란드 섬을 최근 찾았다. 고틀란드는 국내에서도 1980년대 방송돼 인기를 끌었던 스웨덴 국민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대표작 『말괄량이 삐삐』의 TV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야기꾼 기질은 민족 유전인 걸까. 요나손은 자산가이기도 했다. 작은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고틀란드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며 섬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열정적으로 안내했다. 요나손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건 본지가 국내 처음이다. 『100세 노인』의 성공으로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등 후속작도 주목받았지만, 주로 『100세 노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소설책 한 권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나조차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스웨덴에서 200만 부가 팔렸다지만 실제 소설을 읽은 사람은 더 많을 거다. 도서관에서도 빌려 보고, 한창 인기 있을 때는 구글에서 오디오북 불법 다운로드 1위였다. 영화도 큰 성공을 거둬 스웨덴에서 역대 일곱 번째로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아마 스웨덴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설에 대해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왜 그런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소설에 여러 층위(different layers)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100세 노인 알란 카슨은 독립적이고 내면의 불안이 없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그런 캐릭터를 읽으면 자신감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단지 나이 들었다는 사실 만으로 인생이 끝난 건 아니라는 희망을 주는 것 같다.”
다양한 계층이 읽는다는 얘긴가.
“요양원 창문에 기어올라 뛰어내려야 했던 알란 카슨처럼 현대인 누구나 각자의 창에 갇혀 지내지 않나. 세금, 각종 청구서와 매일 놓치는 전철…. 하지만 누구나 창문에서 뛰어내리지는 못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소설이 탈출구가 되는 것 같다. 책을 읽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남편이나 아내, 지겨운 일상이 그렇게 혐오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거다. 간단한 역사 강의인 점도 장점인 것 같다. 예전에 알았으나 잊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소설이 일깨워주니 좋아한다. 무엇보다 웃기지 않나. 내가 썼지만 다시 읽어도 웃긴 장면이 많다.”

소설의 시간 배경은 2005년이다. 1905년생인 알란 카슨은 음주가 자유롭지 않은 요양원 탈출을 감행한다. 5000만 크로나(약 70억원)가 든 조폭의 돈가방을 우히 가로채면서 미·소 핵 경쟁, 한국전쟁 등 20세기 잔혹 역사와 2005년 시점의 좌충우돌 모험을 넘나드는 정교한 소설 톱니바퀴가 돌아간다.

| ‘인류 최악의 시기’ 유머 곁들여 소개
자신 돌아보기, 희망의 중요성 전달

 
강조하고 싶었던 게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유머와 침착함(self distance)을 중시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정치가들이 그렇다. 국제 분쟁을 봐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우 역사적으로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한 해법은 없다. 당신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웃하기 어려운 국가(북한)과 함께 지내야 하지 않나. 그럴수록 유머, 거리감을 갖고 자신을 돌아보는 침착함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소설에서 쓴 것처럼 보드카를 몇 병이고 마시고 서로 마음을 트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보드카를 마셔야 할 사람들이 지구상에 많다.”
유쾌한 작품인데, 그런 의미는 뜻밖이다.
“원래 의도는 인류 최악의 세기였던 20세기의 문제점들을 소설로 부각시키는 거였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나. 그 모든 전쟁과 재난을 건드리되 유머를 가미해 희망도 얘기하고 싶었다. 그 여행을 위해 가이드가 필요했는데, 20세기 전체를 다루려다보니 나이가 아주 많아야 했다.”
소설의 교훈과 재미, 어느 게 더 중요한가.
“둘 다다. 시간 때우기 위해 내 책을 읽는다 해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내 소설을 읽고 인류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잠시라도 생각한다면 나는 더 행복할 것이다.”

| 한국인은 복권당첨 받은 사람들
돈 아껴 가난한 나라 도와줘야


요나손은 “요즘 세상이 파시즘이 득세하던 1940년대와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미국 대선 후보 트럼프의 수사가 무서울 정도로 히틀러와 닮았다고 했다. 특히 “스웨덴인과 한국인은 제3세계에 비하면 복권당첨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룻밤 와인을 즐겼다면 다음날은 그 돈을 아껴 가난한 국가를 도와야 한다”고 했다. 재미와 의미. 그게 요나손 소설의 두 축이었다.

고틀란드(스웨덴)=글·사진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