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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은행, 석연찮은 RG

중앙일보 2016.05.06 01:17 종합 8면 지면보기
금융 당국이 수출입은행의 경영실태 점검에 나선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4일 언론사 경제부장과의 간담회에서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공적자금을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본래 업무 아닌데 대우조선에 7조원
“은행이 발급 꺼려 받은 것” 해명 불구
당국 “부실 지원 책임 없나” 실태 점검

금융위 관계자는 5일 “산은의 문제는 대부분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때문이지만 수은은 전반적인 경영시스템이 느슨하다”며 “대출금이 늘게 된 경위와 직원의 업무 전문성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다른 정책금융기관이나 시중은행과 출혈 경쟁을 통해 점유율을 높인 사업이 있는지도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은행의 자산 건전성 척도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보면 수은이 10.11%로 산은(14.28%)보다 낮다. 그나마 지난해 말 정부가 1조1300억원을 출자해 9%대로 떨어졌던 BIS 비율을 끌어올렸다. 산은의 경우 자회사인 대우조선의 5조원대 부실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 금융감독원의 회계감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수은은 현재 아무런 조사를 받지 않고 있다. 금융 당국이 직접 나서기로 한 이유다.

금융 당국이 우선 살피기로 한 것은 수은이 취급한 선수금 환급보증(RG)이다. RG는 선주가 선박 건조 계약 때 조선사에 준 선수금을 금융회사가 지급보증하는 상품으로, 국내에서는 수은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RG는 선박이 건조돼 선주에게 인도되기 전까지는 금융회사의 부채로 기록된다. 수은은 대우조선 한 곳에만 7조3580억원어치의 RG를 발급했다. 수은이 대우조선에 제공한 전체 신용공여액(8조9900억원)의 84%를 차지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RG는 시중은행이나 보험사가 담당할 영역으로 정책금융을 집행하는 수은의 본래 업무 성격과 맞지 않는다”며 “상환 능력이 부족한 조선사에 RG를 발급했다가 부채를 떠안게 된 것을 보면 수은 내부의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수은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수은 관계자는 “정책금융은 국내 기업엔 최후의 버팀목”이라며 “조선업 불황으로 시중은행이 RG 발급을 꺼릴 때 수주에 어려움을 겪는 조선사들을 위해 수은이 어쩔 수 없이 받아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현대상선 채권단은 현대상선이 용선료(배를 빌리는 비용) 인하 협상에 성공할 경우 채무를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출자전환 비율은 채권단이 60%, 회사채 보유자 50%로 차등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선수금 환급보증(Refund Guaran tee·RG)=선주가 선박 건조 계약 시 조선사에 준 선수금을 금융회사(은행·보험사)가 지급 보증하는 상품. 조선사가 금융회사에 보증료를 내고 가입한다. 조선사가 파산하거나 내부 사정으로 제때 선박을 인도하지 못하면 금융회사가 조선사 대신 선주에게 선수금을 돌려줘야 한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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