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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널리스트의 고민은

중앙일보 2016.05.05 12:39
대형 증권사에 다니는 A애널리스트는 최근 이직을 고민 중이다. 조만간 있을 연봉 협상에서 인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증권업황 부진으로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억대 연봉은 고사하고 인상 자체가 쉽지 않다”며 “최근 선후배나 동료들을 통해 이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몇 년째 이어지는 경기 불황에 거래대금은 줄고 증권사 수익이 감소하면서 애널리스트의 이직 바람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몸값 비싼 애널리스트가 구조조정 1순위에 오른 지 오래다.

여기에 최근 증권사들의 인수합병(M&A)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이들의 자리는 더 위태로워졌다. 올 들어 국내 10대 증권사에서 직장을 옮긴 애널리스트는 30명으로 이 중 절반 정도는 자산운용사로 옮기거나 창업하는 등 다른 분야로 이직했다.

한때 애널리스트는 증권업계 ‘꽃’이라 불렸다. 증권사 입사를 희망하는 취업생이나 신입직원에게 애널리스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보조 애널리스트(RA) 기간인 1~2년 동안 밤낮없이 선배 애널리스트를 보조하고 주말에 나와 국내외 분석자료를 챙기는 것이 고되지만 해볼 만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면서 최근 애널리스트의 인기는 예전만큼 못하다. 애널리스트가 되겠다는 지원자도 줄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71시간 교육을 받으면 애널리스트 자격을 주는 ‘금융투자분석사’ 연수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은 증권사에서 일하고 있는 보조 애널리스트(RA)다. 애널리스트 양성을 위해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2010년 도입했다.

금투협은 최근 이 과정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청자가 없어서다. 최근 2년 간 이 과정을 신청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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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애널리스트 수도 계속 줄고 있다. 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57개 증권사에 소속된 애널리스트는 1090명으로 2012년(1399명)보다 22% 감소했다.

국내 증권사 중 애널리스트 수가 가장 많은 NH투자증권은 현재 75명으로 2012년(101명)에 비해 25% 줄었다. 심지어 57개 증권사 중 애널리스트가 아예 없는 회사도 6곳이나 된다. 애널리스트 수가 줄다 보니 회사에 남아 있는 애널리스트의 업무는 나날이 늘고 있다.

대신증권 한 연구원은 “매일 새벽 7시에 출근해 밤 9시 넘어야 퇴근할 수 있을 정도로 일이 많다”며 “리포트라도 내려면 주말에도 출근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업황 뿐 아니라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게 또 있다. 바로 상장사들의 ‘갑질’ 횡포다. 자사에 불리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애널리스트와 그가 속한 증권사에 보복하는 일이 벌어진다. 예컨대 지난 3월 교보증권 애널리스트가 하나투어에 대한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하는 리포트를 내놓자 이 리포트틀 본 하나투어 측은 분석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강하게 항의했고, 기업 탐방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에서 상장사의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낮추는 리포트를 보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공시된 ‘증권사별 리포트 투자등급’ 비율을 보면 지난해 국·내외 50곳 증권사 중 매도 리포트를 한 건도 내지 않은 증권사가 22곳으로 나타났다.

대신증권 한 연구원은 “‘매수’ 일색의 보고서가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서 애널리스트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며 “보수에 대우까지 낮아지면서 앞으로 애널리스트가 설 자리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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