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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그래 짜증났구나” 부모는 앵무새도 돼야 한다

중앙일보 2016.05.05 03:00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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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민영(52·여·가명)씨는 중학교 2학년인 아들 A군이 말없이 방문을 잠그고 방에 틀어박히자 당황했다. A군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 식사를 챙기며 학교에 다녔고 친구 관계도 원만한 ‘착한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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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춘기를 맞은 A군은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도 않고 넉 달간 학교에 가지 않았다. 식사도 거르고 잠만 자거나 게임에 몰두해 체중이 10㎏이나 빠졌다. 이씨가 화를 내고 달래도 봤지만 소용없었다. 고민 끝에 이씨는 서울시교육청 산하 청소년도움센터 ‘친구랑’을 찾아 부모 교육을 받던 부모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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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앵무새 화법’을 선택했다. 자녀의 표현 방식과 감정을 그대로 되받는 방식이다. A군이 “화가 난다” “짜증 나”라고 말하면 “몸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 힘들지?” “잠을 잘 못 자서 짜증이 났구나. 맛있는 거 먹을까?”라는 식으로 응답했다.

앵무새 화법을 되풀이하자 아들에게 점차 변화가 생겼다. 1분도 이어가기 어려웠던 대화에 물꼬가 트였다. 어느 날 A군이 이씨에게 먼저 “엄마, 산책 가고 싶어”라며 말을 건넸다. 조금씩 건강을 회복한 A군은 4개월 뒤 검정고시에 합격해 학교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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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희 친구랑 센터장이 부모 교육 프로그램에서 자녀와 소통하는 법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 친구랑]


자녀와의 원만한 대화는 부모들의 공통된 숙제다. 부모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상당수 부모가 자녀와의 대화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원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3월 진행한 설문에서 학부모 700명 중 72.1%가 부모 교육을 통해 배우고 싶은 것 1순위로 ‘자녀와 공감하는 법’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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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에 응한 부모들은 자녀 양육 중 겪는 주된 고민으로 ‘화를 내거나 체벌하지 않고 기다리기’(44.7%·복수 응답)와 ‘아이와 생각이 다를 때 설득하기’(41.4%) 등 의사 소통의 어려움을 주로 토로했다.

강귀숙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양천아이존 소장은 “급격한 산업화·도시화와 경쟁의 가속화로 부모들 자신의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에서 과거와 달리 조부모 등 육아를 함께할 사람도 줄면서 자녀와의 적절한 대화법을 찾지 못하는 부모가 늘었다”며 “이 때문에 부모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구랑’에서 부모 교육을 진행 중인 신성희 센터장은 자녀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부모의 유형을 ▶어른 눈높이로 판단해 자녀 감정에 소홀한 ‘축소 지향형’ 부모 ▶제대로 듣지 않고 훈계부터 하는 ‘억압형’ 부모 ▶자녀가 부모의 진지한 관심을 느끼지 못하는 ‘방임형’ 부모 등 세 가지로 설명했다. <표 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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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자녀와의 대화에 능숙하지 않은 부모는 교사에게 꾸중을 듣고 고민하는 자녀에게 “뭘 그런 걸로 그러니”라는 식으로 자녀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듯 말한다. 반대로 “뚝 그쳐”라는 식으로 감정을 억제하라고 강요하는 부모도 적잖다.

신 센터장은 “이처럼 어른의 눈높이에서 판단해 말하고 행동하는 게 부모들이 가장 자주 저지르는 실수”라고 지적했다. 이런 경우엔 “마음이 아팠겠구나. 선생님께서 왜 심하게 말씀하셨을까”라며 자녀 스스로 감정을 헤아리고 행동하도록 돕는 게 좋다. 부모가 자녀의 ‘감정 코치’가 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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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모가 되는 첫 단추는 자녀와의 말문 트기다. 김일영(55·가명)씨는 수년간 아들 B군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B군은 “나중에 힘이 세지면 아빠 말을 듣지 않겠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부모 교육 현장에서 만난 다른 부모들은 김씨에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간부터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고민 끝에 김씨는 매달 한두 번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을 사들고 귀가해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먹는 시간을 가졌다.

몇 차례 치킨 파티가 이어지자 B군은 “엄마와 내가 싸울 때 아빠가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손찌검을 해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아빠와 말하기조차 싫어졌다”고 털어놓았다. 아들의 고백에 아버지의 반성이 이어지면서 부자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강 소장은 “아이와 엄마가 싸울 땐 일단 아이에게 ‘화가 났구나. 좀 참는 게 어때’라고 말린 뒤 나중에 따로 아이 얘기를 들어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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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의 대화에서 다른 형제·자매, 친구와의 비교는 금물이다. 이연수(44·여·가명)씨는 성적 하락을 계기로 작은딸과의 관계가 틀어졌다. 부모 교육을 통해 이씨는 자신이 매번 공부를 잘하는 큰딸과 작은딸을 비교하며 질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씨는 “4~5개나 되던 학원을 모두 끊고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표를 짜고 나니 성적도 더 올랐다”며 “작은딸과 말할 때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했더니 대화도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연령대에 따른 정신적·신체적 변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사춘기는 청소년의 두뇌가 재편되는 시기다. 전문가들은 자녀에게 어느 정도 자율성을 주면서 어른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라고 조언한다. 신 센터장은 “청소년의 뇌는 즉각적이고 감성적인 반응을 하는 ‘파충류의 뇌’와 가까워 이성적인 어른의 말보다는 감성적인 언어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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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맞은 청소년은 이전에 비해 1~2시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일이 잦다. 수면에 필요한 신경 전달 물질이 성인에 비해 늦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신 센터장은 “성장기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면 늦잠으로 인한 갈등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 코칭 전문가인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는 “과거와 달리 아이를 바꾸려고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시대적·환경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부모부터 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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