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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위기에도 중소 해운사들 왜 흑자 행진할까

중앙일보 2016.05.05 01:38 종합 8면 지면보기
조건부 자율협약을 체결한 국내 1·2위 해운사(한진해운·현대상선)와 대조적으로 중소 해운사 실적은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물에 따라 유연하게 선박 운용
중소선사, 운임 하락 피해 최소화
대형해운사는 정기노선 많이 운항
화물 없어도 배 띄워야 해 손해

본지가 국적선사 실적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해 매출 400억원 이상인 47개 해운사 중 당기순익 적자는 현대상선·대림코퍼레이션·삼선로직스·창명해운 등 4개사에 불과했다. 컨테이너 선사인 고려해운은 1984년부터 31년 연속 흑자 행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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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온도 차는 운항 노선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진해운·현대상선은 주로 아시아와 미주·유럽을 오가는 정기선을 운항한다. 반면 중소 해운사는 한국·일본에서 동남아시아를 오가는 부정기선을 운항하는 경우가 많다. 정기선은 기차처럼 출항시간이 되면 화물이 없어도 정해진 노선을 따라 이동해야 한다. 연료비 등을 감안하면 물동량이 적을수록 손해다. 반면 부정기선은 용달차처럼 화물이 있을 때만 출항하면 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싱가포르·베트남 등 동남아 경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지역은 한진해운·현대상선 핵심 노선인 원양항로에 비해 해운 물동량이 많은 편이다. 원양항로 운임 폭락도 대형 선사의 실적 악화 요인으로 꼽힌다.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가 유럽 항로에 70여 척의 대형 컨테이너선을 투입하면서 운임이 폭락했다. 지난해 중국(상하이)~유럽 평균 운임은 1TEU(6m 컨테이너 한 개)당 620달러로 2014년(1172달러) 대비 47% 급락했다.

한진해운·현대상선 총 수송량의 40%를 차지하는 미주 항로도 마찬가지다. 기존 유럽 항로를 다니던 대형 선박(1만TEU급)이 북미 항로로 전환 배치되며 선박 공급 과잉 상황이다. 영국 해운·조선 분석기관 클랙슨에 따르면 올해 미주 노선 물동량(2348만TEU)은 지난해보다 3.8% 늘어나지만 선복량(2075만TEU)은 5% 늘어날 전망이다. 2014년(1975달러) 대비 지난해(1482달러) 25%나 하락한 미주 노선 운임이 올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중소형 선사는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비중이 비슷한 회사가 많다. 예컨대 업계 8위 장금상선은 컨테이너선(26척)과 벌크선(20척) 비중에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양대 선사는 컨테이너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진해운의 지난해 매출 중 컨테이너 부문 비중은 92%에 달한다. 2014년 벌크선 사업 부문을 매각한 후폭풍이다. 같은 기간 현대상선 컨테이너 부문 비중은 77%이지만 지난 3월 벌크 전용선 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한진해운·현대상선 벌크선 부문을 사들여 탄생한 H라인해운은 지난해 86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중소 해운사는 해운동맹(얼라이언스)에 편입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아시아 역내에서 공동 운항 형태로 효율성을 추구한다. 예컨대 고려해운은 전체 77개 운항 항로 중 55군데에서 타 선사와 공동으로 항로를 운항 중이다. 태국 항로는 국내선사인 천경해운·장금상선의 배를 각자 두어 척씩 활용해 운항하고, 한~중~말레이시아 항로는 프랑스 선사 CMA-CGM의 아시아지부인 CNC와 공동으로 운항하는 식이다.

해운사 다수가 흑자인 상황에서 현대상선·한진해운이 조건부 자율협약을 체결하자 판단 미스 등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도 거론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전업주부에서 남편 사망 후 갑자기 CEO로 선임됐다. CEO의 판단 미스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용선료다. 두 회사는 용선료가 가장 비싼 해운업 호황기에 장기 용선 계약을 했다. 당시 체결한 용선료는 현재 시세보다 5배 이상 비싼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중소 해운사는 운임이 급락하기 전에 10년 이상 장기 운송 계약을 체결했다. 컨테이너·벌크 화물 가격이 동시에 사상 최악 수준으로 떨어진 요즘에도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하는 배경이다. 또한 중소 해운사는 일단 화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나서 배를 빌리거나 구입했지만 양대 선사는 무턱대고 배부터 구했다.

현 회장과 최 전 회장이 시간을 끌다가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창호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상당한 정도의 전문성이 구비되지 않으면 회사를 제대로 이끌기가 쉽지 않은 게 해운업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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