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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성 기자의 교육카페] ‘입시용 학생부’ 쓰는 시대…“주의 산만” 적혀 있던 옛날 통지표가 그립네요

중앙일보 2016.05.05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저는 1980년대 초등학교(국민학교)에 다녔습니다. 매번 학기 말이면 집으로 봉투 하나가 왔습니다. 선생님의 손글씨로 적힌 ‘학교생활통지표’가 들어 있었죠. 16절지를 반으로 접은 크기의 통지표엔 키·몸무게와 결석·지각·조퇴 횟수 등이 적혀 있었죠. 성적(교과활동 상황)은 수·우·미·양·가 중 한 글자로, 근면성·책임감·협동성·자주성·준법성 등 행동발달 상황은 가·나·다 중 하나로 기재됐고요.

저처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2003년) 도입 전 학창 시절을 보낸 분들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직접 본 경험이 드물 겁니다. 그땐 입시 반영비율이 낮아 관심도 별로 없었죠. 그래도 통지표만큼은 기억하실 것 같아요. 실은 통지표가 학생부의 ‘요약본’이랍니다. 학생부 기재 항목과 내용에 따라 작성하는 게 원칙이었거든요.

통지표 맨 뒷부분의 ‘학교와 가정과의 통신’도 그렇답니다. 한두 문장으로 압축된 교사의 평가는 요즘 학생부의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에 해당하죠. 제 통지표엔 “급우와 원만하다”는 두리뭉실한 평이 많았지만 “주의가 산만하다”는 식으로 부족한 점을 콕 집어 주신 선생님도 계셨죠.

부모님은 이런 지적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발표에 소극적”이란 평에 아들을 웅변학원에 보냈고 “체육에 자신감이 없다”는 지적에 태권도를 배우게 했으니까요. 너무 짧아 아쉬웠지만 선생님의 솔직한 의견은 제겐 소중한 디딤돌이 됐습니다.

세월이 흘러 학생부가 달라졌습니다. 기재 항목은 물론 교사가 서술하는 평가의 분량도 늘었습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예전과 달리 요즘엔 칭찬거리만 쓰게 된다”고 걱정하더군요. 입시에서 학생부 비중이 커진 탓입니다. 최근 확산되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선 학생의 교과·비교과활동이 담긴 학생부를 중요 자료로 삼고 있습니다.

관심이 높다 보니 개입·간섭도 늘었어요. 특히 학생부의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이 그렇답니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는 “애초 취지는 평가와 의견을 자유롭게 기재하라는 건데 학생과 학부모가 보니 솔직하게 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교사는 “적극적인 학부모는 이런 내용, 저런 방식으로 써 달라고 요구한다. 아예 초안을 가져와 그대로 써 달라는 분도 있어 난감하다”고 전하더군요. 사설업체에서 초안을 맡기는 경우도 있고요.

지난달 28일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학생부종합전형 개선안’을 내놨습니다. 사교육이나 학부모의 개입 가능성이 큰 항목은 반영하지 말자는 취지였죠. 제안 중 하나는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을 학생·학부모에겐 공개하지 말자는 겁니다. 비공개로 바꿔 교사가 솔직하게 쓸 수 있게 하고 교사가 대학에 내는 추천서는 폐지하자는 거죠. 대신 학생부를 추천서로 활용하자는 제안입니다.

물론 걱정되는 점도 있어요. 교사의 자의적 판단이 학생부에 남아 입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우려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교육 개입 가능성과 교사의 부담을 모두 줄이는 장점이 있으니 검토해 볼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바야흐로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시대’입니다. 입시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제안, 진지한 검토가 필요할 때입니다.

천인성 교육팀장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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