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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웠던 만화 『무빙』…아버지 잃은 후 해피엔딩으로 바꿔

중앙일보 2016.05.05 00:49 종합 1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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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풀은 이야기꾼이다. “더 허황된 이야기, 더 ‘뻥’같은 이야기,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들고 싶어” 만화를 쓰고 그린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만화가 강풀(42)의 열두번 째 장편 『무빙』(총 5권)이 출간됐다. 공중부양 능력 등 초능력을 가진 고등학생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로, 지난해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7개월 동안 연재됐던 만화다.

강풀, 열두번 째 장편 출간


3일 서울 성내동 작업실에서 만난 강풀 작가는 ‘무빙’에 대해 “연재 중간 결말을 바꾼 첫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여의었다. ‘무빙’ 총 45화 중 8화를 남겨둔 때였다.

장례를 치른 뒤 3주 가량 연재를 쉬면서 후반부 이야기를 수정했다. 이야기 흐름뿐 아니라 대사와 지문까지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서야 만화 연재를 시작하는 그의 작업 방식을 처음으로 허문 시도였다.

“처음에 썼던 스토리는 훨씬 어두웠어요. 이제 ‘착한 사람 이야기’는 그만해야지 했었거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결말을 바꿔 결국 가족이 다 만나는 해피엔딩이 됐죠. 따뜻한 이야기로 나부터 위로받고 싶었나 봅니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믿음은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그의 작품 세계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는 그 뿌리를 아버지에게서 찾았다. “내가 뭘 해도 믿어주고 격려해 주셨다”고 했다.

‘무빙’ 연재가 중단되는 동안 인터넷 게시판에는 악플이 쏟아졌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패륜성 댓글을 올린” 악플러들을 대상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는 “나도 인터넷의 수혜를 입은 입장이라 웬만한 악플에는 대응을 안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성적인 우롱까지 당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면서 “앞으로도 가족에 대한 인신공격은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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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무빙’의 한 장면. 공중부양 능력이 있는 주인공 김봉석 가족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능력을 물려 주고, 자식을 지켜주려 한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무빙’은 그에게 이래저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장편들이 모두 30화로 마무리된 데 비해 ‘무빙’은 45화까지 이어졌다. 연재 기간 중 매일 새벽 4시에 작업실로 출근, 하루 네다섯 시간밖에 못 자며 작품에 매달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 다시는 45화 연재를 못할 것 같다”면서도 “상상력을 맘껏 펼쳐 신나게 ‘뻥’ 칠 수 있어 재미있었다”고 돌아봤다. “‘무빙’ 캐릭터가 등장하는 속편도 내놓겠다”고 했다.

그는 웹툰계에서 ‘시조새’ ‘삼엽충’ 등으로 불리는 1세대 작가다. 2001년 개인 홈페이지 ‘강풀닷컴’에 만화를 연재하며 웹툰이란 장르를 개척했다.

“당시 온라인 만화는 철저하게 비주류였어요. 나도 잡지나 신문에 만화·만평을 싣고 싶어 400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죠. 예전엔 잡지·신문사 편집장이나 사장 등 ‘윗사람’ 눈에 들어야 만화를 그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대중에게 인정받으면 누구나 만화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네요.”

그의 작품 중 ‘26년’ ‘아파트’ 등 일곱 편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드라마·연극·뮤지컬 등으로도 활용됐다. 그는 “웹툰이 여러 문화 콘텐트의 스토리 원형이 되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웹툰은 ‘망해도 자기 혼자 망하면 그만’인 장르여서,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시도하고 대중의 검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툰이 호황이라며 너도나도 웹툰 플랫폼을 만들었다 없앴다 하는 현상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엔씨소프트 블로그에 영화 리뷰 웹툰 ‘강풀의 조조’를 연재 중이다. 웹툰 리뷰라는 형식에 영화팬들의 관심이 높다. 또 다음 작품을 위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41개월 된 딸을 위한 그림책 작업도 한다. 딸이 태어나던 날 1쇄가 나온 첫 그림책 『안녕 친구야』와 2014년 출간한 『얼음땡』에 이은 세번째 그림책이다. 그림책 초판 인세는 모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

그는 소문난 ‘딸바보’답게 “집에 가서 아이랑 놀고 싶어 정신을 못차리겠다”고 했다. 작업실 한 켠엔 가끔 들르는 딸이 갖고 놀 인형놀이 세트도 갖다뒀다. “결혼 7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애가 없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낳아보니 너무 예쁘다”면서 딸 얘기를 하는 그의 얼굴은 자동으로 웃는 표정이 되는 듯했다.

그는 다음 작품 연재를 올 가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스토리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재미”라며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만화를 보는 동안 딴 생각을 하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할까’를 계속 고민한다”고 말했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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