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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열린 토론, 빠른 결정, 철저한 능력주의…중국 기업은 변신 중

중앙일보 2016.05.05 00:31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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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한국과 중국의 경제 협력이 상품, 자본 교류 단계를 넘어 인재 교류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한국 고급 인력을 대거 스카우트하고 있다. 취업을 위해 중국 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도 많다. 그들을 두고 ‘기술 유출이다’ ‘한·중 경협의 첨병이다’ 등 시각이 엇갈린다. 중국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직장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 20여 명을 인터뷰해 중국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숨 막힐 것 같아 탈출했다. 한국에서 콘텐트 사업을 한다는 건 무모한 일이다. 드라마를 만들면 방송국은 외주 제작비만 주고 모든 권리를 자신들이 가져간다. 영화도 투자배급사에 저작권을 넘겨야 한다. 최소한 여기 중국에 그런 ‘갑질’은 없다. 방송사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방송사가 70%를, 제작사가 30%를 투자한다. 수익이 발생하면 우선 외주 제작사에 제작비용을 지급하고, 나머지 순익은 투자비율대로 나눈다. 물론 PPL(간접광고) 수익도 함께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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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외주제작사 갑을관계 없어
간접광고 수익도 제작사와 나눠
회의 땐 적극적인 의사 개진
한국 기업보다 훨씬 ‘오픈 마인드’
연공서열 파괴, 1년 두 번 승진도
“직장문화도 중국에 뒤지나” 목소리

중국 영상 콘텐트 제작 전문업체인 페가수스미디어그룹 뉴미디어사업부의 이상호 부총재(부사장급)에게 중국으로 오게 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국내 한 지상파 방송국 PD 출신인 그는 모바일 기반의 콘텐트 제작 부문을 이끌고 있다. “중국은 계약할 때 판권에 대한 개념과 소속 규정을 명확히 한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짝퉁의 나라’로 알고 있는 중국이지만 기업 속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보다 오히려 저작권 보호 관행이 잘 잡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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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근무 자율성

집체주의, 엄격한 서열, 지시와 복종, 부패…. 우리 관념 속 사회주의 중국의 기업 이미지다. 그러나 중국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 직장인들이 말하는 그곳 직장문화는 우리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아니 그 반대였다. 응답자 대부분이 국유기업이 아닌 민영기업, 그중에서도 주로 선진 정보기술(IT)기업 종사자이기 때문이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중국 기업의 변화를 주도하는 건 국가 독점의 국유기업이 아닌 민영기업이다. 우리 인재를 스카우트해 가는 기업도, 젊은이들이 문을 두드리는 곳도 민영기업이다. 그들이 전하는 중국의 직장문화에 귀 기울여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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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들은 대체적으로 ‘근무 자율성이 높다’고 말한다. 중국 디스플레이 전문업체인 BOE에서 연구개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김서윤 이사는 한국과 중국 기업의 근무 분위기 차이를 묻자 “중국 기업이 더 오픈마인드 돼 있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동종 업계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는 “한국에서의 전 직장 임원들은 경쟁사가 연구하고 있지 않는 분야를 먼저 해 보겠다면 ‘왜 위험을 감수하느냐’며 막곤 했다”며 “그러나 여기는 남이 연구하지 않는 걸 더 하라고 권장한다”고 말했다. 선임자 눈치 볼 필요도 없단다. 연구원의 선택권이 더 보장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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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에 있는 사립 미술관인 파크뷰그린아트센터의 김미령 관장은 “회의가 매우 활기차다”고 말한다. 직원들이 윗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시시콜콜 적극적으로 개진하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중국 직원들은 학교에서부터 토론하는 문화에 익숙한 것 같다”며 “그들의 의견을 조정해 주고 제기된 아이디어를 정리해 주는 게 리더가 할 일”이라고 했다. 그들은 모르는 것을 묻는 데 주저함이 없단다.

미국식 가까운 인사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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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서 나온 공통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속도’였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의사 결정이 빠르고 한 번 결정되면 조직 전환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다는 얘기다. 광둥(廣東)성 선전의 BYD는 전기자동차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회사다. 그러나 이 회사 매출의 약 30%는 스마트폰 부품 등 IT 분야에서 나온다. 최문용 BYD 중앙연구소 이사는 “BYD가 IT 분야에서 수백 개 부품을 생산해 삼성·화웨이 등에 납품할 수 있는 것은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속도’ 덕택”이라며 “리더의 빠른 의사 결정과 신속한 조직 개편이 BYD의 성공 공식”이라고 말했다. 납품업체 방문차 BYD에 들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빠른 업무 추진에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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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 서열은 없다. 입사 연도에 따라, 혹은 근무 연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승진하거나 급여가 오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항저우(杭州)의 알라바바 본사에서 사용자 환경 디자인 분야를 맡고 있는 이현주 디자인 디렉터는 “인사 고과 과정은 살벌하다고 할 정도로 성과 위주로 진행된다”며 “실적에 따라 1년에 두 번 승진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말했다. 평가는 당연히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중국 민영기업의 인사정책은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미국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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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직장문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돈’이다. 그들은 급여를 더 준다는 회사가 나타나면 미련 없이 보따리를 싼다. 애사심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무리다. 물류기업인 바이스(百世)의 권영소 한국부 총경리는 “심할 경우 한 해 20여 명의 직원 중 절반이 바뀌기도 한다”며 “회사 사장은 ‘나간 만큼 외부에서 데려오면 된다’는 생각에 놀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돈을 따라 움직이니 동료 간 인간미는 떨어진다. 권 총경리는 “퇴근하면서 어울려 소주 한잔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다”며 “회사 공식 만찬을 제외하고는 그들을 저녁에 사사로이 만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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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홈쇼핑의 중국 투자법인이었던 동방CJ의 총경리로 일했던 김흥수 김&장 고문은 이를 두고 “중국 기업은 돈으로 직원을 부리고, 한국 기업은 승진으로 직원을 잡아 둔다”고 표현했다. 중국 직장인들은 오로지 돈에 따라 움직이는 데 반해 한국 직장인들은 급여보다는 사회적 지위 상승을 더 중시한다는 설명이다.

중국 직장인들의 한계도 뚜렷하다. 그들은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시키는 것만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최문용 BYD 이사는 “직원에게 ‘당신이 책임지고 이 일을 언제까지 마무리하라’고 지시하면 거의 대부분 피하고 싶어 한다”며 “이럴 경우 ‘그럼 내가 책임질 테니 추진하라’고 지시해야 일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업무 창의성도 떨어진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라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갇혀 스스로 검열을 하는 경향도 엿보인다. 이상호 부총재는 “(웹 콘텐트) 제작장비는 충분히 선진적이지만 개인의 기획력이 이를 받쳐 주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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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으로 전직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급여다. 그러나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부 직군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높지 않았다. 헤드헌팅 업체 휴먼트리의 고병희 이사는 “한국 직장 급여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며 “한국에서 연봉 1억원 정도를 받던 40대 IT 분야 개발자라면 1억5000만원 가량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해외생활임을 감안하면 그다지 매력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승진이나 고용 보장 등을 포기해야 하는 대가도 감수해야 한다. 그는 “요즘 중국 기업으로 가고자 하는 직장인은 돈보다는 자유로운 근무 환경, 야근 없는 삶, 자녀 교육 등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반도체와 게임 분야 스카우트 제의가 많단다.

책임의식 빈약 등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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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한국 직장인들에게도 스트레스는 있다. ‘용도 폐기’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평생직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밀려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현주 알리바바 디자인 디렉터는 “아직까지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그들의 기술도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며 “경쟁력 유지를 위해 끊임없는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유출에 대한 시각은 분명했다. 한국 전 직장에서의 연구 결과물을 중국 기업에 넘긴다면, 또는 전 직장의 기술을 복제해 이직한다면 그건 분명한 불법행위다. 그러나 머릿속에 있는 경험이나 노하우를 중국에서 활용하는 것을 두고 ‘기술 유출’이라며 고깝게 봐서는 곤란하다는 시각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계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최문용 BYD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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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배운 낚시 방법을 갖고 중국으로 와서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 미국 다국적기업에서 근무하는 것과 중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중국 기업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판단해 가는 사람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오히려 인재들이 왜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가려 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야 한다.”

인터뷰에 응한 중국 내 한국 직장인 대부분은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급여도 급여지만 능력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으로 오길 잘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는 곧 한국의 기업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은 직장문화에 있어서도 중국에 밀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한국을 등지고 중국 직장을 선택한 그들이 우리 기업에 던지는 질문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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