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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습기 살균제로부터 왜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나?

중앙일보 2016.05.05 00:20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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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서울대 약대 교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자만 최소 146명에 이를 정도로 대형 참사다. 특히 유아와 임산부의 피해가 컸다. 막대한 인적 피해, 안일한 정부 대처, 가해 기업의 비리 등 선진사회에서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어처구니없는 비극이다. 지난 15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산자부 소비자 안전 책임져야
질병관리본부 초동조치 실패
환경부 화학물질 안전관리 못해
정부 시스템 변해야 문제 해결


가습기 살균제가 뉴스에 등장한 건 2000년이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근거로 가습기 살균제 사용 자제를 권고한 것은 10여 년 후인 2011년 8월이다. 2011년 11월 보건복지부는 흡입독성시험 결과를 근거로 가습기 살균제 수거 명령을 내렸다.

2011년 11월을 기점으로 과연 정부의 대처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과학계는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짚어 보고자 한다. 전기에는 신속한 예방조치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으며, 후기엔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고 피해보상·향후 대책 수립 등의 마무리 순서로 지체 없이 갔어야 한다. 이 과정은 잘 이루어졌을까.

먼저 산업통상자원부는 생활용품의 소비자 안전을 관리하는 부처로서 1차적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세정 목적으로 허가된 화학물질을 인체 호흡기로 직접 노출되는 가습기 살균제로 탈바꿈시킨 것을 제어하지 못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허위광고를 통해 제품이 판매된 점은 공산품의 허가 과정과 시판 후 관리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2006년 원인 불명의 폐 질환으로 어린이 사망자가 국내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된 이래 2008년까지 유사한 사례가 잇따라 나왔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초동 조치에 실패했다. 신종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면 유해 화학물질의 호흡기 노출을 의심해 조기에 가습기 살균제와의 관련성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 환자에서 확인된 폐 섬유화 증상은 여타의 유해 화학물질 노출 사례에서도 흔히 관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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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는 첫 사망사고가 보고된 뒤 5년 만인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시판중지 조치를 내린다. 초동 대처가 늦어지고 피해가 커진 건 질병관리본부에 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전담 부서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질병관리본부의 흡입독성 시험 결과를 근거로 한 판매중지 조치는 적절했지만, 흡입독성 시험만으로 인과관계를 밝히기에는 미흡함을 인지했어야 했다.

후기 조치는 어떤가.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전담하는 환경부에 책임이 있다. 환경부는 바로 독성 연구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혀 사회적·법적 조치가 가능하도록 했어야 했다. 인과관계를 둘러싼 과학적 논란을 없애는 최상의 방법은 사망자의 부검자료, 흡입독성 자료 및 독성기전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결과를 권위 있는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는 어린이와 임산부가 민감한 이유, 또 다른 유해 가능성, 피해 등급에 따른 관련성 확인, 폐 손상의 치료방안 등 여러 사회적 이슈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도 매우 미흡했다. 그 결과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중 하나인 영국계 옥시레킷벤키저는 정부가 발표한 독성 시험자료상의 인체 노출량 타당성을 문제 삼아 다른 기관에 독성 시험을 의뢰하는 수순을 밟았다. 업체는 유리한 결과만을 활용하거나 터무니없는 황사 관련성을 주장하는 등 법적 책임을 면하기 위한 비윤리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인체유해물질은 사용 용도에 따라 관리하는 부처가 다르다. 공산품은 산자부, 화학물질은 환경부, 식품과 의약품은 식약처, 작업장은 노동부에서 각각 관리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어떤 곳도 유해물질 노출과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연간 20조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대한민국에서 2011년 이후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비와 노력을 투자했는지 궁금하다.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의학정보 펍메드(PubMed)에는 지난 5년간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된 논문이 10편 이상 올라와 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으로 인한 사망 간의 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졌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이번 사태가 국제적 소송으로 확대될 경우 현재까지 발표된 과학 자료의 완성도를 문제 삼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지 모른다.

과거 20년 이상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조직과 인원을 보강하고 예산을 투자했지만 이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이보다 각 부처 간 벽에 둘러싸여 있는 관리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미국·일본·유럽은 효율적인 시스템과 그에 맞는 기술적 지원체계를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다. 지금이라도 가습기 살균제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이유를 철저히 분석한 백서를 작성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진국 수준의 인체유해물질 관리 체계를 마련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진호 서울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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