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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서 만난 이북의 맛 ‘옥천냉면’

중앙일보 2016.05.05 00:01 14면 지면보기
굵은 메밀면에 돼지고기 육수로 맛을 낸 ‘옥천냉면 황해식당’의 물냉면. 냉면과 함께 먹는 편육과 완자(큰 사진부터 시계 방향). [프리랜서 박신웅]

쫄면을 연상케 하는 굵은 면발, 일반 식당 냉면에 익숙해진 입맛엔 약간은 밍밍한 듯한 육수. 하지만 이내 익숙해져 돌아서면 또다시 찾게 된다는 그 맛.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옥천리 냉면마을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황해도식 냉면 얘기다.

투박한 황해도 냉면, 굵은 면발에 심심한 맛 … 그런데 돌아서면 생각나네
6·25 때 피란 온 실향민의 손맛 … 1952년 문 연 ‘황해식당’이 원조
돼지 몸통 통째 넣고 육수 만들어 메밀·전분 섞어 쫄깃한 면발 뽑아


 이곳에 첫 냉면집이 들어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63년 전인 1952년이었다. 황해도 남동쪽 금천군이 고향인 한 부부가 전쟁 통에 남쪽행을 택했다. 이들이 처음 간 곳은 부산. 그곳에서 구호식량 등으로 근근이 연명했다. 그러다 52년 경기도 양평군으로 올라왔다. 전쟁이 끝나면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에서였다. 양평군에 와서는 용문산 자락 옥천리에 자리를 잡았다.

 오자마자 ‘황해식당’이란 냉면집을 차렸다. 원래 고향에서도 냉면집을 했던 터였다. 그때도 “맛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돼지고기로 육수를 내고 면발을 굵게 뽑는 황해도식 냉면이 주메뉴였다. 처음엔 반응이 별로였단다. 당시만 해도 냉면 맛을 아는 이들은 톡 쏘는 맛이 가미된 육수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고객들에게 황해식당 냉면의 첫맛은 뭔가 빠진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단골이 늘어갔다. 인근 군부대 군인·군무원과 면회객, 남한강과 용문산에 놀러 오는 나들이객 중에서도 입맛을 들인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30년 단골이라는 이종미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는 “글자 그대로 ‘담백한 맛’에 이끌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문을 열고 36년이 흐른 88년 냉면마을은 또 다른 전환기를 맞게 됐다. 인근에 400여 객실을 갖춘 콘도가 들어서는 등 양평군 일대가 관광지로 본격 개발되면서다. 그러면서 옥천리에도 관광객 발길이 잦아졌고 옥천냉면의 이름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
 
고추양념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굵은 면과 오이 등을 얹은 비빔냉면.
 장사가 잘되면 어디나 그렇듯 같은 메뉴를 내놓는 다른 식당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어서 10여 개의 식당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냉면마을을 형성했다. 원조 황해식당은 2001년 옥천레포츠공원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긴 뒤 가게 이름도 ‘옥천냉면 황해식당’으로 바꿨다. 사람들 사이에 황해식당보다 옥천냉면으로 더 많이 알려져서다. 지금은 창업주의 큰손녀인 이인숙(53·여)씨가 운영한다.

  창업주 손자도 바로 옆에 분점을 냈고, 황해식당 조리사들도 독립해 가게 두 곳을 차렸다. 가게는 늘었어도 메뉴와 맛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옥천냉면 육수는 머리와 다리를 뺀 돼지 몸통을 통째로 넣고 1시간30분가량 우려 만든다. 여기에 간장과 약간의 설탕, 마늘을 첨가하는 정도다.

 원조집은 특히 간장에 정성을 들인다. 양평군에서 기른 콩으로 직접 장을 담근다. 간장은 담근 지 2년 넘은 것을 쓴다. 그래야 깊은 맛이 난다는 이유에서다. 장 담그는 소금은 국내산 천일염, 그것도 10년 이상 보관해 간수가 쏙 빠진 것을 사용한다. 무김치도 쓱싹 담아내는 게 아니다. 2∼3년간 소금에 절여 뒀던 무를 꺼내 소금기를 깨끗이 씻어낸 뒤 김치를 담근다.

면은 직접 갈아낸 메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들며 주문받는 즉시 뽑아낸다. 메밀은 껍질을 완전히 벗긴 것만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면발이 쫄면보다 약간 굵지만 식감은 쫄깃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면발의 씹는 감촉을 좌우하는 메밀과 전분 배합 비율은 비밀이란다.

 비빔냉면은 여느 식당과 달리 양념장을 면 위에 끼얹는 게 아니라 바닥에 깔아 낸다.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다. 옥천 비빔냉면을 20년째 맛보고 있다는 김성수(57·자영업·서울 상계동)씨는 “얼큰한 고추양념을 곁들인 비빔냉면을 먹고도 ‘속이 편안하다’는 느낌이 드는 식당은 여기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인숙씨는 “프랜차이즈 개설 요청이 많지만 모두 마다하고 있다. 소량을 생산하더라도 직접 만든 장으로 옛 맛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옥천 냉면마을의 식당들은 대부분 돼지고기 편육과 완자를 메뉴에 포함시켜 놓았다. 이 또한 원조집에서 유래했다. 편육은 삼겹살과 사태 부위를 삶아 기름을 빼고 식힌 뒤 얇게 썰어낸다. 완자는 북한식 만두처럼 돼지고기와 채소·계란을 버무린 뒤 지름 6~7㎝ 정도로 큼직하게 부쳐 낸다. 이런 이유로 미식가들은 황해도식 냉면에 편육·완자를 합쳐 ‘옥천냉면 3총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 원하는 손님들에겐 메밀을 삶고 남은 면수도 제공한다.

 옥천면 옥천리와 아신리에는 원조집과 맛이 비슷하면서도 메뉴를 조금씩 차별화한 냉면집도 늘고 있다. 88년 문을 연 ‘옥천면옥’에서는 쇠고기 육수에 메밀을 주원료로 면을 만드는 평양냉면을 선보인다. 또 편육·완자와 함께 녹두전을 추가로 내놓는다. 쇠고기 사골 국물에 인삼·대추·파·마늘을 넣은 곰탕도 인기다.

 카페 같은 분위기의 식당에서 평양냉면을 내놓는 곳도 있다. ‘락빈’이란 냉면집은 메밀을 주원료로 함흥냉면보다 굵은 면발에 한우로 우려낸 육수로 평양식 냉면을 선보이고 있다. 백김치는 덤이다. 조선시대 때 임금이 즐겨 찾았다는 ‘어복쟁반’이란 궁중식 쇠고기 샤부샤부 요리도 준비돼 있다.

양평=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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