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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은 어른이날…놀이공원 가는 걸로 끝내면 안 되죠”

중앙일보 2016.05.04 02:04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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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재단은 2010년부터 초록우산을 브랜드로 쓰고 있다. 이제훈 회장은 “모든 아이가 행복할 수 있게 포근히 안아주는 우산이 되겠다”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국내 최대 규모의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5월 5일을 ‘어른이날’로 명명했다. 어린이에게 떳떳한 모범적인 어른이 되자는 취지다. 2013년부터 중앙일보와 ‘인성교육’ 캠페인을 벌여 온 재단은 올해부터 부모교육 사업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1년에 한 번 선물하는 날 아니라
어른 역할 돌아보는 자성의 날로
부모 인성교육, 공동체 복원 사업
아이 행복한 세상이 저출산 해법


이제훈(76) 회장은 “아동학대처럼 최근 발생하는 어린이 문제의 핵심은 복지의 공백이 아니라 인성 결핍이 원인”이라며 “어른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94회 어린이날을 맞아 저출산을 비롯해 어린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내놓았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그의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왜 ‘어른이날’인가.
“5월 5일을 1년에 한 번 놀이공원 가고 선물 사주는 날로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평소 못했던 것을 해주는 것은 좋지만 그걸로 끝나선 안 된다. ‘어른이’는 어린이와 어른을 합친 말이다. 어른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진짜 어른이라는 뜻이다. 어린이의 소중함을 느끼고 스스로 모범적인 어른인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어른들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과거처럼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으로 인한 어린이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에만 그쳐선 안 된다. 최근엔 가족 해체와 아동학대처럼 정신적 스트레스로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늘어났다. 그 원인은 어른에게 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모, 성인이 돼서도 미성숙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변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만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어른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지난해부터 부모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14개 지역 센터에서 37명의 전문 강사가 부모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다. 인성교육은 말과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행동과 마음으로 해야 한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아이들의 인성교육은 불가능하다. 올 초부터 부모와 자녀가 함께 밥상머리 예절을 배우는 ‘인성밥상’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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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샘 킴(오른쪽 셋째)과 함께하는 ‘인성밥상’ 프로그램.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재단이 인성교육을 시작한 이유는.
“우리의 목표는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 주고 배고픈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게 도왔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치료해선 안 된다. 물질적 성장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가정을 시작으로 사회 전체가 아동 친화적인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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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의 구룡포 마을 사례가 공동체 복원의 대표적 예인데.
“2012년부터 재단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교육공동체를 꾸렸다. 중국집 사장의 짜장면 기부, 목욕탕 주인의 공짜 목욕 등 주민들의 재능기부로 아이들이 뛰어놀고 함께 배울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처럼 구룡포 주민들이 힘을 뭉치자 아이들이 행복해졌다. 구룡포 사례를 확대해 2014년부터 의정부와 통영에서도 초록우산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공동체의 복원은 저출산 문제의 해법과도 맞닿아 있다.
“그동안 정부가 15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출산 수당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돈과 제도로 출산을 유인하는 ‘아웃사이드 인(outside in)’ 정책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고 싶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정책이 필요하다.”
먼저 아이 낳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사회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최근 재단이 학부모 300명을 조사했더니 대한민국의 현재 점수를 46.4점으로 매겼다. ‘대한민국’ 하면 떠오르는 단어도 경기침체(18%)가 가장 많았고 헬조선(11.7%)과 부정부패(11%)가 그 다음이었다. 이런 생각 아래 누가 먼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겠는가. 저출산 문제의 근본 해법은 ‘대한민국이 내가 낳은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일이다.”
정부가 저출산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어린이 관련 예산은 부족하다.
“아동복지 예산은 국내총생산 대비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에 한참 못 미친다. 유엔에서는 관련 예산 증액을 권고하고 있지만 제자리걸음이다. 복지 예산의 상당 부분이 표심을 의식해 노인에게 쏠리고 있다. 투표 권리가 없는 어린이 정책도 미래 투자 개념으로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하고 창조경제도 이끌어 갈 수 있다.”
재단은 그동안 국내 사업 중심이었는데 최근에는 해외 사업이 늘고 있다.
“2010년 취임 후 지속적으로 해외 사업 비중을 키우면서 현재는 15% 수준까지 왔다. 5년 내 30%로 확대할 계획이다. 36만 명의 정기 후원자 중 10만 명이 해외 후원자다. 그만큼 시민들의 의식이 변했다. 과거 우리가 원조를 받은 만큼 이제는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진 것이다. 국제사회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우리도 해야 한다.”
아직 시민들은 재단의 해외 활동을 잘 모른다.
“미국·독일 등 12개국 어린이재단과 연맹을 맺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남수단 등 21개국 어린이 2만5000명에게 학교를 설립해 가르치는 등 교육을 통한 지역공동체 조성에 힘쓰고 있다. 해외의 다른 NGO와 달리 국내 토종 단체로서 해외 사업을 펼친다는 의미가 있다.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커졌다는 자부심도 있다.”
재단이 다른 구호단체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
“우리는 후원자들이 단순히 후원금을 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전국 1000여 명의 지역별 후원회를 중심으로 후원자들이 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재능기부 등으로 직접 활동에 참여한다.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현장이 중심이 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2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장에 선임됐다.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재단은 16년 동안 북한 어린이 돕기 사업을 해 왔다. 내복과 백신 보내기 운동을 하고 빵공장을 설립했다. 어려운 남북관계 속에서도 북한 아동과 주민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훈 회장=2010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에 취임해 국내에 한정됐던 사업 분야를 해외로 넓혔다. “경제적 성장에 걸맞은 정신적 성숙이 우리 시대의 화두”라고 강조한다.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등산하며 소통한다. 1940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65년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해 사장까지 지내는 등 오랫동안 언론계에 몸담았다.

글=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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