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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파리넬리' 루이스 초이, 간절함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중앙일보 2016.05.04 01:47 강남통신 14면 지면보기
뮤지컬 ‘파리넬리’ 주연 루이스 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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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리넬리’는 4월 26일부터 5월 15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


기대보다는 의구심을 안고 무대를 기다렸다. 여성의 높은 음역대를 오르내리는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소프라노) ‘파리넬리’의 노래를 남자 배우가 부를 수 있을까. 음정 하나하나를 날카롭게, 또 섬세하고 단단하게 소화할 수 있을까.

막이 오르고 파리넬리 역의 루이스 초이가 등장했다. 그가 뿜어내는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고음. 공연의 끝자락에 아리아 ‘울게 하소서’가 울려 퍼지자 공연장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눈물 흘리는 이도 있었다. 가성(假聲)으로 소프라노의 음역을 구사하는 카운터테너 루이스 초이는 목소리 하나로 관객을 웃고 울게 만들고 있었다.

루이스 초이는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정통 오페라 공연뿐 아니라 TV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에 출연해 다양한 매력을 선보였다. 파리넬리는 그를 뮤지컬 배우로 한 단계 성장하게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 초연한 이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카운터테너의 신비로운 음색으로 호평을 받았다. ‘더 뮤지컬 어워즈’ 신인남우상도 받았다. 뮤지컬 파리넬리는 루이스 초이의 호연에 힙입어 지난해 제9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올해의 창작 뮤지컬’ ‘남우신인상’(루이스 초이) ‘음악감독상’ 등 3관왕을 거머 쥐었다. 올해 공연은 지난해 관객들의 성원에 따라 열리는 앙코르 공연이다.

공연 첫날 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27일,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루이스 초이를 만났다.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어릴 때 꿈이 음악 선생님이었다. 대학 졸업 후 충남 서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2년반 동안 음악교사로 일했다. 사실 전문적인 음악가로 활동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방황하던 나에게 음악 선생님이 ‘목소리가 좋다. 음악을 해보지 않을래’라고 나를 이끌어 주셨다.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함께 노래 부르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성악과가 아닌 음악교육과를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교사 생활 중에도 가끔 공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카운터테너로 활동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더 공부해 볼 생각 없느냐, 재능이 너무 아깝다’고들 했다. 그런 말들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29세에 더 늦기 전에 한번 도전해 보자 생각하고 무작정 독일로 떠났다. 독일어 한마디 못하는 지방대 출신에게는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

-독일 음악대학에는 어떻게 입학했나.

“무작정 독일로 날아갔지만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 음대에 들어가려면 오디션을 거쳐야 하는데 독일어를 못하니 응시 자체가 불가능했다. 원래 계획은 1년반 정도 독일어 공부를 하고 나서 응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모아놓은 돈이 다 떨어져 갔다. 그래서 무작정 가장 가까운 대학인 뒤셀도르프 음대에 시험을 보러 갔다. 경쟁률이 200대 1이었다. 자유곡 한 곡과 독일어 곡 한 곡을 불러야 하는데 독일어 곡이 문제였다. 언어가 어눌하니 노래도 엉망이었다. 부르는 내내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야’란 생각이 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심사위원이 나가보라고 했지만,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대로 나갈 수는 없었다. 손짓 발짓과 어눌한 독일어를 섞어 ‘제발 한 곡만 더하겠다’고 부탁했다. ‘오스카 아리아’를 꼭 한번 부르고 싶다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한 것 같다. 위원들은 어이없어하며 웃더니 그냥 나가라고 했다. 문을 열고 터벅터벅 긴 복도를 따라 걸어나갔다. ‘이제 다 끝났구나’라는 생각으로 걷고 있는데 뒤에서 ‘오스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정말 미친 듯이 오스카 아리아를 불렀다. 더 이상 떨어지고 안 떨어지고는 중요치 않았다. 단지 그 순간에는 노래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카운터테너의 매력이라면.

“남자의 가성은 사람의 감정선을 직접 흔드는 힘을 가진다고 믿는다. 95년 상영된 동명의 영화 ‘파리넬리’에서 관객들이 그의 노래에 눈물 흘리며 쓰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뮤지컬 파리넬리의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그런 감정을 느껴봤으면 한다. 음악에 흠뻑 취해 때로는 환호하고 때로는 감정이 무너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일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오로지 음악을 통해서만 가능한 그런 경험을 만들고 싶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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