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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채권단 자율협약이 뭔가요

중앙일보 2016.05.04 00:01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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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Q. 요즘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같은 해운회사들이 ‘채권단 자율협약’을 맺는다는 뉴스를 많이 봤어요.

경영이 어려울 때 쓰는 말 같은데, 무슨 뜻인지 궁금해요.

A. 틴틴 여러분, 요즘 뉴스에 채권단 자율협약이란 말이 많이 나오죠. 자율협약을 단순하게 얘기하면 기업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채권단 즉 돈을 빌린 금융기관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스스로 쓰는 돈을 줄여나가는 행동을 말합니다. 아픈 몸을 다시 건강하게 하기 위해 병원을 찾듯 기업도 경영에 문제가 생기면 은행을 찾습니다. 경영상 고장이 생긴 부분을 치료하기 위해 돈을 더 빌려달라고 요청합니다. 물론 은행에는 ‘앞으론 편식하지 않겠다’, ‘살을 빼겠다’,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 ‘잠을 충분히 자겠다’는 등의 약속을 하죠. 이런 약속과 치료 과정을 통틀어 자율협약이라고 합니다.

| 돈 빌려준 은행, 기업 망하면 손해
인력 줄여라, 공장 팔아라 등 처방


기업에 있어 돈은 피와 같습니다. 피가 혈관 막힌 곳 없이 잘 돌아야 건강하듯, 돈이 생산·영업·판매 등 전 분야를 골고루 돌아야 기업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은 제품을 팔아 번 돈으로 자재를 구입하고, 직원의 월급도 줍니다. 은행에 이자도 내고요. 만약 당장 쓸 돈이 부족하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예금해 둔 돈을 꺼내서 씁니다. 빌린 돈은 새로 돈을 벌어 만기에 갚지요. 이처럼 기업이 돈을 관리하고 지출·수입을 기획하는 일을 ‘재무관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만약 기업이 재무관리를 잘못해서 돈이 바닥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때마침 제품도 잘 팔리지 않고, 은행에 넣어둔 예금도 바닥났다면요. 월급을 줄 돈도, 은행 이자를 낼 돈도 없다면. 세계적으로 경기가 나빠 당장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면. 이럴 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찾아와 ‘꿔준 돈을 갚으라’고 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상황이죠. 영화·드라마에서 채권자가 기업의 공장이나 사장의 집·자동차에 빨간색 차압 딱지를 붙이는 장면을 본 적 있을 겁니다. 망한 기업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기 위해 채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지요.

| 처방전대로 기업 노력하면 지원
빚 갚는 것 연기, 돈 더 빌려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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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 자금난에 부딪히면 은행에 긴급 구조요청을 합니다. 물론 은행도 기업에 돈을 빌려줬으니 채권자입니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을 모아 ‘주채권단’이라고도 일컫습니다.

다만 은행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함부로 기업의 재산을 뺏지는 않아요. 기업이 망했을 때 많은 실업자가 생길 수 있고, 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감안합니다. 빌려준 돈을 온전히 돌려받으려면 기업이 살아나는 편이 이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은행은 기업이 자금난을 겪으면, 이자의 납입 기한을 늘려주고 회사의 운영 자금도 추가로 대출해 줍니다. 은행이 기업의 의사 선생님으로서 치료를 해주는 셈이죠.

| 워크아웃·법정관리가 ‘수술’이면
자율협약은 약으로 치료하는 처방


그러나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면 은행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합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빌려주고 시간을 줘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죠. 2013년 경영난에 빠진 동양그룹이 채권단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채권단은 동양그룹이 은행 대출 말고도 빚이 많아 치료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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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빌려주는 돈은 고객이 맡긴 예금이라 함부로 쓸 순 없죠. 그래서 일단 기업에 청진기를 대보고 ‘회생 가능성’을 꼼꼼히 따지는 것입니다. 은행은 기업의 문제가 무엇 인지 확인하면, ‘인력을 줄여라’, ‘수익이 나지 않는 공장을 매각해라’, ‘원료를 조달하는 단가를 낮춰라’ 등등의 처방을 내놓습니다. 기업이 금융기관의 ‘처방전’을 받아 경영정상화 노력을 한다면 그때야 비로소 돈을 줍니다.

이런 처방은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기업으로선 처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거절할 수도 있죠. 물론 그러면 은행의 자금 지원을 못 받겠지만요. 기업과 은행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구조조정을 신청하고, 처방전을 주기 때문에 ‘자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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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협약보다 더 강도 높은 치료법도 있어요. 바로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과 ‘법정관리’라는 것입니다. 자율협약이 약 먹고 생활 습관을 고쳐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라면, 워크아웃·법정관리는 기업을 강제로 수술대에 올려 외과 치료를 하는 방법이죠.

워크아웃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채권자가 기업의 채무를 관리하는 일을 뜻해요. 채권단의 75%가 결정하면 곧바로 시작돼요. 물론 기업은 거부할 수 없어요.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기업의 경영권은 채권단이 갖게 돼요. 채권단은 기업이 다시 건강해져, 빚을 잘 갚을 수 있도록 인원을 감축하거나, 자산을 매각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실시해요.

채권단은 워크아웃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대표자를 해임하고, 새로운 관리인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채권단이 만족할 만한 정도로 기업의 채무 상환이 성사되면 채권자 회의를 개최해 졸업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제 건강해졌으니 퇴원 심사를 하는 거죠.

법정관리 역시 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의해 진행되는 수술 방식인데 가장 큰 수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법률 용어로는 법인 회생이라고 해죠. 기업은 빚을 갚을 방법과 시점을 스스로 결정해 채권단과 법원의 심사를 받아야 해요.

예를 들어 공장을 매각해서 빚의 20%를 갚고 인력을 줄여 지출의 30%를 줄여서 1년 뒤까지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식으로요. 법원은 법률과 기업상황 등을 따져 기업을 살릴지, 파산시킬지를 결정합니다.

법원의 허락이 떨어지면 채무 조정을 통해 기업이 현실적으로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채무를 낮춰줍니다. 채권자로선 일부 손해를 입게 되죠. 이런 채무 상환 계획안을 기업이 잘 지키는지를 법원은 수시로 검사합니다. 계획안 대로 채무 변제를 마무리하면 기업은 법정관리에서 졸업하게 되는 거죠.

만약에 구조조정을 더 열심히 해서 계획보다 빨리 빚을 갚으면 조기졸업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경영권은 다시 이전 경영진이나 오너에게 되돌아가죠. 반대로 기업이 채무 상환 계획을 잘 지키지 못해 빚을 못 갚는다면 법원은 기업을 파산시킵니다. 자산을 모두 정리해 채권자에게 돌려주고 기업을 없애는 거죠. 물론 기업 오너로선 돌려받을 경영권도 사라집니다. 이 두 방법 모두 강제적이라, 기업으로선 창피할 거예요.

그렇지만 조금 더 건강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고, 투자자나 채권단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기업이 평소에 재무관리를 잘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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