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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의 영웅이던 샐러리맨이 추락한 이유는?

중앙일보 2016.05.0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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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 경제 재건의 영웅이던 샐러리맨이 이제 경제 회생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파이낸션타임스(FT)가 3일 보도했다. 상사 눈치를 보고 권위적으로 부하 직원들을 다루며, 창의성을 잃고 집단 사고에 빠져 개혁 저항 세력이 됐다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에 따른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한데 샐러리맨의 저항이 발목을 잡는다고 FT는 진단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란 저성장을 거치는 동안 샐러리맨은 실직의 공포에 빠져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고 비정규직 확대를 용인했다. 그 결과 1990년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는 3배 이상 늘어 전체 노동력의 38%를 차지하고 있다. 또 일본 219개 대기업 임직원들의 지난해 평균 임금은 20년 전에 비해 0.44% 밖에 오르지 않았다. 신세이 은행은 샐러리맨의 용돈이 33년만에 최저라고 발표했다. FT는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전사에서 순한 양이 됐다”고 평했다.

와세다(早稻田)대 하라 가쓰미 교수는 “도시바 스캔들이나 미쓰비시자동차 연비 조작 스캔들 문제의 근간에는 샐러리맨의 왜곡된 충성심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의회 보고서는 “사고의 근본에는 권위에 대한 반사적 복종과 집단사고라는 일본의 전통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조치(上智)대학 정치학과의 나가노 고이치 교수도 “일본 샐러리맨의 집단적 사고는 창의성을 가로막고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며 일본 노동 시장 개혁을 위해 샐러리맨 개혁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달 “일본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일갈했을 정도다. 아베 총리는 성과급을 도입을 통해 노동시장을 개혁하려 하지만 샐러리맨·노동조합·로비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힘든 상황이다.

샐러리맨의 활약을 그쳐 인기를 끈 만화 『샐러리맨 긴타로(金太?)』의 작가 모토미야 히로시는 “지금의 샐러리맨은 노예”라고 경고했다. 그는 샐러리맨들이 보신주의에 빠져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을 솎아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바(千葉)대 상과대 시마다 하루오 학장은 “일본 샐러리맨은 경제 호황기엔 효과적이었지만 제로 성장기를 맞으며 끔찍한 재앙이 됐다. 과거엔 밤 늦도록 일하는 샐러리맨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경력직 이동이 활발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총리를 포함해 모두가 이런 문제점을 알지만 샐러리맨의 저항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일본 샐러리맨도 고달프다. 나이 든 세대는 밤늦게까지 일하며 가족에 소홀했던 삶이 후회스럽다고 경고하고, 젊은 세대는 회사 때문에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시대착오라고 말한다. 기성세대가 안정된 정규직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는 질시도 이들을 괴롭힌다. 고령화는 가속되고 10년 후면 근로자 2명이 퇴직자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본여성대 노동경제학 전문가인 오사와 마치코는 “샐러리맨들도 스스로의 상황을 알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며 “이런 사실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과도한 업무로 도피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FT는 일본 경제의 부활을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과 혁신, 위험 분산과 여성 인력의 활용 등 구조 개혁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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