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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2조 적자서 5조 흑자…SK하이닉스 구조조정 배워라

중앙일보 2016.05.03 02:33 종합 3면 지면보기
재계 3위인 SK그룹 82개 계열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0조원이 넘는다. 그런데 여기서 절반(5조3361억원)을 담당한 알짜 계열사가 있다. 바로 SK하이닉스다. 이 회사가 어떤 곳인가. 2000년대 초반 부실에 휩싸여 “중국에 공장을 넘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던 애물단지였다. 그 무렵 적자는 2조원에 육박했다.

노·사·채권단 뭉쳐 경쟁력 높여
해운업도 금융채무 조정이 아닌
역량 키우는 전략적 구조조정을

하이닉스가 함정에 빠진 건 반도체 업종의 ‘치킨 게임’ 때문이었다. 20개 남짓한 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벌였다. 앞다퉈 대규모 증설을 하니 D램 값이 곤두박질쳤고, 모두가 파국으로 달려갔다.

당시의 ‘데자뷔(기시감)’가 해운업에서 재현되고 있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 머스크는 2011년 유럽 항로에 70여 척의 대형 컨테이너선을 투입했다. 경쟁사인 3위 프랑스 CMA-CGM도 맞불을 놓았다. 운임 가격이 하락했고 마침 세계적 불경기와 맞물려 수익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진해운·현대상선의 구조조정 불씨도 여기서 피어 올랐다.

그러나 반도체 치킨 게임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살아남았다. 하이닉스는 초미세 반도체 공정 같은 연구개발(R&D)에 달려 들었다. 노·사·채권단은 2인 3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채권단이 자금 지원에 나서자 노조는 임원감원, 임금동결 같은 고통 분담을 모두 수용했다.

해운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계(大計)를 봐야 한다. 지난 40년간 100여 개 나라에 물류 거점을 구축해 놓은 국가적 전략 산업이 바로 해운업이다. 구조조정 핵심도 금융 채무 조정에 급급하기보다는 산업 재편과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LNG선·벌크전용선·신항만 등 핵심 자산 매각은 피하고, 경쟁력 있는 신형 선박을 도입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해운사를 옥죄고 있는 비싼 용선료 지급도 정부와 채권단의 잘못된 구조조정이 한몫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채권단이 해운사의 핵심 자산인 배를 팔아 부채비율을 낮추게 했다. 실어나를 배를 팔았으니 비싼 삯을 지급하고 배를 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실 경영의 책임은 1차적으로 경영진과 회사에 있다. 그들에게 뼈를 깎는 책임과 고통 분담을 묻는 것도 당연하다.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면 문을 닫게 하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선 해운업의 국가적 영향이 큰 만큼 ‘전략적 구조조정’이라는 접근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16개 메이저 업체들의 과점(寡占)으로 운영되는 이 산업에서 치킨 게임이 끝나면 새로운 승자가 시장을 독식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정부도, 채권단도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진 않아 보인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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