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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측한 사건 넘치는 세상, 선한 이야기 전하고 싶어”

중앙일보 2016.05.03 01:07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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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필 옹은 “세상에 해괴망측한 일이 더는 없도록 좋은 얘기를 널리 전파하고 남을 칭찬하자”고 말한다.


지난달 30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退溪) 이황(1501~1570) 선생의 종택. 사랑방에서 붓글씨를 쓰던 16대 종손 이근필(84) 옹이 두루마기 차림으로 종택 옆의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 마루에 올라섰다. 이날 대구에서 온 도산우리예절원 회원 40여 명을 맞았다. 양쪽 귀가 어두워 안내자가 작은 칠판에 ‘한 말씀 해 달라’고 써 보이자 이 옹은 먼저 맞절로 인사부터 했다. 그리곤 꿇어앉은 자세로 “찾아 줘 고맙다”며 말문을 열었다.

‘백만인 애국심 릴레이’ 펼치는
퇴계 이황 16대 종손 이근필 옹
청렴·애국·효도 글 모은 소책자
2만여 부 찍어 종택 방문객에게 배포


그는 추월한수정의 내력을 설명했다. “퇴계 선생 사후 145년 만에 문도(門徒)의 후손들이 학덕을 기리기 위해 갹출해 지었다. 건물 이름은 ‘가을 달이 찬 물에 비쳤다’는 주자(朱子)의 싯구에서 따 왔는데 퇴계 선조의 투명한 성품을 뜻한다. 정자는 이후 두 차례 불이 났고 그때마다 다시 후손들이 돈을 거둬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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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위의 편액을 하나씩 설명한 이 옹은 다시 봉투 하나씩을 돌렸다. 봉투 속에는 자신이 손수 쓴 ‘의재정아(義在正我·의리는 나를 바르게 하는 데 있다)’란 글씨가 들어있었다. 또 ‘백만인 애국심 릴레이’라는 소책자(사진)도 있었다.

10여년 전부터 종택 방문객에게 글씨를 건네온 이 옹은 2013년부터는 ‘도덕으로 나라를 세우자’는 운동도 함께 해오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공감한 글을 모은 30쪽짜리 자료집 ‘백만인 애국심 릴레이’를 방문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이 옹은 신문을 읽다가 청렴·애국·효도 등을 주제로 한 참신한 글을 만나면 직접 스크랩한다. 또 필자들에게 연락해 일일이 게재 허락까지 받는다.

이 옹은 추월한수정이 지어진 과정처럼 ‘종택이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기만 했다’고 생각해 늘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력이나마 자신도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흉측한 사건이 넘쳐나는 세상에 선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전액을 부담해 2013년과 2014년에 소책자 1만부 씩을 찍어 배포하고 올 초 다시 1만부를 인쇄했다. 퇴계 종택은 연간 4만 여명이 찾는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은 “이 옹은 직접 책을 제작하고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예안향교’ 등이 펴낸 것으로 해 놓았다”고 전했다. 책자 마지막엔 100명의 릴레이 독서자 서명란이 있다. 1만부를 100명씩 돌려가며 읽으면 100만 명이 좋은 이야기를 접한다는 뜻에서다.

이 옹은 ‘예인조복(譽人造福·남을 많이 칭찬하면 복을 받는다)’을 강조하며 남을 많이 칭찬하는 사람을 상 주자는 운동도 펴고 있다. 또 해외에서 한글을 배우는 학교에 『퇴계선생 일대기』를 배포해 ‘사해춘택(四海春澤·온 세계에 우리 문화가 봄의 은택처럼 퍼진다)’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그런 참혹한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좋은 이야기를 널리 전파하고 남을 칭찬하자”고 거듭 강조했다.

글·사진 안동=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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