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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에 울었던 신지은, 5년 만에 처음 웃다

중앙일보 2016.05.03 00:58 종합 25면 지면보기
소녀는 어려서부터 잘 넘어졌다. 하도 잘 부딪히고 엎어져 양 다리에는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멍자국이 없어질 때쯤이 되면 어김없이 또 넘어졌다. 그러나 그 때마다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씩 웃곤 했다.

JTBC후원 텍사스 슛아웃서 첫 우승
2012년 낙뢰로 1홀 남기고 경기 중단
2타 차 앞서다 뼈아픈 역전패 당해
134번 출전해 톱10만 20차례 아픔
“세리 언니 보며 한국인 자부심 느껴”
9세때 미국 이민 갔지만 국적 유지

아홉 살 때 골프를 시작한 소녀는 성인이 된 뒤에도 계속 넘어졌다. 페어웨이에서 넘어지는 일은 다반사. 한번은 퍼팅 그린에서 연습을 하다가 넘어진 적도 있다. 그 때도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옷을 툭툭 털어내며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6년차 신지은(24·한화)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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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데뷔한 신지은이 135번째 도전 끝에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말발굽 모양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활짝 웃는 신지은. [어빙 AP=뉴시스]


‘오뚝이’ 신지은이 LPGA투어 아메리카 텍사스 슛아웃 프리젠티드 바이 JTBC에서 134전 135기를 이뤘다. 신지은은 2일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라스 콜리나스 골프장에서 끝난 최종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잡아 합계 14언더파로 역전 우승했다.

마지막날엔 강풍이 불어 대부분의 선수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2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제리나 필러(31·미국)는 2타를 잃고 12언더파 공동 2위로 밀려났다. 필러에 4타 차 공동 4위로 출발한 신지은은 전반에 3타를 줄인 뒤 후반에 1타를 더 줄였다. 강풍 탓에 그린을 놓치면서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2~3m 거리의 퍼트를 잇따라 성공하면서 43홀 연속 노보기 플레이로 우승했다. 우승 상금은 19만5000달러(약 2억2200만원).

2011년 투어에 데뷔한 신지은은 우승 문턱에서 자주 넘어졌던 선수였다. 가장 뼈아팠던 역전패는 2012년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나왔다. 1홀을 남기고 2타 차 선두였지만 낙뢰로 경기가 2시간 중단되면서 다 잡았던 우승컵을 놓쳤다. 2시간을 쉬고 나온 뒤 더블보기를 하면서 연장전에 끌려들어가 안젤라 스탠퍼드(39·미국)에게 패했다.

신지은은 지난 해 토토 재팬 클래식에서도 2라운드까지 단독 선두를 달리다가 마지막 날 안선주(29)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올해도 지난 2월 ISPS 한다 호주 여자오픈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였지만 마지막 날 2타를 잃고 공동 9위를 했다. 그렇게 우승 없이 톱 10만 20번을 했다.

신지은은 역전패의 상처를 연습으로 치유했다. 키 1m60cm로 골프 선수치고 작은 편인 신지은은 샷거리가 짧은 편이었다. 투어 데뷔 당시 246야드로 81위였다. 그러나 2년 전부터 혹독한 체력 훈련을 한 덕분에 체중을 10kg나 줄이면서 근력을 키웠고, 비거리가 260야드까지 늘어났다.

신지은은 “우승을 못하고 내리막을 걷는 선수들을 많이 봤다. 물론 우승하면 더 좋겠지만 ‘우승을 못하더라도 2등을 많이 하는 선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내 골프는 해마다 발전했다”고 말했다.

아홉 살 때 미국으로 이민간 신지은은 여전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신지은은 “(박)세리 언니가 LPGA투어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을 보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생겼다. 골프를 시작한 뒤에는 ‘제 2의 박세리가 되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제니 신이라는 미국 이름 때문에 ‘재미 동포’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국적을 바꾸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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