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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때문에…회사채 시장 배앓이

중앙일보 2016.05.03 00:01 경제 1면 지면보기
해운·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회사채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구조조정 칼날에 퇴출되거나 신용등급이 깎이는 기업이 속출할 거란 우려 때문이다.

해운·조선 적자 등 영향…올 상환액 34조 귀추 주목
기업 신용등급 하향 36곳, 상승은 16곳 그쳐
“투자자들 고금리만 좇지 말고 기업 상환 여력 살펴야”

회사채 만기 상환에 실패한 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이 발행한 회사채 만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들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 금액은 약 3조원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조선사들이 지난해 발행한 회사채 금액은 약 2조원이다.

불안감이 계속 확산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기업에 대한 빚 상환 압박이 한꺼번에 몰려 회사채 시장을 급격히 얼어붙게 할 수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 회사채는 34조원에 달한다. 지난해(37조1807억원)보다 소폭 줄었지만 빚 상환 능력이 나빠지고 있는 기업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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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예탁결제원·금융감독원 (NICE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 중복합산)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3대 신용평가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는 올 들어 회사채 발행 기업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달까지만 36곳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상승한 기업은 16곳에 그쳤다.

신용등급이 하락한 주요 기업은 현대상선(CCC→D)·한진해운(BB+→B-)·두산중공업(A→A-)·두산인프라코어(BBB+→BBB)·두산건설(BBB- →BB+) 등이다. 앞으로도 기업의 신용등급 하락 추세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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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국예탁결제원·금융감독원 (NICE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 중복합산)


지난해 말 국내 3대 신용평가사에서 ‘부정적’ 등급 전망을 받은 기업은 65곳(중복합산)으로 ‘긍정적’ 전망을 받은 기업(30곳)의 2배를 넘어섰다. 등급 전망은 앞으로 해당 기업의 신용등급이 어떻게 될지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부정적’ 전망을 받으면 3~6개월 내 신용등급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회사채 순발행 규모도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1조5000억원 줄었다.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회사채를 갚은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지만 차환 발행이 어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갚은 기업도 적지 않다. 회사채 시장의 단기화 조짐도 보인다. 장기채를 줄이고 단기채를 늘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

김선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불투명한 경기 전망에 따른 기업의 신용등급 하락 우려로 투자자들이 단기물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만기 5년 이상의 회사채 발행액은 20조946억원으로 전년(23조5402억원)보다 17% 줄었지만 5년 미만의 회사채 발행액은 1년 전보다 5% 늘었다.

전문가들은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유보 현금이 많은 우량 기업은 회사채를 찍을 필요가 줄어 물량이 달린다. 이와 달리 비우량 기업은 시장 수요가 적어 회사채 발행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런 기업은 결국 금리가 높은 대부업계나 사채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악순환에 빠진다.

정원현 한국기업평가 평가기준실장은 “최근 3년간 기업 신용등급 하향으로 회사채 투자자들의 수요가 업종에 따라 많이 갈렸다”며 “해양·조선·철강 등 취약한 5대 업종은 신용등급이 A등급이어도 수요가 없고 그 이외 업종들은 A등급 아래에도 수요가 몰렸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에 따른 회사채 시장의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도 회사채 시장 안정 대책을 마련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1일 배포한 자료에서 “회사채 시장의 어려움이 확산될 경우에 대비해 다양한 안정화 방안을 즉각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 금리엔 신용 위험이 반영돼 있어 금리가 높으면 부실위험도 크다”며 “일반 투자자들은 고금리만 좇지 말고 해당 기업이 실제 이익을 내고 있는지, 채권을 갚을 여력이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희·이승호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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