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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정부 주도 빅딜 불가론 재확인···"1998년 반도체·차·전자는 실패했다"

중앙일보 2016.05.02 02:20 종합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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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왼쪽 넷째)이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 금융개혁추진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임 위원장은 이틀 뒤 열린 언론사 경제부장 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은 국가적 위험요인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산은법 개정을 통해 한국은행의 출자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뉴시스]


“1998년 추진했던 빅딜은 일부 성공한 부분도 있으나 빅딜의 중요 부분인 반도체·자동차·전자는 실패했다.”

언론사 경제부장단과 간담회
“구조조정 가장 두려운 건 신용경색
멀쩡한 기업들은 피해 안 가게
조선·해운으로 타깃 명확히 해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빅딜불가(不可)론’을 재차 피력했다. 지난달 29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간담회 자리에서다. 임 위원장은 앞서 지난달 26일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주재한 뒤 조선 3사의 빅딜과 관련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고 밝혔다.

빅딜불가론은 외환위기 때 경험이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됐다. 당시엔 정부가 칼을 휘두르고 전면에 나섰다. 반도체는 현대전자로 통합했지만 이후 경영이 악화하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 간의 사업교환은 기업 간 협상 실패로 삼성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무산됐다.

임 위원장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통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하면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금융위원회는 별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협정과 내국민대우 의무를 거론했다. 정부가 무리하게 기업 구조조정에 나섰다가 ‘정부의 특정성 있는 재정적 기여(보조금 협정 위반)’나 ‘국내 기업을 차별적으로 유리하게 대우(내국민대우 위반)’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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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출이 많았던 외환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제2금융권 대출과 회사채 발행이 많아졌다. 기업의 여신 구조가 복잡해졌다는 얘기다. 임 위원장은 “정부 주도로 합병 등 인위적인 기업 빅딜을 하기는 곤란하지만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사업재편,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할 경우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기업 구조조정 경험을 돌아보면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신용경색(credit crunch)현상이다.”

임 위원장은 “경제 전반에 대한 무차별적 구조조정으로 오인되면 은행들의 연쇄적 기업 자금회수로 멀쩡한 기업도 쓰러뜨리는 결과(흑자도산)를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구조조정의 타깃을 조선·해운으로 명확하게 밝힌 이유다. 조선·해운업에 대한 국내 금융권 익스포저(대출·유가증권·지급보증)의 대부분(60% 이상)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보유하고 있으며, 일반은행의 조선·해운에 대한 익스포저는 기업여신 중 5% 미만이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자본확충 대상으로 산은·수은을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국책은행 자본확충은 재정이나 한은 출자를 통한 증자와 조건부 자본증권 발행을 통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산업은행의 경우 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 발행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코코본드는 유사시 투자 원금이 주식으로 강제 전환된다는 조건이 붙은 채권이어서 은행의 자본 건전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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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 단위의 구조조정 접근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금의 위기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중국 기업의 성장 등으로 초래된 구조적 공급과잉 문제이기 때문에 개별기업 단위로 대응하면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 원칙을 견지하겠다는 언급도 있었다. 임 위원장은 “개별기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할 경우 전문성 부족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기업 구조조정은 해당 기업을 가장 잘 알고 있고 여신을 보유한 채권단이 중심이 되어 해당 기업과의 협의하에 추진하는 원칙이 철저히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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