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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박근혜는 왜 박정희 못 따라가나

중앙일보 2016.05.02 00:42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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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소통’의 형식에 치중했을 뿐 알맹이는 모두 빠뜨렸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하던 “모든 게 나의 잘못”이라는 고해성사 대신 “4·13 총선은 되는 일 없는 양당 체제를 3당 체제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헛짚었다. 박 대통령은 또 “사실 친박을 만든 적이 없다”며 “선거 때 자기들 마케팅으로 그냥 친박·탈박·짤박 같은 별별 이야기를 다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유권자들이 본 이한구 의원의 망나니 칼춤과 진박 감별 소동은 헛깨비였을까.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이런 해명을 넙죽 받아들이리라 기대하는 것일까.

박정희의 뛰어난 소통과 인사원칙
박근혜도 싫은 사람들부터 만나야


정치적 리더십의 두 기둥은 소통과 인사다. 우선 45개사 편집·보도국장들을 넓은 식탁에 불러모아 마이크로 이야기하는 게 소통인지부터가 의문이다. 다음은 조규하(전 전남지사·전경련 부회장)씨가 전해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숨은 이야기다. 전남 고흥 출신의 조씨는 1970년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청와대를 출입했다. “박 대통령은 매달 한 번씩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만 따로 불러 1시간쯤 독대를 했어요. ‘이번 ○○조치에 시중 여론은 어떻게 돌아가?’라는 질문을 툭툭 던지곤 했어요.” 박 전 대통령이 왜 자신에게 비판적인 신문사의 기자와 정기적 독대를 했는지는 모른다. 조씨는 “아마 가장 좋아했던 형(박상희)이 일제 시절 동아일보 구미 지국장을 한 때문”이라 추측할 뿐이다.

“독대를 마치고 나오면 난리가 났어요. 박종규 경호실장이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협박하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도 ‘나를 씹은 건 아니냐’며 윽박질렀어요.” 조씨는 “돌아보면 그런 독대야말로 박 대통령 특유의 소통 방식이자 2인자들에게 눈과 귀를 붙잡지 말라는 경고였다”고 기억했다. 그 시절 궁정동 안가는 비극의 장소이기 이전에 최고 권력자의 생생한 소통의 현장이기도 했다. 속내까지 털어놓는 진짜 소통은 공개된 넓은 공간이 아니라 이처럼 좁고 은밀한 장소에서 이뤄진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시대의 인사원칙은 군 시절 몸에 밴 균형과 견제였다. 순혈주의와 동종 교배를 막기 위해 지역 안배와 상피(相避)제도를 철저히 적용했다. 동향 출신의 장·차관은 절대 금지시켜 기계적 탕평인사가 이뤄졌다. 이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 간담회에서 “내각과 청와대 개편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마디로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 무슨 문제냐는 판단이다. 하지만 권력의 칼이라는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대구 청구고 출신이다. 국세청장과 감사원 사무총장도 대구고 동문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영주고)과 공정거래위원장(경북고)까지 TK 일색이다. 수첩 인사를 넘어 아예 동네 인사 수준이다. 세종시의 새누리당 총선 지지율이 28.6%에 그친 것도 공무원들의 상대적 박탈감 때문인지 모른다.

친박 김재원 의원은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마이웨이’가 부친의 명예에 오히려 독이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징조가 여론조사에 어른거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호감도는 언제나 압도적 1위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박정희 코스프레’ 역풍으로 2010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호감도와 비슷해졌다. 드디어 올 4월에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리서치뷰의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에서 노무현(39.1%)-박정희(29.4%) 순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미 일부 보수인사들은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놓아줘야 한다”며 탈당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보수의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부담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솔직히 박 대통령은 쉽게 변할 스타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왜 아버지를 못 따라가나”는 말은 듣지 않았으면 한다. 원래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박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가장 만나기 싫은 사람들부터 만나고 그런 인물들을 청와대와 내각에 끌어들였으면 한다. 그게 “그 아버지에 그 딸”이란 말을 듣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소통 방식과 인사원칙은 박정희 시절이 훨씬 뛰어났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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