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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럭셔리호텔 그대로…장르 따라 다른 컬러…스마트폰 화면처럼

중앙일보 2016.05.02 00:06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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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기자

Special Knowledge <619> 출판인들이 뽑은 디자인 예쁜 책 톱8 책 을 “펼쳤을 때 까만 건 글씨, 하얀 건 종이”라고 표현한 소설가가 있지만, 책은 단순한 정보의 집합체가 아니다. 집었을 때의 촉감, 표지 이미지, 본문 디자인 등이 어우러져 한 권의 책은 온전히 미학적 감상의 대상이다. 책 디자인에 관심 많은 출판인들로부터 ‘요즘 예쁜 책’들을 추천받은 다음, 그 책들을 만든 사람들에게 디자인 포인트에 관해 들었다. 모두 8권 .
 
한국 독자 취향 맞춰 아기자기하게 재구성
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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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평소 책을 정갈하게 만들기로 소문난 마음산책 출판사의 정은숙 대표는 “표지를 꽉 채운 호텔 그림이 미치도록 마음에 들어 아무 생각 없이 샀다”며 디자인 예쁜 책으로 추천했다. 영화로 치면 제작과정을 흥미롭게 전하는 메이킹 필름에 해당되는 책이다.

2014년 국내 개봉돼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웨스 앤더슨 감독, 배우 랄프 파인즈의 인터뷰는 물론 촬영장면 사진, 일러스트, 감독이 영향 받았다고 밝힌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 세계 등 영화의 깊이 있는 감상을 돕는 자료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킨포크 테이블 시리즈, 동화 작가 타샤 튜터의 책 등 개성 뚜렷한 책들을 내온 출판사 윌북은 외국 원서를 똑같이 재현하지 않았다. 페이지는 1대 1 대응하지만 전체적인 색깔은 원서보다 밝게, 사이즈는 30% 정도 작은 ‘46배판’(가로·세로 18.8X25.7㎝)을 선택해 ‘아트북’도 아기자기해야 좋아하는 한국 독자의 취향에 맞췄다. 두 달 만에 2만 부가 팔려 기대 이상의 성적.
 
페미니스트가 싫어하는 색 고정관념 역이용
②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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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저자인 아이티계 미국 작가 록산 게이는 유연한 페미니스트로 통한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내기 시작한 출판사 사이행성의 김윤경 대표는 “반드시 여성 전사가 아니라 가정주부, 패션잡지를 즐겨 보는 여성도 얼마든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런 페미니즘의 특징이 책 표지에 반영돼 있어서 신선했다는 것이, 허밍버드 출판사의 김연주 편집장의 추천 사유다.

핑크색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들이 좋아해 마땅한 색이라는 식으로 세뇌됐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라면 당연히 싫어하는 색으로 여기는데 그런 고정관념을 오히려 깨고 책 표지 색깔로 과감하게 선택했다는 것. 그런 원서의 선택을 받아들여 한글판도 핑크색 표지를 택했다. 표지에서 제목이 인쇄돼 있는, 밑변이 열린 사각 모양의 도형은 원서에는 없다.

김윤경 대표는 “빈틈 없는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유가 있는 페미니즘이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제목도 뭔가 부족한, 그래서 열린 페미니스트를 뜻한다. 한 달 만에 2쇄 돌입.
 
눌러 쓴 글자 … ‘악’ 이미지가 촉각으로
③ 잔혹함에 대하여/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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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함에 대하여

얼핏 겉표지가 찢겨 사라진 느낌을 주는 표지 디자인이다. 책의 목차가 페이지까지 친절하게 표시돼 겉표지에 인쇄된 탓이다. 문학동네 시인선을 만드는 김민정 시인은 “표지만 보고도 책의 내용, 구성을 짐작할 수 있어 선택하게 만드는 힘이 있고, 막상 만졌을 때 거친 질감이 마음에 든다”며 추천했다.

돌베개 출판사의 김동신 디자이너는 “전체적으로 촉각 자극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오돌도톨한 겉표지 재질이 그렇고, 겉표지의 글자 인쇄가 그렇다는 얘기다. 표지의 제목과 목차 글자는 단순 인쇄가 아니라 출판인들이 ‘박을 입혔다’고 표현하는 방식으로 찍었다. 글자에서 미세한 두께감이 느껴진다는 것.

겉표지 제목과 목차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악’이라는 글자는 잉크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를 눌러 글자 모양을 보이게 한 형압(型押) 방식을 사용했다. 그래서 겉표지를 뒤집어 보면 좌우가 바뀐 ‘악’자가 눌린 자국을 볼 수 있다. 일상에 숨겨져 있는 얼핏 잘 보이지 않는 악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시간의 흐름따라 표지도 점점 진해져
④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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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열린책들 디자이너 석윤이씨는 “단순히 디자인만 좋은 게 아니라 디자인 컨셉트가 책의 내용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며 추천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역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저자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됐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출간된다.

민음사 디자이너 박연미씨는 “디자인으로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에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잃어버린…』은 모두 7편으로 구성돼 있다. 출판사는 1∼3편까지 각 편을 두 권씩으로 분권해 지금까지 6권을 출간했다. 박씨는 “각 편에서 자주 나오는 이미지인 월계수 이파리, 라일락, 장미를 각각 각 권의 표지 이미지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겉표지 색깔은 편을 거듭할수록 차츰 진해지도록 제작하고 있다. 겉표지 안쪽의 하드커버 표지 색깔은 권마다 다르게 변화를 줬다. 또 각 패턴이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흐르는 느낌으로 배치해 소설 내용과 어울리도록 했다. 보통 판형보다 세로에 비해 가로 길이가 짧아서 시원한 느낌을 준다.
 
사진·일러스트 대신 패턴으로 이미지화
⑤ 세계문학 단편선/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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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 단편선


출판사 스윙밴드의 이수은 대표는 “있어 보이는 사진이나 이미지로 승부하는 기존 문학 전집들의 그만그만한 디자인과 달리 패턴(무늬)을 표지 이미지로 선택해 신선하다”며 추천했다. 사진이나 일러스트로 책 내용을 직접 설명하려 하지 않는 것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다. 대신 책마다 패턴과 색상을 달리해 변화를 준다. 작가의 국적, 작품 장르, 소설의 성격 등을 고려해 그에 어울리는 패턴·색깔을 선택하는 식이다.

가령 4월 초순에 출간된 단편선 22권 『레이먼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원조로 평가받는 레이먼드 챈들러(1888∼1959)의 소설 색깔에 맞게 튀지 않고 가라 앉은 색상이다. 그에 비해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기이한 사례’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단편선은 소설 내용처럼 강렬한 붉은 색 계열 패턴을 사용했다. 표지는 패턴이 생생하게 보이도록 유광 코팅 처리했다. 현대문학 김영정 실장은 “단편선을 서재에 나란히 꽂았을 경우 어울림까지 고려해 색상을 정한다”고 밝혔다.
 
엉성한 손글씨·그림 디자인이 오히려 눈길
⑥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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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반드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아니라, ‘열린책들 소설책’이라는 한 덩어리가 이번 예쁜 책들 조사에서 유일하게 복수 추천을 받았다. 그만큼 이 출판사의 소설책 디자인이 동료 편집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얘기다. 『창문 넘어…』는 말하자면 그 대표격이라는 얘기.

스윙밴드 이수은 대표는 “열린책들은 몇 년에 한 번씩 누구나 인정할 만한 빼어난 디자인을 선보여왔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창문 넘어…』의 경우 꼼꼼히 뜯어보면 결코 타이포그래피(글자 디자인)나 100세 노인 일러스트가 아름답지 않고 오히려 엉성한데도 전체적으로 잘 어울린다는 얘기. 만들어 놓으니 그럴싸 하지만 각각 엉성한 글자와 그림 디자인을 오케이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했고,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창문 넘어…』의 표지는 모두 디자이너 석윤이씨의 손글씨와 손그림이다. 석씨는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술술 읽히면서 캐릭터가 워낙 뚜렷해 무척 재미 있게 작업했다”고 밝혔다.
 
빛바랜 느낌 표지, 재즈 분위기 살려
⑦ 마일즈 데이비스/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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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데이비스

척 보기에도 한 손에 쏙 들어올 것 같은 날렵한 판형이다. 전지 규격인 ‘국전지’ ‘46전지’를 몇 차례 자르느냐에 따라 사이즈가 구분되는 ‘표준 규격’에는 없는 변형판이다. 가로·세로 11X18.5㎝. 본문 종이는 과거 작은 크기의 영어 사전에 많이 쓰이던 얇은 두께의 ‘중질지’를 썼다.

출판사 ‘그 책’의 디자이너 김기연씨는 “요즘은 종이 손실을 줄이기보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책의 내용과 최신 유행 감각에 맞게 판형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재즈 거장 마일즈 데이비스를 좋아하는 재즈 마니아들이 한 손에 들기 좋게 책 크기를 정했다는 얘기다. 중질지를 선택한 이유도 고급스러운 하얀색에 비해 빛바랜 느낌을 선사할 뿐 아니라 얇아서 잘 넘겨지는 특징이 편안한 재즈의 분위기에 잘 들어 맞는다고 생각해서다.

출판사 정상준 대표는 “책의 겉표지를 코팅 하지 않아 들고 다니면 상처를 입게 된다. 감정기복이 심해 상처 받기 쉬운 예술가의 특징과 어울린다고 느껴져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종이가 얇아, 767쪽이지만 두껍지 않은 느낌이다.
 
SNS 인스타그램 화면, 종이 위에 옮겨
⑧ 좋아서, 웃었다/허밍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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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웃었다


열린책들 디자이너 석윤이씨는 “마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하나인 인스타그램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들여다 보는 느낌이 나도록 책 본문을 편집해 인상적”이라며 추천했다. 여백 있는 사진에 그에 관한 짧은 글을 곁들인 책 속 200개 가까운 꼭지들은 ‘12月 23日’, ‘1月 22日’처럼 한자를 사용한 세로 쓰기 제목을 달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래서 시원스런 본문 편집을 보는 재미가 있다. 저자는 40대 초반의 남성지 기자. 출판사의 김연주 편집장은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눈에 거슬리는 순간이 있을 정도로 까다롭고 독특한 자신 만의 취향을 갖고 있는 필자”라고 평했다. 그런 취향이 담긴 글·사진 모음이라는 얘기다. 책의 부제 ‘오늘, 편애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에도 그런 점이 반영돼 있다. 엄마의 알록달록 양말, 황인찬 시집, 홍성 이응노 기념관 등이 그 편애의 목록들이다. 그러니 책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그렇게 감각적으로 만들어야 했을 거다. 주로 20, 30대 여성 독자가 많다고 한다. 3쇄, 6000부를 찍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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