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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 대한 감사와 행복

중앙선데이 2016.05.01 00:12 477호 34면 지면보기
중학생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중에 불평의 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엄마, 좀 더 맛있는 반찬을 해줄 수는 없어요?” 늘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좀 질렸던 것 같다.



이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얘야. 너는 아직 세상 어려운 줄 몰라서 그런 말을 한다. 이 다음에 크면 이 밥상이 얼마나 맛있는 것인지 알게 될 거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 어조에는 뭔가 진실의 힘이 실려 있었기에 더 이상의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삶과 믿음

흐르는 세월 속에서 날마다 먹는 음식의 변화도 많이 겪었다. 집을 떠나 먼 곳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바깥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때로는 음식의 맛보다는 생존을 위해서 무조건 먹어야만 했던 기간도 있었고, 지구촌 수많은 곳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음식을 골라가며 먹을 수 있던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본가에 가야만 먹을 수 있던 어머니의 음식은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맛이었다.



한 번은 식사를 하다 말고 “아버지, 이런 맛은 다른 어떤 곳에도 없고 왜 여기서만 느낄 수 있나요?”라는 물어본 적이 있다.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의 그때 빙그레 지어주던 미소에 대한 그리움이 이 글을 쓰는 동안 더욱 커져만 간다.



환경신학을 전공한 이유로 성당과 학교에서 환경 보호에 대해 강의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글이나 말로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환경을 가까이 접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텃밭을 마련했다, 고추·상추·쑥갓·가지·오이 등 각종 채소들을 직접 재배해 보면서 음식에 대한 생각이 제대로 성숙하기 시작했다.



풋고추 하나를 수확할 수 있기까지 햇빛·공기·물·흙·중력 등 얼마나 많은 환경적 요소와 사람의 노동이 필요한지, 수많은 종류의 재료들로 구성된 밥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중한 노동과 정성이 들어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음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후부터 내 앞에 놓인 음식에 대해선 우선 감사하는 마음을 절실하게 가지게 됐다.



밥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나의 생명을 위해 더 살고 싶던 수많은 생명체들이 목숨을 바친 희생의 제사다. 더욱이 내 주변 사람들의 노동과 사랑의 집합체이기에 거룩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 맛있게 먹으면서도 탐식하지 않아야겠고, 그 힘으로 살아가는 삶의 어느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보람 있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겠다. 이러한 자의식은 항상 나를 깨어있게 하고 감사하게 만든다.



산다는 것이 그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은혜롭고 행복한 일이란 걸 알게 해준다.



 



전헌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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