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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요금 먼저 내고 범인 잡히면 받아내라?

중앙일보 2016.04.28 00:37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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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피플&섹션부장

“예? 그게 말이 되나요?”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지인이 들려준 최신 경험담에 동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반응이다. 사연은 이랬다. 지인은 두 달 전 낮은 이자로 대출해준다는 전화를 받았다. 의심은 됐지만 이런저런 설명에 마음이 흔들려 개인정보를 제공했다. 신분증 사본과 카드번호 등을 줬다. 며칠 뒤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불통이었다. 혹시나 싶어 확인했더니 누군가 자신 명의로 KT m모바일(KT의 알뜰폰 판매 자회사)의 홈페이지에서 90만원짜리 최신 스마트폰을 개통해 택배로 받아갔다는 것이다. 경찰에 명의도용을 신고하고 통신사에도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통신사는 “홈페이지를 통한 개통과정에 하자가 없으니 일단 요금을 24개월간 납부하고 나중에 범인이 잡히면 범인한테 돌려받으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명의도용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어이없게 개인정보를 넘겨준 지인도 잘한 건 없었다. 하지만 통신사가 너무 허술하게 휴대전화를 개통해준 건 아닌가 싶었다. 확인해보니 개통과정에서 범인은 지인의 전화번호와는 전혀 다른 번호를 사용했다. 만일 통신사 간에 가입자 정보가 공유됐다면 바로 적발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통신사 간 가입자 정보 공유는 금지돼 있다. 다행히 지인이 가입한 통신사는 KT였다. KT m모바일은 KT의 자회사이니 둘 간에는 교차검증이 가능할 걸로 기대했다. 주요 은행들만 해도 인터넷뱅킹이 이뤄지면 고객에게 실시간으로 거래정보를 담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준다. KT에 문의했다. 하지만 홍보실 관계자는 “KT m모바일이 자회사인 건 맞지만 사실상 별개로 운영하고 있어서 가입자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했다. 알뜰폰업자들이 KT 이름만 빌려서 하는 회사란 설명도 덧붙였다. 다른 대형통신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본인인증 과정도 보니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했다. 이 정보는 보이스피싱이나 절도, 해킹 등으로 얼마든지 유출 가능하다. 본인 확인 절차가 너무 헐거운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본인이 제공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절차에 따라 스마트폰이 개통됐기 때문에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런 피해는 비단 지인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유사한 피해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통신사들의 대응은 거의 예외 없이 “우린 책임 없다”였다. 왜 이런 피해가 반복되는데도 통신사들은 손을 놓고 있을까. 본인확인 절차만 강화해도 상당 부분 피해를 막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명의도용이든 아니든 통신사는 손해 볼 게 없다. 매출은 늘고 요금도 꼬박꼬박 들어오니 말이다. 갈수록 온라인 거래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휴대전화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거대 통신기업의 태도가 이런 식이라면 명의도용 피해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망스럽다 못해 “정말 이게 말이 되나?” 싶다.

강갑생 피플&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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