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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야대가 검찰에 의미하는 것

중앙일보 2016.04.27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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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2001년 12월 8일 국회에서 드라마가 펼쳐졌다. 한나라당 의원 총원인 136명이 본회의장에 모였다. 휠체어를 타고 온 이도 있었다. 안건은 ‘검찰총장(신승남) 탄핵소추안’ 표결이었다. 가결에 재적 과반인 137표가 필요했다. 제2 야당 자민련의 의원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아 딱 한 표가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표결 무산 직전에 의원 둘이 등장했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과 민주국민당 비례대표 강숙자 의원이었다. 정 의원은 원군이 아니었다.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한 상태였다. 강 의원의 표심은 아무도 알 수 없었기에 그는 주연급 조연이 됐다.

표결이 진행됐지만 투표함은 열리지 않았다. 집권당인 민주당이 개표 감시인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나라당이 개표를 포기했다. 강 의원 표의 방향을 모르는 데다 내부 이탈표가 있을 경우 당 지도부가 역풍을 맞게 된다는 계산 때문인 것으로 언론은 해석했다. 투표함 봉인으로 가결 여부는 영원한 비밀이 됐다.

국회에서 지금까지 탄핵소추안이 14회 발의됐다. 판사 두 명(1회 중복)과 대통령 한 명(노무현)을 제외한 나머지 10회가 검사 관련이었다. 그 절반이 김대중 정부 시절에 검찰총장을 향한 것이었다. 김태정·박순용 총장이 두 차례, 신승남 총장이 한 차례 도마에 올랐다. 신 총장은 2000년 대검 차장 시절에 대통령 고향인 목포 출신의 ‘실세’라는 이유로 탄핵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검찰총장 박순용은 4·13 총선 선거사범에 대한 수사와 그 처리 결정을 함에 있어서, 여당에 대해서는 늑장수사, 기소억제, 축소기소를 유도함에 비하여, 야당에 대해서는 번개수사, 억지기소, 확대기소 등으로 공소권을 남용함으로써…’. 탄핵소추안에는 이런 표현이 담겼다.

김대중 정부의 국회는 여소야대이긴 했지만 주요 고비마다 자민련의 협조를 받았다. 진짜 야대 시절은 노무현 정부 초기 때였다. 여당이 둘로 쪼개지는 통에 집권당(열린우리당) 의원은 4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의 송광수 총장은 한 번도 탄핵의 압박을 겪지 않았다. 정권이 검찰의 독립성을 상당히 보장했고, 대검 중수부는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노 대통령 측근을 잇따라 구속했다.

세상이 반 바퀴 돌아 대통령 고향 출신 검찰총장이 대야(大野)를 상대해야 하는 시대가 다시 왔다. 그가 ‘살아 있는 권력’에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이면 어김없이 탄핵 카드가 날아들 것이다. 국민의 표가 만든 냉엄한 현실이다.

분수대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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