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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커제와 이세돌의 기묘한 가면놀이

중앙일보 2016.04.27 00:02 경제 7면 지면보기
<본선 4강전 1국> ●·이세돌 9단 ○·커 제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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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보(42~52)=하변 42는 이세돌의 전매특허 같은 수법인데 그런 수가 커제의 손에서, 그것도 이세돌을 상대로 나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최근, 커제의 바둑을 본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반면 운영이 안정적이다. 초반의 판짜기를 보면 전성기의 이창호 같다. 막연한 느낌이지만 어쩐지 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창호의 초반 판짜기는 전성기에도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포석에서 조금 뒤지고 중반 이후부터 한걸음씩 두텁게 따라붙어 종반에 전세를 뒤집는 게 이창호의 승리공식이었다. ‘강태공’ ‘인내의 화신’ ‘느림의 미학’ ‘종반의 사신’ ‘신산(神算)’ 같은 별명도 모두 그런 이창호의 기풍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하변 42는, 이창호가 아니라 전형적인 이세돌의 수법. 조훈현으로부터 이세돌로 대물림된 도발적 ‘흔들기’는 쾌속, 정밀한 감각과 수읽기의 뒷받침이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고난도의 기술. 재능이 맞지 않으면 전할 수 없다는 ‘비인부전(非人不傳)’의 절세무공이다.

42에 ‘참고도’ 흑1로 우변을 공략하면 백2부터 6까지, 하변을 깨고 우하 쪽에서 움직여 충분히 싸울 수 있다는 게 커제의 계산. 이세돌은 43부터 51까지 두텁게 받아준다. 이 장면만 보면 이세돌이 이창호다. 기묘한 가면놀이를 보는 느낌.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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