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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고궁에서 우리음악 감상해요

중앙일보 2016.04.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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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제공

26일 오전 11시, 녹음이 우거진 창덕궁 후원은 새소리로 가득했다. 미세먼지 없이 화창한 날, 나뭇잎을 휩쓸고 간 바람이 부용지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규장각이 보이는 뜰에 무대가 마련됐다.

5월 14일부터 10월 16일까지 경복궁ㆍ창덕궁ㆍ덕수궁ㆍ창경궁ㆍ종묘에서 개최되는 ‘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 널리 알림을 위한 시연회였다.

배우 남성진이 사회를 맡았다. 사극에서 볼 수 있는 한복 차림을 한 그는 정조로 분했다.

규장각은 정조의 공간입니다. 정조가 즉위했을 때 일성이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노론 세력들은 떨고 있었겠지요.”


실감나는 해설에 듣는 이들은 역사의 현장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남성진은 화성에서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면 불렀다는 정조의 ‘사부곡’을 소개했다.

무대 위에 타악ㆍ대금ㆍ키보드가 자리했다. 멀리서 유태평양이 천천히 걸어오며 노래했다.

“아침저녁으로 아버지 사무치게 그리워/오늘도 화성을 찾았네/무덤엔 가랑비 부슬부슬 내리고/방황하는 마음 깊구나...‘

유태평양의 노래는 애절했다. 창작판소리 ‘가지가 나무를 그리워하듯’이었다. 판소리 ‘심청가’ 중 ‘추월만정’ 대목을 모티브로 박경훈이 편곡한 판소리다. 유태평양이 작창한 소리에 대금과 피아노, 타악이 정조의 마음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궁중무용 ‘검무’가 이어졌다. 칼을 들고 추는 춤으로 4세기 경 고구려 벽화에도 보일 정도로 유구한 춤이다. 정재연구회(예술감독 김영숙)의 이나윤ㆍ변현조ㆍ박혜연ㆍ문경민이 춤을 추고 김한승 전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이 집박을 맡아 장구ㆍ대금ㆍ해금ㆍ피리가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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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제공

원색이 교차하는 검무는 역동적이었다. 왕궁의 뜰에서 듣는 우리음악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는 이번이 8회째다. 궁에서 열리는 프로그램 중 단연 인기 높다. 누적 관객이 34만 명에 달한다. 전통예술 활용 관광자원화 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 시범공연을 거쳐 2009년 본격적인 상설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매년 5월, 암표가 등장할 정도로 고궁야간개장이 인기다. 8월이 되면 매주 토요일 새벽 7시 창경궁에 사람들이 모인다. 한 시간 동안 풍류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아이를 업고 온다. ‘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는 본 프로그램이 오픈되면 신청자가 몰려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다. 당연히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는 새로운 힐링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8회째를 맞이하며 프로그램도 50회에서 60회로 증가했다. 궁중음악ㆍ풍류음악ㆍ민속음악ㆍ창작국악ㆍ종묘제례악 등 국악으로 연주되는 모든 종목의 전통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연극과 문학, 역사 등 다양한 장르와 결합을 통해 고궁의 품격과 전통예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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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제공

세부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먼저 경복궁이다.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9월 28일부터 10월 2일까지 매일 저녁 8시에 열린다. 올해는 경복궁 야간개장 기간동안 펼쳐진다. 국립국악원이 연주하는 수제천과 대취타, 학연화대처용무합설 등 대규모 궁중음악과 재미있는 이야기가 함께한다. 남성진 배우가 정조로 분해 대학로의 연기자들과 이야기를 꾸며간다.

‘창덕궁 산책’은 5월 15일부터 6월 12일, 9월 4일부터 10월 16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9시에 열린다. 창덕궁 후원에 들어가면 주합루를 만난다. 조선 중기에 지어진 규장각과 영조가 현판을 쓴 영화당, 우주를 상징하는 연못 부용지가 숲에 둘러싸여 있다. 올해부터는 주합루를 입체적으로 활용해 음악을 감상한다. 영화당에서 장구 반주로 가객이 노래하고, 어수문 앞에서는 대금과 피리가 연주한다.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 내는 우리 노래 ‘시조’를 감상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기를 맞아 ‘햄릿, 정조와 함께 걷다’라는 주제로 햄릿 이야기가 선보인다.

같은 기간 일요일 오전 11시에는 창덕궁 일원에서 ‘역사체험 if 당신이 혜경궁 홍씨라면‘이 열린다. 관객들은 미리 역사 공부를 하고 드레스 코드에 맞춰 입고 공연에 참석한다. 혜경궁이 된 관객은 호위무사의 안내에 따라 창덕궁 일대를 돌며 여행을 떠난다. 관객들은 아들을 뒤주에 가두려는 영조와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사도세자, 이들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공연과 역사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6월 10일부터 19일, 9월 4일부터 10월 16일까지 매주 금ㆍ토ㆍ일 저녁 7시 30분에는 덕수궁 함녕전에서 창작 국악을 감상하는 음악회가 펼쳐진다. 5년째를 맞는 ‘덕수궁 동화음악회’가 유명하다. 동화책을 2D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300인치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한다. 올해는 이 음악회를 위해 30대 젊은 작곡가들을 중심으로 프로젝트팀을 만들었다.

8월 6일부터 27일까지 매주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전통음악 마니아를 위한 음악회가 창경궁에서 열린다. 연주시간이 40분 이상씩 되는 영산회상 한바탕을 듣기 위해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여든다. 창경궁 통명전과 명정전은 음향 장비 없이도 좋은 음향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5월 14일부터 6월 4일, 9월 17일부터 10월 15일까지 종묘에서는 ‘이야기가 있는 종묘제례악’이 열린다. 종묘제례악은 세종대왕이 만든 보태평과 정대업을 그 전신으로 한다. 중국식 아악과 조선 전통의 향악, 중국에서 전해온 당악이 결합한 형태의 음악이다. 관객들은 세종을 심리적, 역사적, 정치적으로 다룬 스토리와 함께 종묘제례악을 감상하게 된다.

'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 공연은 모두 무료다. 해당하는 고궁 입장료만 내면 된다. 티켓 신청은 홈페이지 (http://www.gung.or.kr/g/)에서 받는다.

이번 공연을 주관하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손혜리 이사장은 “궁의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다. 궁 때문에 우리 음악이 더 가치 있게 되도록 공연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ㆍ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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