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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배우 모두 1인 7~8역 … 단촐했지만 꽉찬 무대

중앙일보 2016.04.26 01:02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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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드 독’은 펑크·힙합 등 현대적 음악을 포진시킨 채 살인청부업자와 부패 정치인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펼쳐간다. [사진 LG아트센터]


어쩜 출연진을 이토록 혹사 시킬 수 있을까. 24일 LG아트센터에서 막을 내린 영국 뮤지컬 ‘데드 독’ 얘기다. 이 작품엔 무대에 12명이 등장한다. 이들이 우아하게 연기나 노래를 한다고 예상하면 오산이다. 정신 사나울 만큼 멀티 플레이를 강행한다. 첼로·기타는 기본이요 우쿨렐레·만돌린까지 무려 20여개 악기를 연주한다. 인형을 조종하기도 하고, 분장·의상을 바꿔가며 단역도 여러 개 소화한다. 심지어 세트 이동도 이들 몫이다. 얼추 세어 봐도 출연진 한명당 적어도 7, 8개의 임무를 수행했다. 2시간30분 내내 퇴장 없이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배우·앙상블·밴드·스태프 등 최소 50명 가량의 인원이 필요한 공연을 고작 12명이 후딱 해치운 셈이었다. 그야말로 ‘가성비 갑(甲)’이었다.

가성비 최고 뮤지컬 ‘데드 독’
가난한 공연의 원초성 보여줘


그저 돈 아끼려고 이렇게 하는 걸까. 나름 철학이 있었다. 연출가 마이크 셰퍼드는 이렇게 말한다. “공연의 본질은 현장의 쌍방향성이다. 그 교감은 연기나 노래가 아니어도, 세트를 움직이고 소품을 만들면서도 전달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관객을 한눈 팔게 해선 안 된다는 것 뿐이다.”

‘데드 독’을 만든 극단 니하이 씨어터는 35년전 영국 남서부 해안가 시골학교의 연극 워크숍에서 출발한다. 무명의 연극 교사(마이클 셰퍼드)와 농부·배관공·간판공 등이 의기투합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들, 어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랴. 그래서 닥치는 대로 짓고 허물고 꿈틀대며 1인 다역을 몸으로 체득해 갔다. 번듯한 공연장 없이 마을회관이나 천막을 전전했고 심지어 절벽 꼭대기와 채석장에 무대를 차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 연극계는 이제 이들의 원초성에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마저도 “이토록 생생하고 예측 불가능함을 구현해내는 극단을 보지 못했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뮤지컬임에도 마이크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대부분 ‘생’ 목소리로 노래했다. 작품은 사회의 부조리와 상류층의 위선을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코믹함을 놓치질 않았다. 엄청난 전환이나 최첨단 특수효과가 없는 단촐한 무대였지만 이토록 꽉 찰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새삼 가난한 연극 정신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해주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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