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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D-101] ‘붉은 땅벌’ 이젠 GPS 달고…여자하키, 금맥 캔다

중앙일보 2016.04.26 00:41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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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최고의 축제’ 올림픽이 101일 앞으로 다가왔다. 2016년 리우 올림픽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8월5일(현지시간)부터 21일까지 열린다. 리우 올림픽의 슬로건은 ‘Live your passion(열정적으로 살아라)’. 206개국 1만500명의 선수가 총 28개 종목에서 금메달 306개를 놓고 17일간 열전을 펼친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16개 종목 138명이 출전을 확정지은 한국은 4회 연속 종합순위 10위 이내 입상을 목표로 잡았다.

1980년대 한국여자하키대표팀은 ‘붉은 땅벌’이라 불렸다. 88년 서울 올림픽 은메달을 이끈 임계숙(52·kt 감독)은 “그 때 우린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맨땅에서 땅벌처럼 먼지를 날리면서 뛰었다. ‘붉은 땅벌’은 거기서 나온 별명이다. 당시 훈련 방법은 뛰고 또 뛰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호수에 빠져 죽어버릴까’ 생각한 선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여자하키가 그렇듯이 20세기의 한국 스포츠는 맹목적인 훈련과 투혼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2016년 4월 25일 태릉선수촌 인조잔디 하키장.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는 한국여자하키대표팀의 훈련 방법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첨단 IT기술 무장한 한국 선수단
선수 활동량·이동거리·순간속도
GPS로 실시간 파악해 실전 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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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는 첨단 과학기술을 앞세워 리우 올림픽에서 톱10을 노린다. 사진은 25일 서울 태릉선수촌 하키장에서 여자하키대표팀 주장 한혜령이 조끼 목덜미 부위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장착한 채 훈련을 하고 있다. 박종철(왼쪽) KISS 연구원이 GPS로 수신한 데이터를 체크하고 있다. [사진 오상민 기자], [사진 한국스포츠개발원]


선수들이 입고 있는 조끼의 목덜미에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달려 있다. 인공위성을 통해 선수의 위치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도자들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체력과 움직임을 분석한 뒤 실전에 응용한다.

하키 종목에는 전자장비 반입에 대한 규제가 없다. 최신식 정보기술(IT)을 맘껏 활용할 수 있다. 박종철 한국스포츠개발원(KISS) 연구원은 “GPS를 통해 우리 선수들의 활동량·이동거리·순간속도·심박수 등의 생체 정보와 패스성공률·패스횟수 등의 경기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비디오 타워에서는 상대 팀 움직임을 촬영한다”며 “한국 대표팀의 데이터와 상대 팀의 영상은 곧바로 감독의 태블릿PC로 전송된다”고 말했다. GPS 20개 세트는 8000만원, 스포츠분석시스템 5000만원 등 첨단장비의 가격은 총 1억5000만원이나 된다.


| 페널티 코너 등 세트피스 때 유용
강건욱 코치 “농땡이 치면 다 보여”


벤치에서 태블릿PC를 손에 든 한진수(51) 대표팀 감독은 “과거에는 경기 전 정보를 갖고 전술을 짰다. 지금은 빅데이터를 토대로 즉각적으로 선수를 교체하고 전술을 바꿀 수 있다. 페널티 코너 등 세트피스 때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강건욱(45) 대표팀 코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죽을 맛일 게다. 개인별로 히트맵(움직임을 표시한 그래픽)이 나온다. 이동 궤적을 표시하는 선이 연할수록 뛰지 않고 걸었다는 의미다. 농땡이 치는 게 다 나온다”며 웃었다.

대표팀 주장 한혜령(30·kt)은 “매 경기가 끝나면 성적표를 받는 느낌이다. 후반에 지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GPS 분석을 통해 초반에 필요 이상으로 많이 뛴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엔 완급 조절을 하고 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여자하키는 저변이 취약하다. 실업팀 6개, 대학팀 5개뿐이고, 성인등록선수가 200명에 불과하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과학의 힘’을 빌린 한국여자하키는 그 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8회 연속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지난해 6월 벨기에에서 열린 월드리그에서는 결승에 진출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딴 한국여자하키는 8월 리우 올림픽에서 20년 만에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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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연속 올림픽 톱10에 도전하는 한국 대표팀의 최고 전력은 IT다. 한국스포츠개발원(KISS)을 중심으로 지난해 8월부터 총 예산 15억원을 투입해 ‘리우 골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황승현 KISS 연구원은 “30명의 연구진이 첨단기법을 활용해 경기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양궁·펜싱 등 메달 획득이 가능한 11개 종목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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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양궁대표팀 에이스 기보배는 뇌파 조절 훈련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사진 오상민 기자], [사진 한국스포츠개발원]

| 양궁, 뇌파 조절로 집중력 높여
펜싱, 3D 시스템으로 움직임 분석
체조, 초고속·적외선 카메라 활용


세계 최강인 양궁도 I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화살을 쏠 때 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양궁 선수들은 ‘뉴로피드백(neurofeedback)’이란 뇌파 조절 훈련을 하고 있다. 기보배(28), 김우진(24) 등 양궁 선수들은 틈날 때마다 태릉 훈련장에서 뉴로피드백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김영숙 KISS 선임연구원은 “뇌의 전기적 활동을 이용하는 바이오피드백의 한 종류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긍정적인 뇌파를 생성해 불안감을 떨쳐내고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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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은 ‘모션 캡처 시스템’으로 선수 관절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체크한다. [사진 오상민 기자], [사진 한국스포츠개발원]


펜싱은 3차원(3D) 영화·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에 자주 사용되고 있는 ‘모션 캡처 시스템’을 도입했다. 선수의 몸에 60~70개의 마커를 붙여 3차원 공간에서 움직임을 전방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이다. 관절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체크할 수 있고, 칼을 찌르는 각도까지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체조는 초고속·적외선 카메라 촬영기술을 활용한다. 선수가 사용하는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분석해 도움닫기·공중동작·착지를 정확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투지와 정신력에만 의존했던 한국 스포츠는 이제 8월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첨단 기술로 무장했다.

글=박린·김지한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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