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겁 많던 스키 선수, 그린서 챔피언 됐다

중앙일보 2016.04.26 00:38 종합 29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겁 많던 스키 선수 출신 이수민은 집중력이 좋아서 골프로 전향했다. 그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서 탈락한 뒤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맹훈련을 거듭했다. 그 결과 지난해 KPGA투어 신인왕을 차지했다. [사진 CJ]


이수민(23·CJ오쇼핑)이 25일 중국 선전의 젠존 골프장에서 끝난 유러피언 투어 선전 인터내셔널에서 우승했다. 최종 라운드에서 1타를 줄이면서 합계 16언더파로 2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선전 인터내셔널 역전 드라마
유연성·민첩성 떨어져 종목 변경
필드서 집중력 발휘 국가대표 활약
상금 5억 … 세계랭킹 70위권 껑충


미소년 같던 이수민의 얼굴은 수염으로 텁수룩했다. 그는 “아무런 생각 없이 경기하기 위해서 대회 내내 면도를 하지 않고 수염을 길렀다” 고 말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수민의 올해 목표는 유러피언 투어 진출이다. 지난 2월 좋은 기회를 잡았다. 초청 선수로 출전한 유러피언 투어 메이뱅크 말레이시아 오픈에서 그는 최종라운드를 3타 차 선두로 출발했다. 그러나 마지막 3개 홀 중 2개 홀에서 더블보기를 하면서 4타를 까먹는 바람에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이수민은 그날의 악몽을 잊고 싶었던 모양이다.

 
기사 이미지

선전 인터내셔널 우승 트로피를 받아든 이수민. 대회 기간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텁수룩하다. [사진 CJ]

이수민은 선전 인터내셔널 3라운드 16번홀까지는 완벽한 경기를 했다. 보기 없이 버디 17개를 잡으면서 5타 차 선두로 나섰다. 그러나 파 5인 17번 홀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2온을 시도하다 공이 그린 앞에 있는 나무에 맞고 물에 빠지는 바람에 더블보기를 했다.

그는 4라운드를 3타 차 선두로 출발했다. 공교롭게도 말레이시아 대회 때와 상황이 똑같았다. 4라운드 초반 더블보기 등으로 순식간에 3타를 잃었고, 2타 차 3위로 밀려났다. 또 한차례 악몽이 그를 엄습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가 8번홀 경기를 마친 뒤 경기가 중단됐다. 갑자기 번개가 치는 바람에 3시간 가량을 대기해야 했다.

이수민은 번개로 경기가 중단된 사이 마음을 다잡았다. 3시간 만에 경기가 재개되자 알렉산더 레비(프랑스) 등 경쟁자들은 리듬을 잃었다. 반면 이수민은 안정을 되찾았다. 13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다시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대회 조직위는 일몰로 경기를 마치지 못하자 다음날로 잔여경기를 넘겼다.

25일 오전 속개된 잔여 경기. 이수민은 14번홀부터 시작했다. 그는 4라운드 막판 정신적으로 부쩍 강해진 모습이었다. 16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더니 전날 더블보기를 했던 17번 홀에선 다시 2온을 시도했다. 이번엔 공을 두번째 샷만에 그린에 올렸고 약 8m거리의 퍼트를 성공시키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이글을 잡아냈다.

이수민은 어릴 때 스키를 탔다. 스키 선수 출신인 아버지 이정렬 씨는 “수민이는 스키에 필요한 유연성, 민첩성이 부족했고 겁도 많았다. 그래서 집중력이 중요한 골프로 전향했다”고 말했다. 스키장에선 겁이 많았던 이수민이지만 필드에선 잠재력을 발휘했다. 이수민은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뒤 “마지막날 17번홀에서 2온 시도가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수민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2013년 열린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투어 군산CC오픈에선 아마추어 신분으로 우승도 했다. 당시 이수민은 3라운드에서 10언더파를 몰아쳤다. KPGA투어 18홀 최소타 타이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수민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에선 탈락했다. 이수민은 그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뽀얀 피부에 귀걸이를 하고 다니던 이수민의 피부는 뙤약볕 밑에서 훈련을 한 덕분에 검게 그을렸다. 이수민은 지난해 KPGA투어에서 신인왕을 차지했다. 올해는 유러피언투어의 유력한 신인왕 후보가 됐다. 우승상금은 약 5억1000만원. 세계랭킹은 75위 이내로 진입하게 된다.

아버지 이정렬 씨는 “아시안게임 대표에서 떨어졌을 때 ‘길게 보자. 올림픽도 있지 않느냐’고 위로했는데 진짜 올림픽에 갈지도 모르겠다”면서 좋아했다. 이수민은 “김경태·안병훈 선배가 워낙 잘하지만 올림픽 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