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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과학기술 키워 ‘한국발 나비효과’ 만들자

중앙일보 2016.04.26 00:02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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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개 짓을 하면 뉴욕에 폭풍이 몰아친다’라는 말이 있다. 작은 움직임이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다. 최근 국제정치에서는 ‘미국발 나비효과’로 변화의 폭풍우가 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에 맞서던 국가들이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등 주변국을 침공하던 러시아가 잠잠해졌고, 이란은 37년 만에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 주도 국제사회로 복귀했다. 중남미의 쿠바는 88년 만에 미 현직 대통령을 자국에서 맞이했고, 베네수엘라는 우파 야당의 총선 승리로 적대적이었던 대미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복잡한 국제사회 속에서 정치권력의 커다란 변화는 어떻게 생길 수 있었을까? 바로 셰일가스 시추기술 개발이라는 ‘과학기술 혁명’ 덕분이다. 사실 셰일가스의 존재는 이미 1800년대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높은 채굴비용으로 시추가 사실상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석유공학 출신 기업가인 조지 미첼이 10년간 약 600만 달러를 투자한 끝에 경제성 있는 시추가 가능해졌다. 곧이어 미국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돈과 무기로도 바뀌지 않던 국가 간 힘의 역학구도가 과학기술 발명 하나로 뒤바뀐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더욱 공고히 할 미국발 나비효과는 또 있다. 바로 인공지능(AI) 혁명이다. 지난달 구글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은 대한민국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지난 1월 발표된 ‘유엔미래보고서 2045’는 30년 후 인공지능이 대신할 직업군으로 변호사·회계사·의사 등을 꼽았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알파고가 아니라 ‘알파Law’가 법률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다. 회계·의료업계도 조만간 인공지능과의 경쟁에 직면할 것이다. 과학기술이 시장을 장악하고 패권까지 쥐는 세상, 가히 ‘과학기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 과학기술계는 비효율적인 연구개발(R&D)투자, 과학기술자 처우 부실, 이공계 출신 리더 부족 등 이른바 ‘삼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R&D 투자비율이 2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위지만, 기술무역수지는 OECD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허도 양적으론 늘었지만, 정부가 우수성을 인정한 A급 특허의 비중은 오히려 줄고 있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다.

과학기술자에 대한 처우도 좋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이를 정도로 대우를 받지만, 우리나라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밤샘 야근과 휴일 근무를 밥 먹듯이 하는 3D 직업군이다 보니 고급인력들을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고급 두뇌’들 중 약 60%가 미국에 남고 싶어 한다고 한다.

이공계 출신 리더도 부족하다. 나라의 정책과 예산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국회가 대표적이다. 19대 국회 개원 당시 기준으로, 보건·사범계열 등을 제외한 ‘이공계’ 출신의원은 전체 300명 중 7%도 안 되는 20명에 불과했다. 정부 고위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3년 국감자료에 따르면 50개 중앙행정기관의 고위 공무원 1244명 중 이공계 출신은 129명으로 약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근 우연히 본 어느 사극에서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이 문관들 사이에서 악전고투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지금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과거 우리 정부는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만들면서 해외 한인 과학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립대 교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급여와 주택 등을 제공했다. 어떤 이는 당시 대통령보다도 월급이 많았다고 한다. 정부가 파격적으로 대우해주니 입시에서는 공대가 최고였고, 어린이들 장래희망 1~2 순위는 과학자가 차지하곤 했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지금의 ‘한강의 기적’이 탄생했다. 과학의 달, 4월이다.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순위로 ‘과학자’가 다시 등장할 그 날을 기원한다. 혹시 아나. 훗날 한 어린이가 깜짝 놀랄 과학기술을 발명해 세계를 뒤흔드는 ‘대한민국 발’ 나비효과를 만들지.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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