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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유레카, 유럽] “브렉시트하면 손해볼 것” 런던서 직격탄 날린 오바마

중앙일보 2016.04.25 01:14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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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방문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런던 린들리홀 강연도 중 청중의 질문을 받고 있다. [AP=뉴시스]


“칼싸움하는 데 총 들고 나타났다.”

국민투표 두 달 앞두고 영국 방문
일간지 기고 등 네가지 통로로 경고
“미국과 무역협정, 10년은 걸릴 것”
“칼싸움 하는데 총들고 나타나”
탈퇴 찬성파는 ‘내정간섭’ 반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쪽을 지지하는 더타임스가 23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한 논평이다. 대통령으로선 영국을 ‘고별 방문’ 중인 오바마 대통령이 22일부터 양일 간 공식 일정 중에 브렉시트 반대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 걸 두고서다.

다른 언론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력한 개입이다”(파이낸셜타임스). “이례적으로 다른 나라 내정 문제를 두고 단도직입적인 입장을 취했다”(뉴욕타임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 수시로 영국이 EU에 남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번은 민감한 시점이다. 브렉시트 여부를 정할 국민투표를 두 달여 앞두고 여론은 찬반이 팽팽하다. 조사 시기마다 기관마다 잔류·탈퇴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오바마는 영국에선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이 탈퇴 위험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큰 감명을 줄 것(hit home)”이라고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면 선친의 ‘파나마 페이퍼스’ 연루로 지지율이 하락한 EU 잔류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격일 터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캐머런 총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탈퇴 진영의 논리를 숙지했고 정확하게 반격했다. BBC방송은 “다우닝가(총리실 지칭)에서 써준들 그렇게까지 못했을 것”이라고 할 정도다.

네 단계 통로를 통해서였다. 그는 22일자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친구로서 말하는데 EU는 영국은 더 강하게 한다”란 내용의 기고를 했다. 대테러나 경제성장에 이르기까지 EU와의 관계에서 영국이 혜택을 입고 있다는 내용이다. ‘내정에 간섭한다’는 비난을 감안한 듯 “(양차 세계대전 중 숨져)유럽에서 영면한 수만 명의 미국인들이 양국의 번영과 안보가 얼마나 밀접하게 보여주는 증인들”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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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반대 기고문(사진)을 일간지에 싣는 등 브렉시트 찬성론자들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캐머런 영국 총리의 우군 역할을 톡톡히 했다. [AP=뉴시스]

오바마 대통령의 ‘브렉시트’ 말말말

강한 EU는 영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친구와 우방들과 함께할 때다.” -22일자 텔레그래프 기고

미국은 EU 등 더 큰 무역 블록과 협정에 초점을 맞추게 돼 영국은 줄 뒤에 서게 될 것이다.” -22일 기자회견

고립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젊은이들은 이같은 퇴보를 거부해야 한다.” -23일 런던 강연서


이날 캐머런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이 하이라이트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주권을 EU로부터 되찾아야 한다’, ‘브렉시트 후 미국과 신속하게 무역 협정을 맺자’는 브렉시트 진영의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미국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같은 기구들을 통해 우리의 안보를 강화하고 있다”며 미국도 안보를 위해 주권의 일정 정도를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은 EU, 더 큰 블록들과의 (무역)협정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며 “(브렉시트 후 영국이) 미국과 무역협정을 하려면 줄 뒤(back of the queue)에 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큐(queue)’는 영국인들이 즐겨 쓰는 단어로 미국에선 대개 ‘라인(line)’을 쓴다. 일부러 큐를 쓴 것은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려 한 것이라고 영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그는 탈퇴 진영의 대표 정치인인 보리스 존슨 시장도 사실상 ‘망신’을 줬다. 존슨 시장이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케냐 혈통이어서 영국에 썩 좋은 감정일 리 없다”, “백악관의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처칠 흉상을 치웠다”는 주장을 한 데 대해 “처칠은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개인 사무실에 둬서 매일 한 번 이상 본다. 내가 첫 아프리카계 대통령이라 오벌오피스엔 마틴 루서 킹 목사 흉상을 뒀다”고 말했다.

23일엔 런던에서 젊은이들을 만났다. “세계에서 고립주의와 인종 혐오 등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이런 퇴보를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관주의와 냉소주의를 떨치고 진보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깨닫자”고 했다. EU에 호의적인 젊은 층의 낮은 투표율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영국 언론은 해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줄 뒤에 선다’는 의미를 분명히 설명했다. 그는 “(브렉시트 이후) 미·영이 무역협정을 맺으려면 10년까지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개입에 브렉시트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인사는 “레임덕(임기 말) 대통령의 발언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자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영국의 EU 잔류를 원한다”고 거들었다. 영국 언론은 “캐머런 총리로선 (오바마 덕분에) 최고의 한 주가 됐다”고 전했다. 브렉시트 우려 때문에 추락하던 파운드화가 오바마 대통령의 개입 이후 강세로 돌아섰다. 한때 1파운드가 1610원까지 떨어졌으나 1650원대로 올랐다.

고정애 런던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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