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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사람이 오래 이끌어야 일관성 있는 과학 발전 가능해”

중앙선데이 2016.04.24 01:27 476호 6면 지면보기
“수출산업이라고는 가발과 합판… 뭐 이런 노동집약적 일거리가 전부였지요. 그때 해외 인재를 불러모은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었어요. 저도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KIST 창립 이듬해 조인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15대(1993~96) 원장을 지낸 김은영(79·사진) 박사는 22일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50년 전을 회고했다. 그는 전날 서울 홍릉 KIST에서 열린 제49회 과학의 날 및 제61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 과학 원로 6인 중 한 명으로 초대받아 다녀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좌우로 김 박사를 비롯한 원로 과학자들이 앉고 그 옆·뒤로 현직 장관들과 관계자들이 배치됐다. 그는 “자리 배치가 이례적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조국의 부름을 받아 척박한 환경에서 연구개발에 젊음을 바친 이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치사했다.


KIST 산증인, 김은영 박사

-50년 전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어땠나.“한마디로 황무지였다. 1967년 1월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때 금성사(현 LG전자)가 대구에서 라디오를 조립하고 있었고 삼성전자는 2년 뒤에 만들어졌다. 66년 설립된 KIST에서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서울대 교수로 가려고 했는데 학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KIST 초대 원장인 최형섭 박사가 나를 불렀다. 연구시설은 물론이고 월급이 교수나 기업체 간부의 세 배에 달할 정도로 대우가 좋았다. 에어컨이 설치된 집도 주고 연구 자금도 넉넉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후 KIST를 나온 사람들이 대학과 기업체로 퍼져나갔다. 포항제철도 KIST에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일본제철을 은퇴한 일본인들을 KIST 자문위원으로 모셔와 포철 설립을 지원했다.”



-KIST 창립 멤버로 원장까지 하셨다. 그간의 일을 말씀해 달라.“쓴소리 좀 하겠다. 원장 임기가 3년인데 정권이나 장관이 바뀌면 원장도 교체되는 폐단이 이어졌다. 원장이 바뀌면 ‘전임 원장에게 혜택 받은 사람들은 나한테 물 좀 먹어봐라’ 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런 것 때문에 연구원이 아주 괴로웠다. 그 시작이 전두환 정권이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재미 봤다고 여긴 사람들을 다 까부쉈다. 초대 원장을 지낸 최형섭 장관의 경우 정권에서 최 장관의 고향 진주까지 찾아가서 비리를 캐려고 야단이었다. KIST를 죽이려고 KAIS(한국과학원·이공계 육성 위한 대학원대학)와 합쳐 KAIST로 만든 뒤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원장에 앉히기도 했다. 대학교수는 장관·총장 바뀐다고 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유능한 사람은 10년 넘게 조직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래야 정권과 장관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게 연구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다.”



-국책연구원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많다.“대학은 기초연구, 기업은 돈 버는 연구, 출연기관은 돈은 못 벌어도 10~20년 후 대두될 미래·공공기술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지금 한국은 프로젝트 하나를 두고 기업체와 출연연·대학이 경쟁을 벌이는 풍토가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서로 협조가 안 되고 헐뜯기만 한다.”



-과학자 대우도 예전보다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KIST 원장을 지낸 내가 국민연금 60만원 받는다. 내 동기 대학교수는 연금을 450만원 받는다. 상대가 안 된다. 정년도 힘 없는 과학자들만 61세로 줄였다. 출연연 연구원들의 위상을 대학교수 수준엔 맞춰줘야 한다. 내 주변의 뛰어난 과학자 한 명이 대학과 출연연 사이에 고민하다가 대전에 있는 일반 대학으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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