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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 테이블, 주방같지 않은 주방

중앙선데이 2016.04.24 00:09 476호 8면 지면보기

발쿠치나가 선보인 주방

무이 전시장 풍경

밀레의 스마트 주방

스마트기기로 주방가전을 제어하는 모습



12일부터 17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 북부 로(Rho) 박람회장에서 열린 제 55회 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 Milano)는 경제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160개국에서 참여한 방문객 수는 37만명이 넘었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밀라노의 에너지가 살아 숨쉬는, 항상 새롭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들로 가득한 이 행사는 이탈리아의 가장 놀라운 실체 중 하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밀라노 가구박람회의 새 트렌드

‘디자인 킹덤’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최대 규모로 치러진 2016년 밀라노 가구박람회. 기술과 디자인이 화려하게 만난 아이디어의 세상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정글처럼 꾸며놓은 데돈의 전시장



친환경 바람 속 녹색 인테리어가 대세 이번 행사는 정글에서 개최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녹색 인테리어가 대세를 이뤘다. 숲 사진으로 벽 전면을 도배하거나 정원에서 흔히 보는 나무와 꽃으로 부스를 꾸민 것은 물론 열대 특유의 나무나 선인장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아웃도어 가구를 판매하는 회사들은 자사 제품이 주택 마당이나 호텔 정원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여주기 위해 대형 가제보(서양식 정자)에 덩쿨나무를 올리는 등 최대한 사실적으로 연출해냈다.



인테리어 뿐 아니라 제품도 친환경을 추구했다. 국제삼림관리협의회(FSC)와 PEFC(지속가능한 산림 경영을 활성화하기 위한 비영리 국제조직)의 인증을 받고 회사가 위치한 지역에서 자란 나무만 사용해 가구를 만든 회사, 포도주를 만들고 남은 포도찌꺼기나 강황·탄닌으로 가구를 색칠한 회사도 있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이 같은 친환경 시스템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늘고있다. 이런 회사 중 23%는 영업 실적이 올랐고 37%는 수출성과가 높아졌으며 23%는 고용률이 상승했다고 한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사텔리테 전시에 참여한 젊은 디자이너들은 창작력 시험이라도 치루듯 리사이클링(재활용)되고 업사이클링(버려지는 물건에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가치 창출)된 제품들을 쏟아냈다. 만들고 쓰고 버리는 일자형 소비구조가 이제 만들고 쓰고 재활용하는 원형 소비구조로 바뀌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스카볼리니의 전시장

다리를 유리로 만들어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이게 한 라고의 싱크대



다리를 유리로 만들어 시각적 무게감 줄여 대리석이나 통나무·세라믹 소재로 제작한 육중한 가구의 시각적 무게를 덜기 위해 주요 부분을 유리로 제작한 제품도 다수 등장했다. 유리제품 전문회사인 글라스는 말할 것도 없고 칼리가리·라고·피암 등 많은 회사가 유리소재 다리를 접목했다. 덕분에 테이블이 자신의 무게를 잊고 공중부양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났다.



유리는 테이블 중앙에 홈을 내 끼우거나 특허받은 특수나사로 테이블과 연결했다. 생각보다 튼튼해서 깨질 염려는 안 해도 될 정도였다. 특히 각기 다른 정사각형 타일을 붙여 싱크대 상판과 아일랜드 테이블을 만들고 다리는 유리로 마감한 라고의 메이드 테라네오 키친 컬렉션이 돋보였다. 다리가 사라진 듯한 느낌 덕분에 옆면까지 두른 알록달록한 계단식 끝마무리가 강조돼 지중해의 여유로운 삶이 느껴졌다. 피암은 등받이와 팔걸이가 한 통의 유리로 된 퀸 엘리자베스 암체어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유럽 가구사 메인 컬렉션은 원형 테이블 불과 수년 전 중국시장을 겨냥해 중앙 부분이 돌아가도록 만들기 시작한 원형 테이블은 이젠 유럽 가구회사 대부분의 메인 컬렉션이 됐다. 19세기에 주로 사용한,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롤탑 데스크를 새로 선보인 회사도 많았다. 닫으면 장식장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서랍이 많아 수납과 정리정돈이 수월한 롤탑 데스크는 서재가 따로 없는 집의 거실이나 침실에 놓고 쓰기 안성맞춤이다.



뚜껑 대신 책상을 앞으로 당기면 콘센트가 내장된 충전공간·작은 서랍 등 숨은 공간이 나오는 책상도 있었다. 노트북 컴퓨터나 스마트기기 사용을 위해 제작된 듯 하나 화장대, 주얼리 박스, 다이어리·편지 테이블 등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다른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해 인기를 끌었다.



등나무나 가죽·플라스틱 끈으로 엮은 패턴으로 장식한 아웃도어 가구는 시원한 느낌을 줬다. 특히 에르메스를 비롯한 다수의 유럽 회사들은 카나주(Cannage·16세기 프랑스 황실에서 사용했던 의자의 패턴으로 격자무늬가 여러 겹 겹치게 짠 형태) 패턴으로 신제품을 제작했다. 가볍고 튼튼한 카나주 패턴이 나무나 가죽·플라스틱과 접목해 모던 클래식 가구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사용하지 않을 땐 뚜껑이 덮혀 보이지 않는 구트만의 인덕션과 사이드 후드

밀레의 사이드 후드

요리할 때만 올라오는 엘리카의 사이드 후드



주방과 거실, 경계가 사라지다 거실과 주방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주방이 요리만이 아닌 생활의 연장공간이 되면서다. 찬장과 장식장, 후드와 전등, 싱크대와 테이블의 구분이 없어졌다. 냉장고·오븐·식기세척기 같은 주방용 가전제품들이 싱크대 문 안쪽 혹은 벽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디자인 제품 혹은 최신식 기기일 경우는 장식효과를 최대한 살려 전체적인 인테리어 디자인과 동선에 맞도록 허리 높이에 일렬로 나열해 붙였다.



고정돼 있던 싱크대의 수도꼭지도 아래로 숨길 수 있게 만들어 뚜껑을 닫으면 싱크대가 테이블이 되는 시스템도 눈길을 끌었다.



요리 도중 발생하는 습기와 기름진 냄새를 공중에 퍼지기 전 미리 잡아내는 사이드 후드는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다. 후드 전문회사 엘리카는 요리할 때만 표면 위로 올라오는 사이드 후드 판도라를 출시했다. 구트만은 전기레인지 가장자리가 모두 열리는 후드를 개발, 어느 부분에서 요리를 하든 연기를 재빨리 빨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 요구에 따라 맞춤형 사이즈로 제작할 수 있는 제품이 많았다. 대리석과 나무, 유리와 스테인리스 스틸의 조합 등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재료를 조합한 싱크대 디자인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똑똑한 주방, 바깥 세상과 연결된 집 주방기기의 혁신은 스마트폰의 진보와 함께 간다. 일렉트로룩스·지멘스·보쉬·밀레 같은 회사들은 놀라운 인공지능 가전을 선보였다. 스마트기기의 앱으로 기기를 켜고 끄는 원격조정 기능은 일반화되기도 전에 이미 구식이 된 느낌이다. iOS와 안드로이드 겸용의 ‘홈 커넥트’ 앱 하나로 모든 작동이 가능하며 다른 스마트 가전제품을 계속 추가할 수 있다.



스마트 오븐은 앱에 미리 저장된 레시피를 클릭하면 알아서 요리에 적절한 온도와 시간을 맞춰준다. 손잡이 부분에 카메라가 달려있어 문을 열어보지 않고도, 밖에 있어도, 앱 화면을 통해 요리 상태를 알 수 있다.



이탈리아 가전사 캔디가 개발한 WTC(Wat ching, Touching, Cooking) 오븐은 문에 유리 대신 19인치 터치스크린을 장착, 오븐을 조정하고 레시피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역시 카메라가 달려있어 스크린을 통해 요리 상태를 볼 수 있다.



냉장고의 스마트 기능도 더욱 다양해졌다. 노 프로스트(No Frost) 기능은 냉장고 참사의 주원인이었던 성에를 방지해 준다. 냉장고 안에 장착된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을 때의 사진을 자동으로 앱에 저장해 집을 나설 때 장보기 메모를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부족한 재료를 알 수 있다(퇴근길 남편에게 이미지를 보낼 수도 있다).



스마트기기에 연결된 세탁기 역시 면·모·견 등 빨랫감에 맞는 물의 온도와 세탁 방식을 스스로 결정한다. 여러 종류의 옷을 한꺼번에 넣고 어떤 종류의 옷을 넣었는지 클릭하면 앱이 “정말 확실한가요?”하며 되묻는다.



커피머신은 오븐·전자레인지와 함께 붙박이 형태가 대세다. 덕분에 바에서나 주문할 수 있었던 여러 종류의 커피를 집에서 간단히 만들어 마실 수 있다. 원두를 넣으면 가장 이상적으로 갈아주지만 이미 간 커피를 넣어도 상관없다. 물이나 우유(카푸치노용)가 떨어져 가면 앱이 상기시켜준다.



이런 인공지능 전자기기들은 높은 가격과 앱 사용 보편화라는 숙제 때문에 모든 가정에 상용화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50 망가 체어’를 선보인 넨도의 부스

메종 에르메스의 전시장



장외 전시 ‘푸오리 살로네’ 규모 더 커져 행사 기간 밀라노 곳곳에서 열리는 장외전시 ‘푸오리 살로네’는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고 참여 회사도 늘었다. 크리스털 회사 바카라는 한스 반 벤템, 마르셀 반더스, 아릭 레비와 협력한 신제품을 거대한 나무상자에 담아 브레라 미술 아카데미에서 소개했다.



디자인 회사 넨도는 산 심플리치아노 성당 회랑에서 ‘50 망가 체어’를 발표했다. 이해 불가능한 만화 같은 스틸소재 의자들은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지만 50가지 형태로 변신하는 의자 애니메이션을 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https://www.youtube.com/watch?v=zl-qsLBhXgk).



베트라 극장을 통째로 빌린 에르메스는 6일간의 전시를 위해 극장 안에 벽돌로 방을 만들고 2016~2017 홈컬렉션을 소개했다. 메종 에르메스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며 디자인된 오브제와 가구들이 새로운 패턴으로 제작된 커튼과 함께 주연으로 등장했다. 가죽과 나무를 사용해 장식장처럼 디자인한 주얼리 시계 보관장은 방문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루이비통을 선두로 밀라노 명품거리 몬테 나폴레오네에 매장을 가진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들도 평소 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고 가구회사 혹은 디자이너와 협력한 가구와 오브제를 선보였다. 수퍼스튜디오 피유가 있는 토르토나 구역의 인기도 여전했는데 삼성·LG·레노보·이케아 같은 회사들이 설치 작업을 통해 제품 혹은 기업 이미지를 홍보했다.



트리엔날레 전시장은 20년 전과 같은 국제 전람회의 형태로 돌아와 어마어마한 대규모 전시를 선보였다. ‘21세기, 디자인을 잇는 디자인(21st Century, Design After Design)’이라는 타이틀 아래 ‘우먼 인 이탈리안 디자인’ ‘시티 애프터 시티’ ‘스트리트 아트’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박물관·단체·기업 간의 협력으로 밀라노와 몬자 시 19곳에서 동시에 진행된 23개 전시에 참여한 국가만도 30개. 한국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트리엔날레 박물관에서 ‘새로운 공예성을 찾아가는 공동의 장(Making is Thinking is Making - New Korean Craft)’이라는 주제로 28명 작가의 154점 작품을 전시했다.



금년 이탈리아와 수교 150주년을 맞이한 일본은 한국관과 나란히 전시된 일본관 외에도 안드레아 브란지와 하라 켄야가 공동기획한 ‘네오 선사시대’‘SUBTLE’이라는 종이전시로 전통문화와 창의성, 최신 테크놀로지를 동시에 선보였다. ●



 



 



밀라노(이탈리아)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S매거진 유럽통신원 sungheegioielli@gmail.com, 사진 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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