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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크로닉' 미셸 프랑코 감독…당신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본 적 있나요?

중앙일보 2016.04.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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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프랑코(37). 낯설지만 주목해야 할 이름이다. 단 세 편의 영화로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멕시코 출신 감독이다. 혹자는 그의 영화에 흐르는 서늘한 정서와 충격적 결말을 보고 그를 독일의 거장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 견주기도 한다.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크로닉’(원제 Chronic, 4월 14일 개봉)이 한국 관객을 찾는다. 지난해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0대 소녀의 왕따 사건을 다룬 ‘애프터 루시아’(2012)로 제65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고 나서 3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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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닉’은 시한부 환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호스피스 간호사 데이비드(팀 로스)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존엄한 죽음과 삶, 나아가 삶과 죽음의 불가해함을 논하면서도 끝내 어떤 정답을 내는 걸 유보한다. 특히나 반전이 놀랍지만, 그것이 롤러코스터 같은 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가 아닌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완성 혹은 확장한다는 점에서 그 놀라움은 배가 된다. 장담컨대 영화가 끝나면 당신은 오랫동안 멍한 얼굴로 자리를 뜨지 못할 것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로 한국에 첫 방문한 프랑코 감독과 나눈 대화를 전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호스피스 간호사가 주인공이다. 흔하지 않은 소재인데,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나.
“2010년에 할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져 수개월을 병상에 누워 있다 돌아가셨다. 몸의 절반이 마비되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호스피스 간호사에 대해 알게 됐다. 그들의 삶은 늘 병과 죽음에 밀착해 있었다. 할머니는 뇌 손상 때문에 언어 장애까지 왔다. 간호사가 할머니의 통역사 역할까지 담당했고, 할머니와 말하려면 그를 통해야 했다. 그는 비단 할머니를 돌보는 사람이 아닌 그 이상의 친밀한 관계였다. 짧은 시간에 어떻게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영화는 온통 죽음의 자장 안에 놓여 있다.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죽음에서 달아나려는 사람들, 병의 고통보다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 이토록 죽음에 천착한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이란 모두에게 반드시 오며, 저마다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존엄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는 외려 자신의 의지로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을 통해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영화가 존엄한 죽음에 대한 답을 내리진 않지만, 관객이 이를 보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 자기만의 결론을 내리길 바랐다.”
고정된 카메라나 음악을 배제한 연출 역시 관객과의 거리 두기처럼 보였다.
“카메라는 철저히 관객이 병실에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설치했다. 이를 통해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제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영화 속 정보를 받아들이고 감정을 느끼기까지 관객에게 공간을 주고 싶었다. 클로즈업으로 촬영하고, 음악을 깔고, 각종 카메라 기법을 활용하며 특정 감정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엄청난 도전이었지만 그것이 관객을 존중하는 방식이라 믿었다.”
주인공인 팀 로스부터 환자를 연기한 조연들까지, 사실적이란 말로는 부족할 만큼 호연을 펼치며 정적인 화면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대사나 움직임만큼 침묵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배우 간의 케미스트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촬영 전에 서로 충분히 친밀해질 수 있도록 시간을 줬고, 대본에 대해 깊게 대화를 나눴다. 특히 팀 로스는 각본 작업부터 긴밀하게 관여했다.”
팀 로스와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애프터 루시아’로 칸영화제에서 상 받았을 당시 그가 심사위원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함께 위스키를 마시는데 그가 차기작에 대해 물었다. 처음에 ‘크로닉’은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여성 간호사가 주인공인 영화였다. 그가 관심을 표하며 ‘내가 주인공을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미국에서 촬영하게 됐다.”
이번 영화를 통해 팀 로스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나.
“어릴 때 그가 출연한 ‘저수지의 개들’(1992,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포스터를 방에 붙여 놓았을 정도로 존경하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의 전작을 볼 때 그가 데이비드 역을 연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건 기우였다. 어떻게 보면 많은 감독이 범하는 오류인데, 어떤 배우들은 직접 만나 봐야 기존 이미지와 전혀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팀 로스가 그랬다. 그에겐 데이비드 특유의 우울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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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는 자신이 돌보는 환자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환자의 가족을 자처하기도 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데.
“영화에선 선하거나 악한 캐릭터를 나누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연약하기 그지없고, 때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도 하지 않나. 단지 인간적이고 연약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려 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겪게 되는 고통과 혼란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나는 데이비드의 행동을 통해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데이비드가 주도하는 엔딩이 무척 충격적이다.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사고인지, 아니면 자신이 의도하고 원했는지 말이다. 집필 단계부터 생각한 엔딩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 결말을 계기로 영화 전체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더라. 잊지 못할 결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걸 좋아한다. 하하.”
전작인 ‘애프터 루시아’도 결말이 충격적이다. 당신은 비관적인 편인가. 우리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하는가.
 “실제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랑이 가득하다(웃음). 영화 작업을 통해 죽음과 고통을 깊게 분석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사람들은 고통과 죽음을 무시하고 벗어나려 하는데, 그러다 갑자기 그것들이 닥치면 정신을 놓을 만큼 힘들어 한다. 물론 나도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하면 우울하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며, 회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면 지금의 삶에 더 감사하게 되는 것 같다. 죽음을 응시해야 비로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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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잉마르 베리만(1918~2007) 감독을 존경한다고 말해 왔다.
“그는 여러 면에서 완성된 감독이다. 50편이 넘는 영화를 남겼고, 드라마뿐 아니라 코미디 등 여러 장르에 도전했으며, 독창적이고 강한 목소리와 스타일이 있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했지만 쉼 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내가 감히 잉마르 베리만 감독처럼 되겠다고 말하는 건 너무 야심만만하다. 하지만 어떤 좋은 예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칸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다. 연이은 수상은 당신에게 짐인가, 힘인가.
“행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부담이기도 하지만 내 일에 대한 보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도하게 해석하진 않으려고 한다. 내면에 갖고 있는 아이디어나 감정들에 계속 집중해야만 창작을 지속할 수 있다.”
 
부산=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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