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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대 국회에 나라의 명운 걸렸다

중앙일보 2016.04.22 01:05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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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의 차이는? 내가 보기엔 두 가지다. 첫째는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감소다. 올해가 정점이고 내년부터 줄어든다. 또 하나는 여소야대(與小野大)와 3당체제다. 정정(政情) 불안의 우려가 커졌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의미하는 바는? 1990년대의 일본이다.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이 시기 일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정정 불안이었다. 20대 국회는 일본화(日本化)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의미다. 우리의 운명이 20대 국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잃어버린 일본’의 고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지표가 국내총생산(GDP)이다. 지난 18년간 일본의 경상GDP는 줄었다. 97년 523조 엔에서 2014년 487조 엔이 됐다. <그래픽 참조> 중간에 97년 GDP에 도달한 적도 없었다. GDP가 떨어진 경험이 거의 없는 우리로선 쉽게 상상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우리도 원화 기준으로 명목GDP가 줄어든 적이 있다. 98년 외환위기 때 딱 한 번이었다. 겨우(?) 1.1% 줄었는데도 고통은 대단했다. 20년 가까이 GDP가 줄어들고 있는 일본 국민의 심정을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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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재정과 통화 등 가능한 경기부양책은 몽땅 시행했다. 예컨대 1990~2005년 중 1500조 엔이나 되는 재정을 투입했다. 90년대 중반 정책금리도 제로(0)까지 내렸다. 2001년에는 세계 처음으로 양적완화도 실시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고 재정적자만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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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가장 주요한 실패 원인으로 꼽히는 건 인구 위기다. 생산가능인구가 95년부터 줄어들었고 94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이른바 ‘늙은 사회’가 시작됐다. 당장 소비가 침체됐다. 100세가 넘는 할머니도 돈을 쓰지 않고 저축했다. 젊은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명 연장과 불안한 노후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도 효과가 없다. 게다가 늙은 사회에서는 생산성도 위축된다. 수요와 공급 모두 문제가 생기면서 경제 활력이 상실됐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이렇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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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마찬가지다. ‘늙은 사회’로 진입한다.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 고령화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 진입도 내년이다. <그래픽 참조> 그렇지 않아도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큰 터에 인구 위기가 시작되니 설상가상인 셈이다. 게다가 사상 초유의 일이니 그 파장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조만간 우리도 일본처럼 ‘넓히자 65세 현역사회’라든가 ‘노(老)동력 활용’ 같은 구호가 나오지 싶다. 인구 위기를 정년 연장으로 극복하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게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건 일본이 반면교사다. 그렇게 했는데도 생산성은 악화되고 소비 침체는 지속됐기 때문이다. 소득과 인구가 늘지 않는 정체사회에서 새로운 기회가 있을 리 없다는 건 상식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구조개혁뿐이다. 투자를 늘리려면 기업 구조조정과 규제개혁이, 인적자본을 육성하려면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이 필수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서비스산업과 첨단산업 육성을 통한 기술 진보가 해법이고. 일본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단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을 뿐이다. 왜냐? 2000년대 초 일본을 취재했던 기자들은 “개혁을 추진할 오야붕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는 의미다(중앙일보, 『그래도 우리는 일본식으로 간다?』, 2002년).

실제로 당시 일본 정치는 혼란과 위기상태였다. 단적인 예로 총리가 파리 목숨이었다. 지금의 아베 신조 총리가 2012년 12월 집권하기 전까지 91년 이후 22년간 총리는 무려 14명이나 됐다. 평균 재임기간이 1년 남짓이었다는 얘기다. 정치가 불안하니 개혁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내용도 빈곤했고,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도 없었다. 기업 구조조정이 방치됐던 이유다. 정부도 책임 떠넘기기가 다반사였다. 디플레 대책의 수립을 놓고 벌인 핑퐁게임이 단적인 사례다. 일본 재무성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돈을 더 풀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일본은행은 재정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요즘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의 모습과 판박이다.

물론 20대 국회가 정치 불안정과 동의어란 얘기는 아니다. 19대 국회는 양당체제에 여대야소였지만 역대 최악이란 평가다. 또 국회만의 책임도 아니다. 청와대와 행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게다가 여소야대, 3당체제도 협치(協治)를 통해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경험을 되돌아볼 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개혁의 발목을 잡는 후진적 정치 행태의 가능성 말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일본화의 징후가 수두룩한 터에 정치마저 불안정하다면? 그래서 우리도 일본처럼 근본적인 개혁에 손도 대지 못한다면? 일본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을 겪을 게 분명하다. 일본은 축적된 자산이 우리보다 훨씬 많기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지만 우리는 다르다. 20대 국회의 책임이 이전 국회보다 훨씬 무겁고 중요하다는 건 그래서다. 그나마 부양 부담이 작은 향후 몇 년이 마지막 찬스이기에 하는 고언이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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