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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유통가 PB 열풍, 파는 만큼 책임감도 커져야

중앙일보 2016.04.22 00:02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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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드디어 먹어본 A마트 OO아이스크림 시식기!’, ‘편의점별 자몽주스 비교해보니’….

국내 유통업계에서 PB(Private Brand·자체브랜드) 상품이 이렇게 인기를 끌던 때도 없었다.

PB상품은 대형마트·편의점 등이 직접 제조사에 의뢰해 자신들의 이름을 달아 파는 상품이다. 중간 유통 단계가 줄고, 광고·마케팅비도 적어 소비자 가격도 낮출 수 있다. 이마트의 생활용품 ‘노브랜드’와 식품 ‘피코크’, 롯데마트의 식품 브랜드 ‘요리하다’, 그리고 편의점마다 인기폭발인 각종 도시락과 과일주스들이 대표적이다. 우수한 가성비(가격대비성능)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요즘 소비자 취향에 딱 맞다.

업체들은 저마다 PB상품 기획·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형마트 3사의 현재 PB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20% 수준이지만, 50%까지 높이는 게 목표다. PB상품은 세계적 추세다.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영국 ‘마크앤스펜서’, 독일 ‘알디’ 등 선진 유통업체의 PB매출 비중은 90% 이상이다.

이런 PB열풍 속에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자연스럽게 겹친다. 10년 전 상품이긴 하지만 문제가 된 ‘와이즐렉 살균제’(롯데마트), ‘홈플러스 청정제’(홈플러스) 등이 모두 PB상품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SK케미칼에서 원료를 받아 용마산업사란 제조사가 만든 상품에 마트 이름을 붙여 팔았다. 원료공급사와 제조사가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이지만 판 업체도 엄연히 책임이 있다. 문제는 이런 책임이 PB 전성시대를 맞아 앞으로 수십·수백 배로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안 만들었는데요”라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유통업체는 다양한 PB상품을 개발하되 “100% 내 책임”이란 자세로 임해야 한다. 믿을 만한 제조사를 가려내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자체적인 안전성 검증도 강화해야 한다.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처음부터 내부 연구기관과 외부 검사기관을 거쳐 문제가 될 만한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는 게 답이다. 생산 공장 현장을 수시로 체크하고, 제조사의 자체적인 문제까지 함께 개선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설마’의 비용은 엄청나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소비자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가한 제품을 팔았다가는 천문학적 규모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입법 추진 움직임이 있다.

이제 날개를 달기 시작한 유통가의 PB 열풍이 10년이 지나도 소비자들과 나눌 수 있는 성공 스토리로 남길 바란다.

이소아 경제부문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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