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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 나이 맞춰 투자 비중 조절하는 TDF

중앙일보 2016.04.22 00:02 경제 6면 지면보기
7%. 지난해 말 까지 125조원 가량 쌓인 국내 퇴직연금이 주식·채권 등 같은 실적 배당형 상품에 투자한 비율이다. 90% 가까이는 정기예금 같이 정해진 원금과 이자를 받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다. 기준금리가 낮아지면서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수익률은 떨어지고 있다. 저위험·저수익 투자에 머물러 있다간 은퇴 후 삶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렇다고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이 투자상품에 손대는 건 부담이 크다. 자칫 잘못하면 수십 년간 일해 모은 돈을 잃을 수도 있다. 안전하게 내 퇴직 자산을 불려줄 투자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젊을 땐 공격적, 나이 들면 방어적
은퇴 시점 맞춰 투자 방식 달라져
삼성운용서 한국형 상품 첫 출시

이런 상황에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 연금상품인 ‘타깃 데이트 펀드(TDF)’가 주목받고 있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목표일(타깃 데이트)로 잡고, 사전에 정한 생애주기에 따라 자동으로 투자 비중을 조정하는 연금 펀드다. 20대에 주식 등 고수익·고위험 상품에 많이 투자하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전 자산 비중을 늘린다. 가입자 본인이 투자 비중을 직접 판단해야 하는 기존 연금 상품과 다른 점이다. TDF는 미국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미 자산운용협회(ICI)에 따르면 미국 TDF 자산규모는 2004년 440억 달러에서 지난해 7630억 달러(약 900조원)로 17배나 커졌다. 현재 미국 근로자의 다수가 TDF에 가입해 있는 걸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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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산운용사도 TDF 시장 개척에 나섰다. 삼성자산운용은 미국 캐피탈그룹과 공동으로 만든 ‘삼성한국형TDF’를 21일 출시했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운용하며 상품 이름에 은퇴시점을 붙였다. 2020부터 2045까지 총 6개 상품이다. 2020펀드는 은퇴 시점이 2020년이 되는 50대 이상, 2045펀드는 2045년에 퇴직하는 20~30대 투자자가 대상이다. 6개 상품은 캐피탈그룹이 운용하는 11개 펀드에 재간접 형태로 분산 투자된다.

구성훈 삼성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퇴직연금 가입자의 74%가 수익률을 살피지 않고, 운용 전략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것도 모르고 있다”며 “이번 상품은 2007년 이후 연평균 수익률이 9~10%인 캐피탈 그룹의 TDF에 기초해 운용하기 때문에 안정적 수익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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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자산운용도 은퇴 시점에 따라 2020년에서 2040년까지 5년 단위로 나눈 TDF ‘평생월급만들기연금펀드’ 상품을 2011년 부터 운용 중이다. 미래에셋운용 관계자는 “원금 손실을 꺼리는 투자자들이 많아 설정액이 2억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연금 수익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앞으로는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TDF시장은 퇴직·개인연금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방침으로 인해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지난해 7월 DC형 퇴직연금과 IRP에서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할 수 있는 비중을 총 금액의 40%에서 70%로 확대했다. 예·적금 등에 몰린 퇴직연금을 투자 상품으로 옮기기 위한 방편이다. 금융위원회는 미국 등이 시행중인 ‘디폴트 옵션(연금자동가입)’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디폴트 옵션은 연금 가입자가 운용 방법을 선택하지 않아도 운용사만 선택하면 관련 투자 상품에 자동 가입되는 제도다.

쇼 와그너 캐피탈 그룹 회장도 “미국 TDF는 2006년 ‘디폴트 옵션’ 상품으로 지정되며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상품이란 점은 유의해야한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TDF는 주식 투자 비중을 시간에 따라 기계적으로 조정하므로 시장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기 힘들다”며 “주식 비중이 높은 가입 초기엔 운용 상황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전 연구원은 "미국 TDF운용사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생애주기별 자산배프로그램(글라이드 패스)를 일정 범위 내에서 가입자의 위험 선호 성향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며 "한국에서도 이를 적용한다면 손실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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