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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저건 관박쥐, 아직 동면 중이죠” 손전등 비춰도 안 움직여

온라인 중앙일보 2016.04.16 15:04
| 물윗수염박쥐 등 수십여 마리 관측
“멸종위기종은 아주 드물게 발견 동굴 생태계 교란돼 1시간 내에 마쳐”

치악산 자연동굴 박쥐 탐사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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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지난 11일 치악산국립공원에 있는 석회암 자연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쥐 서식지인 이 동굴은 야생동물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있다. 입구엔 야생동물 관측용 무인 센서 카메라도 설치돼 있다. [사진 성시윤 기자]


지난 11일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국립공원 내 석회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인공조명 시설이 없고, 햇빛도 아예 들지 않았다. 헬멧에 장착한 헤드랜턴에 의지해 조심조심 발을 디뎠다. 바닥은 질펀하고 미끄러웠다. 천장에선 이따금씩 물방울이 헬멧 위로 떨어졌다. 헤드랜턴 빛에 석회암 동굴의 지형물이 나타났다. 빗물 또는 지하수에 석회암이 녹으며 천장에 생긴 고드름 형태의 종유석, 녹은 석회암이 바닥에서 뿔처럼 솟은 석순 따위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보세요!” 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공단) 국립공원연구원의 김혜리 연구원이 벽면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김 연구원은 박쥐 연구를 전문으로 한다. 지난해부터 매달 이 동굴에 들어와 박쥐를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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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동굴 벽면의 박쥐를 관찰하고 있다.


김 연구원이 가리킨 벽면엔 움푹 팬 틈이 보였다. 그 안엔 밝은 황색 털에 덮인 무엇인가가 붙어 있었다. “물윗수염박쥐예요. 우수리박쥐라고도 하죠. 여기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종입니다. 연중 내내 관측되죠.”

박쥐 한 마리가 날개를 접은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뾰족한 귀가 밑을 향해 있고, 얼굴 옆으로 엄지손가락도 보였다. 크기는 유치원생 손바닥만 했는데 손전등 빛에도 움직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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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박쥐로도 불리는 물윗수염박쥐가 동굴 벽면 틈새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아직 동면 중이에요. 시력이 퇴화돼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진 않지만 오래 빛을 비추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김 연구원은 서둘러 손전등을 내렸다. 좀 더 깊이 들어가자 이번엔 어른 손바닥만 한 박쥐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저건 관박쥐예요. 거꾸로 매달린 모습이 관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죠. 우리나라에 사는 박쥐 중 형체가 가장 큰 종입니다.” 김 연구원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유지했다. “동굴 생태계는 아주 쉽게 교란돼요. 조사요원도 한 번에 두세 명 정도만 들어갑니다. 동굴 안에선 한 시간 이내에 조사를 마칩니다. ”

동굴 탐사에 동행한 것은 박쥐가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 궁금해서였다. 호기심을 부른 것은 잇따른 박쥐 뉴스였다. 공단은 올해 초 “설악산·지리산·소백산 등지에만 사는 것으로 확인됐던 멸종위기종 박쥐인 붉은박쥐(일명 ‘황금박쥐’)가 지난해 월악산·오대산에서도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말엔 전남 무안의 한 폐광에서도 붉은박쥐 100여 마리가 서식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 국립공원연구원 2013년부터 조사
무인카메라 설치, 그물로 포획 관찰
날개에 표식 붙여 초음파로 추적도


공단이 박쥐 등 소형 포유류에 대한 정밀 조사를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2004년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박쥐 연구는 늦게 시작됐다. 반달가슴곰과 박쥐 등 겨울잠을 자는 동물은 생태계 변화에 더욱 민감하다. 그래서 다른 동물보다도 공단이 애착을 갖고 있다.

전국 국립공원에 산재돼 있는 육상동굴은 폐광 등 인공동굴 5곳을 포함해 대략 40여 곳. 이곳은 공단이 박쥐 서식지 조사를 위해 특별 관리하는 동굴 중 하나다. 동굴 생태계가 양호하게 보존돼 있다는 게 공단 측 설명이다.

동굴은 일반인이 다닐 수 있는 지정탐방로를 벗어난 곳에 있다. 동굴에 도달하기까지 등산객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어 보이는 산비탈을 30여 분 올라야 했다. 입구엔 ‘특별보호구역 출입금지’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온도·습도를 30분 간격으로 측정하는 계측기, 24시간 작동되는 무인 센서 카메라도 두 대 설치돼 있다. 국립공원연구원이 박쥐 연구를 위해 설치한 장비다. 박쥐가 동굴을 드나드는 모습은 잘 잡히지 않는다.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다. 대신 카메라는 박쥐 외에 어떤 동물이 동굴에 드나드는지를 모니터링하는 용도다. 멧돼지나 삵이 가끔 카메라에 찍힌다. 법규를 위반해 사람이 출입하진 않는지도 이 카메라로 확인한다.

동굴 초입은 높이가 낮아 허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이내 폭 10여 m, 높이 5m 정도의 넓은 공간이 이어졌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서늘함과 습기가 더해졌다. 치악산국립공원 야생생물보호단 김종원씨가 휴대용 계측기를 꺼냈다. 입구에선 38.7%인 습도가 동굴 끝 막장에선 61.7%로 배 가까이로 높아져 있었다. 입구에서 섭씨 11.2도였던 온도도 7.7도로 3도 넘게 떨어졌다. 막장에도 입구와 비슷하게 온·습도 계측기가 붙어 있었다. 김씨는 “온도·습도에 따라 동굴 안에서도 종별로 개체 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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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박쥐(左), 물윗수염박쥐(右).


이날 동굴에선 관박쥐·물윗수염박쥐 외에도 관코박쥐도 수십 마리 관측됐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에 속하는 박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김 연구원은 “집단 서식지가 아닌 경우엔 멸종위기종은 아주 드물게 발견된다”고 말했다. 이 동굴에선 지난해 멸종위기종 2급인 작은관코박쥐와 토끼박쥐가 몇 차례 발견됐을 뿐이다.

어떤 종이 얼마나 많이 사는지는 특수 그물을 활용한 포획 조사로 파악한다. 해질 녘에 동굴 입구에 특수 그물을 설치하고 여기에 걸린 박쥐마다 각각 어떤 종인지, 다리·날개 길이는 어떻게 되는지, 성별은 무엇인지를 일일이 확인한다. 이어 박쥐 입에 면봉을 넣어 유전자도 채취한다. 추적 확인이 필요한 개체는 고유번호가 부착된 표지를 날개막에 붙인다. 박쥐를 날려 보내며 박쥐가 내보내는 초음파도 측정한다. 이후 조사요원이 음파 탐지기를 켠 채 동굴 주변과 숲·계곡 등을 돌아다니며 박쥐의 활동 반경을 측정한다. 포획조사를 할 때 그물에 걸리는 박쥐는 하루 저녁에만 100마리가 넘는다. 그물은 박쥐가 다치지 않도록 무척 얇은 실로 특수 제작된 것이다.

국립공원연구원 신용석 원장은 “반달가슴곰 등 대형 포유류가 잘 살기 위해선 박쥐 등 소형 포유류도 풍부해야 한다. 그간 박쥐는 분포나 서식 생태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라도 첨단 장비를 동원해 연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내 서식 23종 중 3종이 보호종
자연동굴, 관광자원 돼 개체수 급감
“탐방객·인근 주민들 출입 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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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박쥐(左), 관코박쥐(右).


현재 국내 서식 중인 박쥐는 모두 23종이다. 이 중 3종이 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 이에 비해 선진국들은 박쥐 보호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 영국은 전체 16종 중 13종이, 일본에선 전체 40종 중 33종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20여 년 전엔 국내 도심 주거지에서도 저녁 무렵에 박쥐가 눈에 곧잘 띄었다. 기와지붕이나 주거지 인근 야산에 사는 ‘집박쥐’다. 이제는 집박쥐도 예전처럼 보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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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박쥐(左), 작은관코박쥐(右).


“모든 동물의 천적은 결국 사람이에요. 박쥐가 서식하기 좋은 자연동굴은 거의 다 관광자원이 돼 개방됐어요. 대체 서식지가 될 수 있는 폐광도 인위적으로 무너뜨리거나 출입구를 완전 봉쇄해 박쥐가 살지 못하게 하고 있죠.”

박쥐는 모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어 사람에게 이로운 동물이다. 하지만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개체수가 급감하는 추세다. 김 연구원은 “국립공원 안에서 박쥐가 번식하고 동면하기에 좋은 동굴은 원래의 자연 상태로 잘 보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탐방객과 주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멸종위기 ‘황금박쥐’ 폐광서 발견, 흡혈박쥐는 국내에 없어

국내 박쥐는 자연동굴에서만 살까. 꼭 그렇지는 않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붉은박쥐(일명 황금박쥐) 역시 자연동굴보다는 폐광에서 주로 발견된다. 인위적으로 파서 만든 폐광은 자연동굴에 비해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부 박쥐에겐 더 좋은 서식처가 된다. 박쥐 보호를 위해 폐광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이런 까닭이다.

세계적으로 박쥐는 모두 1200여 종이다. 남극과 북극을 제외한 전 지역에 걸쳐 산다. 외국에는 가축의 피를 먹는 흡혈박쥐나 쥐 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성 박쥐가 있지만 국내엔 이런 박쥐가 없다. 국내에 사는 박쥐들은 크기가 소형이며 나방이나 모기 등 곤충을 먹고 산다. 아열대 지방에서 발견되는 과일을 먹는 큰 박쥐류는 시력이 있어 사물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다. 반면 국내 박쥐는 초음파의 반향으로 먹이를 찾고 장애물을 피해 다닌다.

박쥐는 포유류 중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동물이다. 하늘다람쥐 역시 사람의 육안으로 날아다니는 걸로 보이나 엄밀하게는 그렇지 않다. 하늘다람쥐는 자신의 의지로 높낮이에 상관 없이 공중을 날지 못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며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을 연장시켜 멀리 갈 뿐이다. 이를 구분해 박쥐는 비행을 하고 날다람쥐는 활공(滑空)을 한다고 한다.

치악산=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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